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감성여행

[ 관광지 ] 사파에선 발자욱마다 떨림이

사파에선 발자욱마다 떨림이

손끝에 느껴지는 온도가 사근사근 간지러울 때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알음알음 꼬수운 내가 날 때문득 생각한다. 이곳에 머물고 싶다고. 

물기를 가득 머금어 번지는 수채화빛 물결이 자리한 곳. 바로 사파다. 하노이에서 버스로 5시간 달려 도착한 해발 1,650m 높은 하늘과 맞닿아 자리한 도시. 하늘 위에는 또 다른 집이 지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이 산다. 자욱이 낀 안개 속에 사람과 도시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자신의 색이 옅어지면 사람과 도시는 서로의 채도를 맞추고, 자연스레 스며든다. 누군가 사파를 몽환적인 도시라 했던가. 그곳엔 꿈속에서나 볼 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소수민족의 일상 속을 거닐어

사파는 트레킹의 성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곳곳에 커다란 배낭을 멘 트레킹 애호가들이 가득하다. 고산지대의 수려한 풍광을 찾아 저마다 등에 한가득 설렘을 안고 길을 걷는다. 깟깟마을은 사파 최대의 소수민족 마을이자, 사파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트레킹 코스다. 이곳엔 블랙흐몽족이 살고 있다. 영어로는 Cat Cat.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검은 옷을 입은 블랙흐몽족을 검은 고양이에 비유해 캣캣마을이라고 부르던 것이 그 시작이라고.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전통복장을 한 아이들이 그네에 올라 있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들의 바지런한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블랙흐몽족은 계단식 논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직물 수공예 제품을 만들며 살아간다. 눈앞에서 직물을 짜는 광경을 생생하게 보고 있자니, 커다란 공방에 와 있는 듯하다. 그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 직물이 늘어져 있는 길을 지나 어느덧 선녀폭포를 마주하게 된다면, 이 마을의 절반은 들여다본 셈이다. 폭포와 마주보는 커다란 나무 위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오두막이 자리하고 있다. 다리는 벌벌 떨리지만 이왕 이곳에 왔으니 볼 수 있는 건 다 봐야겠지, 호기심이 나를 이끈다. 겉으로 보기에 촘촘히 짜여진 듯한 사다리도 몸 하나 실으려면 한없이 부실해 보이는 건 사실. 모든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몸 하나만 가벼이 위로 오른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안전망 하나 없이 사방으로 뚫린 덕에 한 발짝 내딛는 것도 겁이 나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린다. 비극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벌벌 떨리는 다리도 멀리서 보면 아마 우스꽝스러운 희극일 테다. 폭포를 지나 강을 옆에 끼고 나무가 드리워진 비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끝이 보인다. 같이 오두막을 올랐던 전통복장의 관광객들이 하나둘 오토바이를 잡아탄다. 무더운 날씨에 걷는 것 대신 문명의 이기를 잠시 빌리기로 했나 보다. 오토바이 운전수의 등에 붙어 환히 웃음을 지어 보이는 걸 보니, 그건 아마도 탁월한 선택.

무릇 도시에게도 성장통이

마을엔 고유의 색이 깃들어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가톨릭교회와 광장은 사파에 유럽의 색을 칠했지만 마을에 덧입혀진 색은 고유의 색을 지우기보다는 부드러운 질감의 새로운 색을 만들어 냈다. 지금도 사파는 새로운 색을 덧입는 중이다. 사파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흙먼지가 날리는 공사 현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도시는 변화의 과정을 겪기 마련. 오랜 옛날부터 이곳에 있었을 것만 같은 때묻은 건물과 방금 태어난 것 같은 반짝이는 건물이 공존하는 시간. 변화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눈에 밟힌다. 도시의 성장을 지켜본다. 사파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사파 광장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생계의 터전이다. 광장 가운데에서는 공을 차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얼굴이 활기차고, 시멘트 계단 위에서 장난감을 굴리며 노는 아이의 얼굴이 제법 진지하다. 광장을 주위로 관광객들이 오가는 길거리에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화장을 하고, 알록달록한 전통복장을 한 꼬마 아이들이 팔찌를 건넨다. 제법 키가 큰 소녀들은 간절한 눈빛을 보내 오는데, 네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꼬마 아이들은 서로 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다.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라고 손에 건네준 팔찌는 아이들에겐 장난감일 뿐이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좋아 사진에 몇 컷 담았더니 저 멀리서 아이들의 엄마가 달려온다. 아이들에게 진지한 얼굴로 뭐라 말하고는 이내 다시 팔찌를 내민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엄마의 뒤에서 큭큭 웃기 바쁘다. 나이가 어릴수록 엄마의 속은 타들어 가는 걸 보니 미운 네 살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그래도 해맑으니 됐다. 

