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의
뜰을 걷다, 교토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얼까. 휴식, 힐링 아니면 차분한 사색. 어쩌면 그 너머에 있는 무엇. 교토는 말없이 가르쳐 준다. 그냥 그대로 살라고. 있는 그대로 보라고. 그리고 받아들이라고.마침 교토는 한국보다 날씨가 괜찮다고 했다. 매화가 지고 앞으로 벚꽃이 활짝 피어나기 전 교토에서 발견한,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 즉, 선.
모든 것을 태우리, 킨가쿠지
원래 이곳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였지만 3층의 금박 누각이 오랫동안 이 사찰의 그림을 대표해왔던 터라 킨가쿠지금각사라는 명칭이 더 자연스럽다. 일본 우익을 대표하는 인사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에 등장하는 동명의 소설 금각사는, 미시마의 이상한 전력과는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꽤 괜찮은 소설이었다. 소설 속 금각사는 주인공의 미적 열등감에 의해서 불태워지는데 실제 1950년 7월 2일에 방화 사건이 있었다. 지금의 건물은 1955년에 재건한 것으로, 당시 교토 시민들의 자발적인 세금 모금으로 보수되었다. 금각사로 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서두를 필요가 있었고, 누구보다 먼저 금각사를 보고 싶었다. 교토의 버스 노선은 생각보다 복잡하기에 충분히 시간을 감안했다. 8시, 문을 열기 무려 한 시간 전. 한 서양인이 내 앞에 서있었다. 그는 카메라도 없이 그저 눈으로만 담으려고 했던 듯 단출한 차림이었다. 문이 열리고 뒤이어 몰려든 단체 관광객들을 뒤로하고 조금 뛰었다. 짧은 흙길을 돌자마자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금각사가 보였다.
그곳에 황금빛이라고 하기보단 하나의 태양이라고 불릴만한 금각사가 있었다. 홀연히 연못의 물에 비쳐 두 개의 모습으로 빛나던 금각사. 그것은 금각사가 자신의 몸을 반으로 나누어 연못에 펼치듯, 마치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 장엄한 기품, 숨 막히는 자태 그리고 황금빛 판타지. 먼저 떠오른 생각은 곧바로 내 자신도 소설 속 주인공, 결국 작가인 미시마를 이해하는 감정뿐이었다.
맑은 연못 주위의 바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승처럼도 보였던 금각사. 온갖 풍파를 다 겪고 지팡이를 내려놓은 채 그저 금각사 하나를 의지하던 나그네. 그 승은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이미 밝은 태양에게 어찌 더 많은 빛을 구하리오. 그것이 바로 선(禪)이었다.
마크 로스코와 만나다, 료안지
걸음이 맞지 않았지만 일부러 이 동선에서 료안지를 가장 나중에 두었던 이유는 어쩌면 금각사보다 또 어쩌면 반드시 들를 후시미이나리 보다 명백히 료안지를 보러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 어느 사진에서 보았던 료안지가 보여주던 그 허망한 돌의 관계 그리고 그 거리 속에서 느껴지던 삶의 한 자락. 나는 이곳에 조용히 앉아 무언가를 물어보고 싶었나보다. 료안지는 연못이나 저수지 등의 물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돌과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가레산스이(枯山水)정원으로, 이러한 형식은 선종 전파를 위해 15세기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풀 한포기 없는 자그마한 정원에 15개의 돌이 덩그러니 놓인 단순한 돌을 보러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곳을 찾는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은 심지어 금각사를 보지 않고 이곳에 머물며 넓고도 깊은 시공간과 마주한다. 하얀색의 가루 같은 돌들 위에 놓인 크고 작은 돌들은 어느 시각에서 보더라도 한꺼번에 15개가 다 보이지 않는다. 이는 삼라만상을 한낮 인간이 이해할 수 없으며 끊임없는 참선을 통해서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표현했다고 한다. 상심이나 후회 그리고 열정과 사랑 같은 흔한 세속의 감정들이 돌 속 그리고 그 거리 속에 숨어있다. 사람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본당 끝에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한참동안 오로지 돌만 바라본다. 그리곤 조용히 일어난다. 료안지의 정원이 말하는 바가 그것이다. 그저 와서 가만히 들여다보라고. 나는 그 끝에서 무엇인가를 만났다.
그것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과 같았다.
