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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지 ] [톨레도] 천혜의 요새

 

T o l e d o

천혜의 요새,  톨레도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 남서쪽으로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페인의 대표적인 역사 도시로 마드리드를 찾은 여행객들 대부분이 이곳을 다녀간다고 해도 좋을 만큼 항상 많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2천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간직한 톨레도는 마드리드로 천도되기 이전의 수도로서 한 때 스페인의 모든 힘과 권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유적들의 공존이 자아내는 이색적인 도시 분위기는 이땅에서 벌어졌던 대립과 갈등, 그 속에서 피어오른 한 시대의 화려함과 영화가 그려낸 톨레도만의 특별한 자화상이라 할 것이다.

 

Tip.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로

  마드리드에서 톨레도까지는 기차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렌페Renfe라고 불리는 기차는 마드리드 시내의 아토차Atocha역에서 탈 수 있으며 약 30여 분이면 톨레도 역에 도착한다. 기차보다 좀 더 많은 운행 횟수를 갖고 있는 버스는 메트로 6호선과 11호선이 만나는 엘립티카 역Plaza Eliptica에서 출발한다. 기차에 비해 가격이 절반 정도로 저렴하지만,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로 좀 더 길다.

  

황토색  위엄,  톨레도

  톨레도로 향하는 버스 승차장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버스를 타지 못할까 초조하기도 했지만 여행지로서 톨레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의 시외버스 보다 좌석이 두 배는 많은 것 같은 기다란 톨레도 행 버스는 고맙게 나에게도 한 자리를 내어주었다. 한산했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교외 풍경에 넋을 놓는 것도 잠시, 버스는 톨레도 버스 터미널에 들어섰고 터미널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 나타났다.

  마치 커다란 산처럼 서 있는 황토색 도시. 그 도시가 터미널 앞의 수많은 여행자들을 내려다보고 선 모습. 하늘을 향해 말끔하게 솟아오른 뾰족한 두 개의 탑이 순식간에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정상의 알카사르Alcazar. 생경하기까지 한 톨레도와의 첫 대면에서 이 도시의 위엄을 빠르게 전해준 가장 친절한 단서였다. 길이 이어지는 대로, 눈이 이끄는 대로 알카사르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에 이끌려 알카사르로 향하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결국 알카사르에 이르러 톨레도의 모든 것을 보고야 말 것 같은 예감이 오히려 초행길의 설렘을 더욱 크게 부풀려 주고 있었다. 마치 알카사르의 허락과도 같았다.

 

돈키호테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중세도시, 

톨레도

  가려져있던 옛 도시의 속살들이 골목을 따라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닳고 닳은 돌들이 온화한 빛을 내며 촘촘히 들어앉은 골목들은 오직 사람의 통행만 허락하기라도 하듯 좁고 또 어지럽게 이어졌다. 골목을 만들어주는 때묻은 건물 밖으로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다양한 모습의 풍경들이 반가웠다. 골목골목을 지나 큰 거리로 들어서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장엄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 때론 동그랗고 부드럽게, 때론 각지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저마다 자신들이 태어난 시대와 그 시대의 주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앞에 몰려든 서로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서 있는 돈키호테를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터졌다. 훌쩍 지나버린 세월을 알지 못하는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막힌 표정. 그 옆에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돈키호테와의 만남을 추억하느라 분주할 뿐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돈키호테의 친구가 되어 주고 싶었던 마음은 나만의 욕심이었을까?

 

  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풍경은 계속해서 변해갔다. 중세의 어느 쯤에 와있는 것 같은 도심에서는 당시의 복장을 한 이들의 공연이 열렸고, 음식점에는 고유의 음식을 즐기는 이들의 여유가 넘쳐났다. 톨레도의 오래된 모습들을 마음껏 누리다 보니 어느새 알카사르 앞. 문 닫힌 알카사르 주위를 돌다가 뜻밖의 풍경과 마주했다. 파란 하늘 아래 구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광활한 초지와 작고 낡은 성벽들. 아마도 수백 년 전의 톨레도와 가장 가까울 것 같은 풍경은 이 도시의 명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톨레도 여행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소코도베르 광장Plaza de Zocodover을 지나 톨레도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가서야 비로소 내가 기다렸던 톨레도의 이미지가 비슷하게 펼쳐졌다.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타호강 사이로 빼곡하게 펼쳐진 톨레도 시가지의 고풍스러움. 그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미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기도 전에 발걸음을 급히 옮겨야했다. 마지막을 위해 남겨두었던 한 곳을 위해서. 하지만 결국, 발품만 잔뜩 팔고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빈손으로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와야 했다. 

'톨레도에 너무나 큰 미련을 두고 온 것 같았다.'

 

톨레도 위의 낙원,  Parador

  다음날 아침, 예정된 일정을 미룬 채 다시 톨레도 행 버스에 올랐다. 부족한 일정이었지만 가지않으면 후회할 것이 분명했기에 하루를 더 할애하기로 했다. 두고 온 보물을 찾으러 가듯 이른 아침 향한 곳은 톨레도의 파라도르. 국내 유명 연예인 부부의 웨딩사진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급 호텔이다. 이곳을 꼭 가야만 했던 이유는 호텔 앞으로 펼쳐지는 사진 속의 로맨틱한 풍경 때문이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중세를 닮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사진에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부터 이미 가슴이 뛰었던 곳이다.

 

  운 좋게도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파라도르 행 버스는 내가 정류장을 찾아가자마자 출발했다. 전날과는 다른 순조로운 상황에한껏 가벼워진 기분으로 파라도르에 도착. 빠르게 호텔 안으로 들어서 주위에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로비를 지나 카페가 있는 야외테라스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사진 속 장면이 펼쳐질 야외 테라스의 문을 열었다. 한 걸음 한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진짜 톨레도의 풍경.

'이제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지 모르는 옛 것이 전해주는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지금 톨레도의 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내가 본 것은 이곳 사람들만이 기억할지도 모르는 먼 과거, 바로 신의 은총이었다. 신이 이곳에 앉아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시를 만들고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아끼고 사랑했을 것 같은 그 모습. 톨레도의 영화롭던 모습은 그래서 지금껏 흐트러짐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다음 일정은 잊어버린 채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카페에 앉았다. 한동안 꼼꼼하게 도시의 곳곳을 바라보았다. 내 두 눈에 톨레도의 과거가 생생하게 담길 때까지. 파라도르에서 나와 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내려갔다. 어제와는 완전하게 달라져 새롭게 다가서는 톨레도가 걸음이 끝나는 순간까지 하나씩 이어지고 있었다.

 

Tip. 파라도르 가는 법 

  파라도르는 수도원이나 고성 같은 역사적인 건물을 숙박시설로 개조한 스페인의 국영 호텔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파라도르가 각 지역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톨레도의 파라도르 역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소코도베르 광장에서 알카사르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매시 45분에 7.1번 버스가 파라도르로 떠난다. 파라도르 버스 정류장은 이정표조차 찾기 어려운 도로에 있는데 도로를 건너 위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파라도르 입구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