사파의 동산에 올라

사파 교회 뒤편의 골목에는 함롱산으로 가는 길이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한 바퀴 둘러볼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곳인데, 그저 골목인 줄 알았더니 사파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문이 숨어 있었다. 함롱산은 해발 1,880m다. 사파가 해발 1,650m에 이르는 고산지대니, 그리 높지 않은 완만한 산이다. 그래도 산인지라 지레 겁먹고 오르지 않는 몇몇 일행을 뒤로하고 씩씩하게 길을 나섰다. 등산로를 따라 세로로 길게 뻗어있는 암석들과 작은 난초들이 피어 있는 정원이 있어 산이라기보다는 잘 꾸며진 정원에 가깝다. ‘SAPA’ 글씨가 꽃으로 피어난 곳은 너도나도 인증사진을 찍는 함롱산의 촬영 스폿이다. 산 중턱에 위치한 민속 공연장에서는 하루에 네 번 무료로 소수민족의 전통 춤과 노래를 감상할 수 있으니 시간을 맞춰 산을 오르는 것도 좋다. 어느덧 눈앞에 고지가 보인다. 트레킹으로 다져진 근육을 뽐내며 멀찍이 앞서 나가는 일행을 따라잡기는 벅차지만 덩달아 걸음을 재촉했다. 고산지대라 추울까 챙겨 온 겉옷이 무색하다. 바위 사이로 빼꼼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햇빛이 지나는 자리를 따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윽고 전망대에 다다랐을 때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호수와 오밀조밀 주황빛 지붕이 가득한 사파 전경. 베른에 온 것 같아. 언젠가 스위스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파는 사파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판시판산에 오르기 전에 지레 겁부터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독히 운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정동진에 5번 갔지만 해돋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스위스에 있는 일주일 내내 비가 와서 융프라우나 리기산의 절경도 보지 못하고, 액티비티도 하지 못했다. 내일 비가 올 수도 있다는 소리에 같이 간 일행에게 미안해 괜히 밤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니 밤사이 내린 비에 하늘이 파랗게 걷혔다. 다행이다. 일어나자마자 창을 열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판시판은 무려 해발 3,143m에 달한다. 인도차이나 최고봉이라더니,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 올라 까마득히 발 아래로 펼쳐지는 계단식 논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 위엄을 실감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펼쳐진 하늘을 보며 절로 조상님께 감사하게 된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맑은 하늘의 판시판을 볼 수 있다던데, 조상님께서는 판시판에 덕을 올인하셨나요.베트남 국기가 펄럭이는 판시판 정상의 조형물 앞에서 기념 사진은 필수다. 인생숏을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베트남 국기도 마련돼 있으니, 정상까지 올랐다면 힘껏 새빨간 베트남 국기를 흔들며 기념 촬영을 해보자. 새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빨간 국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장면이 어찌나 마음속을 헤집어 놓던지. 판시판 정상에서는 한국에서부터 곱게 챙겨 온 경량 패딩에 깊이 감사했다. 경량 패딩에 바람막이까지 껴입었는데도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진다. 판시판 정상에 위치한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이 추위가 녹을 때까지만, 이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만, 커피의 진한 향에 디저트 같은 광활한 풍경을 눈에 다 담을 때까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밍기적거리기에 딱 좋은 날, 딱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