학문의 신사, 기타노텐만구
가벼운 마음이 필요해 근처의 신사인 기타노텐만구에 들렀다. 버스를 타고 오면 금방이었지만 한적한 교토의 거리를 걷는 것은왠지 근사했다. 일본에 수십 만 개의 신사가 있지만 실재 인물을 신으로서 모신 것은 일본의 역사상 이곳이 최초로, 학문의 신으로 알려진 스가와라노미치자네공을 모시고 있다. 일본에는 스가와라노미치자네공을 모시는 신사가 약 1만 2천 곳이나 되는데 기타노텐만구는 그 발상지이며, 총 본사로 알려져 있다. 학문의 신을 모시는 까닭인지 여행객들보다는 주로 일본인들이 많았고, 수험생들과 교토로 여행 오는 학생들에게는 필수 방문 코스이기도 하다. 2월 말에 피기 시작해 3월 초에 절정을 이루는 일본 매화는 이곳에서 제대로 만개한다. 다행히도 매화의 끝자락이 남아있었기에 조금은 매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작은 잎으로 겨울을 겨우 이겨내는 것도 기특한데, 게다가 봄을 먼저 알리는 것도 너로구나. 매화의 희생이 있기에 벚꽃이 그다지도 그렇게 마음 놓고 피는 것이겠지. 아마도 매화는 벚꽃의 어머니인 것 같다.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그리고 할머니가 손자에게 누나가 동생에게. 그들의 기도가 겨울을 이겨내고 결국 피어나는 그리고 벚꽃을 피워내는 매화처럼 활짝 퍼지기를.
비교가 아닌 차이, 긴가쿠지
은각사 긴가쿠지는 1482년, 당시 쇼군(將軍)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은퇴 후 머무를 자신의 별장으로 지은 건물로 원래 지쇼지(慈照寺)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세운 금각사를 모델로 지쇼지 역시 외관 전체를 은으로 덮어씌울 계획이었지만 우선 방대한 양의 은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고 당시 교토 전체가 파괴될 정도로 강력했던 난이 일어나 이 계획은 무기한 연기된 채 옻칠만으로 마감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사람들은 가끔 금각사와 은각사를 비교하기도 한다. 금으로 빛나서 앞에 있는 것도 아니요 은을 입어서 뒤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보탑과 석가탑을 누구 하나 비교하지 않듯이 금각사와 은각사 또한 마땅히 그래야한다. 그것은 단순한 차이일 뿐. 물론 둘 다 일본의 국보이다. 6m 높이의 정원수 터널을 지나 입구로 들어가면 금각사와 마찬가지로 입장권 대신 가정의 평화와 행운을 기원하는 부적을 준다. 은각사가 금각사와 대비되는 되는 점은 강렬한 서로의 색뿐 아니라 세심하고 무심하게 깔아놓은 흰모래 정원 위에 있는 모래더미인 고케츠다이(向月臺)일 것이다. 오로지 모래와 물만으로 쌓아올린 것이지만 비나 눈에도 끄떡없다고 하는 고케츠다이는 달빛에 비친 정원 감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 밤, 달빛에 비친 은각사라… 그 한 장면을 위해 이토록 무서우리만큼 빈틈없이 모래의 세계를 만들어 놓은 사람들. 나는 그 그림을 떠올려보고는 이내 나지막한 탄식을 내뱉는다.
성스러운 물, 기요미즈데라
기요미즈데라는 오토와(音羽)산 중턱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사원으로 780년에 나라현에서 온 승려 엔친이 세웠다. 창건 이후 수많은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으며, 1633년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손자 이에미치의 노력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기요미즈(淸水)란 ‘성스러운 물’을 뜻하며 일본인은 물론 교토와 근처의 오사카와 나라, 고베 등지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이 성스러운 사찰을 경험하기 위해 찾아와 교토에서 가장 방문 순위가 높은 곳으로 자리했다.
일본 최대 규모라는 3층탑을 지나 청수사의 무대라고 불리는 본당의 기요미즈노부타이(淸水の舞台)에서는 교토 시내의 전경이 펼쳐지고 본당을 지나쳐 기슭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청수사의 본당이 교토와 함께 담긴다. 사계절 내내 한결같이 아름답다는 청수사. 사람들은 이 성스러운 물을 통해, 청수사의 방문을 통해 비로소 성스러워질 수 있을까. 언젠가 가을에 단풍으로 둘러싸인 청수사를 제대로 보고 싶을 뿐이다. 청수사는 간사이 지방 33곳의 관음성지 중 한 곳이다.
교토의 동맥, 교토역과 교토타워
이곳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무언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교토를 예상하고 왔다가 적잖이 놀란다. 가로 길이가 470m에 이르는 현대식 건물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은 확실히 교토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거리감이 있다. 세로로 높게 짓지 않고 가로로 길게 늘인 것은 교토 사람들이 감히 왕궁을 내려다 볼 수 없어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교토역에서는 교토의 야경을 볼 수 있다. 11층 정도의 높이에 위치한 스카이가든에서 바라보는 교토 남쪽의 밤풍경은 1200년이 넘는 도시에 반딧불이 내려앉은 것처럼 불을 밝힌다. 스카이가든으로 오르기 전 보이는 LED계단은 교토역에서만 볼 수 있는 빛의 쇼. 교토는 밤을, 그리고 밤은 교토를 서로 감싸 안고 둘은 역에서 이렇게 만난다.
밤의 교토타워는 금각사와 은각사가 가지지 못하는 색을 가지고 있다. 타워는 밤이면 더욱 또렷한 색의 옷을 입고 어두운 하늘로 올라 마치 등대처럼 교토 전체를 비춘다. 교토타워는 정작 타워 안에서는 볼 수가 없기에 교토역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 전통과 명예를 중시하는 교토 사람들은 처음에 이 교토 땅에서 무언가 갑자기 솟은 듯한 교토타워 건설을 반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토타워 역시 교토의 부분일 뿐. 혹시 알까? 수백 년이 흐른 다음엔 이 교토타워 역시 교토의 문화유산으로 남을지.
붉은 너무나 붉은, 후시미이나리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단 두 가지의 조건이 있었다. 아침 일찍 혹은 밤늦게 또는 새벽에.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나는 이른 아침을 택했다. 역시 서둘렀다. 좀 더 빨리 가고 싶었지만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시간은 여덟 시. 입장료가 비싼 교토에서 무료입장과 24시간 오픈이라는 조건은 상당히 고맙다. 후시미이나리 입구엔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나는 경건하게 마음을 먹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붉은 도리이는 멀지 않은 곳부터 시작됐다. 후시미이나리신사伏見稻荷神社)는 무려 1,300여 년 전인 771년에 한반도 도래인의 후손이 세웠다는 것이 정설이다. 처음에는 농경신을 모셨으나 이윽고 장사를 번창하게 해달라는 주변 상인들과 마을 사람들의 기원으로 발전했다. 그 염원의 상징인 도리이는 하나 둘씩 늘어나게 되었고 이렇게 4km에 가까운 구불구불한 도리이 숲을 만들었다. 센본(千本) 도리이라고도 불리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리이는 천 개를 훌쩍 넘었고 일본 전역에 이나리 신사가 4만여 개가 된다고 하는데 그 총 본산이 바로 이곳이다.
촘촘하고 빼곡하게, 마치 빨간색의 소나기가 가지런하되 다급하게 땅에 꽂히듯이 도리이는 이어져 있었다. 내 앞에 있던 몇 명의 사람 그리고 내 뒤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이 붉은 터널에 머물러 있거나 스스로 갇힌 사람들만이 이 아침 시간의 순례길에 있는 전부였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비면 더욱 좋았을 것 같았다. 눈이 살며시 붉은색 도리이에 얹혀있었다고 해도 좋을 뻔했다. 물론 겨울이었으면 했다. 눈앞에서 갑자기 많은 장면과 그림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내 눈이 원했다. 무엇이든 많고, 가득 담기기를. 두 아이가 도리이를 세며 놀고 있었다. 지팡이를 양손에 짚고 올라가는 여성이 있었다. 허리가 몹시도 구부정한 노인이 불편한 걸음이지만 침착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크게 웃지 않았다. 분명 즐거워하고 있었지만 기쁘다는 감정과 재미가 있다는 얼굴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들은 이 길에 그저 서 있는 것이었다.
내 걸음의 속도와 맞지 않은 그들의 엄숙한 순례길을 나는 조심스럽게 앞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상징인 여우가 곳곳에서 다양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다. 벼를 상징하는 농경신인 이나리(稻荷)신의 사자가 여우이기에 후시미이나리를 여우 신사라고도 하는 이유이다. 여우가 물고 있는 각각 다른 것들. 어떤 여우는 곡식을, 어떤 여우는 열쇠를쌀 창고의 열쇠를 뜻한다고 한다 또 어떤 것은 구슬을.
사람들의 염원은 여우의 입에 물리고 여우는 그들에게 부와 그에 따른 평화를 가져다준다.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믿고 싶어 한다. 정상까지 천천히 두 어 시간. 붉은 터널을 빠져나오면 정상 바로 아래, 교토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신체적으로 힘든 호흡과는 다른 숨을 내쉬어본다. 이제 수많은 관광객들이 밀려올 시간, 산을 옆으로 크게 돌아 내려오는 루트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붐비는 도리이숲에 머물고 싶지 않았기에 서둘러 내려오기로 했다. 길을 내려오면서 묘하게도 금각사가 떠올랐다. 금각사를 태운 사람이 이곳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또 다른 숨이 새어나온다. 내려오는 길, 사람들이 많이도 올라오고 있었지만 도리이숲의 붉은빛은 그대로였다.
단지 구름에 가렸던 햇빛이 기둥 사이로 조금 스며들 뿐. 다시 터널을 통과해 처음 들어갔던, 그러니까 처음 마법이 시작되었던 입구로 나왔다. 사람들은 뒤늦게라도 이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데미즈 의식을 행하며 손과 입을 씻고 스스로 경건해진다. 후시미이나리가 가지고 있는 그 붉음의 세계, 그것은 금각사나 은각사가 가지고 있던 황금빛과 검은 기운을 넘어 내속에서 완전하게 터져버렸다. 서서히 터져버린 것이 아닌 정말 끝까지 다 타버린, 그 이름 전소. 나는 다시 한 번 교토에 올 결심을 한다.
몹시도 추운 겨울밤의 후시미이나리를 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