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하동에 깃든 봄
봄, 같은 너와 갈 만한 카페를 찾았다. 오늘은 누하동, 서울에서 가장 오랜 서점인 ‘대오서점’, 50년 전통의 동네 중국집 ‘영화루’를 이미 안다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효자동, 필운동, 옥인동, 통의동, 체부동 등등. 서촌이라고 불리는 여러 갈래들 사이에서도 누하동은 그중 참하다. 경복궁역과 통인시장 부근을 지나 대오서점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한가한 구간에 닿는다. 주택가와 상점이 적당히 사이좋게 거리를 둔 지점에서 카페 몇 곳을 찾았다. 나긋하고 상냥한 봄 같은 사람이 생각이 났다. 누하동이 그런 동네다.
한낮의 한옥카페 우고 UGO
킁킁. 코부터 반응한다. 정체는 ‘로즈 머스크’. 디퓨저가 아니라 정말로 향을 피워 나는 향은 궤짝도 창살의 결도 그대로 살린 한옥에 더없이 잘 녹는다. 사람이 없다고 당황하지 말고 카운터로 다가가 종을 울리자. 드르륵, 서글서글한 인상의 젊은 주인장이 문을 열고 반갑게 맞이할 테니. 의류디자이너였던 그는 어머니가 옷가게로 쓰던 한옥 건물을 개조해 작년 말부터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인찬스를 동원해 천장이며 벽이며 직접 인테리어를 완성했다고. 그 지인 중의 한 명이 믹솔로지(Mixology)에 능한 바텐더였던 것이다. 우고가 특히 티 베이스 음료에 강점을 둔 이유다. 새빨간 히비스커스를 넣은 ‘히비스커스 피즈(Hibiscus Fizz)’와 말차를 이용한 ‘그린 포레스트(Green Forest)’는 이름도 색도 곱다. 좌식 테이블과 약간은 끈적대는 알앤비 배경음악의 템포까지. 평일 낮 뒹굴기에 최적인 환경이다.
유유하고 자적하게 풍류관
중국집이나 도자기 공방이 아니다. 커피가 맛있기로 소문난 서촌 카페 ‘스펙터(spectre)’의 2호점인 풍류관은 핸드드립 커피에 특화된 카페다. 유럽 빈티지 감성을 입은 스펙터와는 달리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풍류관은 동양적이고 동양적이다. 우리네 밥상이 이리도 트렌디한 물건이었나. 벽돌에 걸린 동양화와 빨간 카펫, 소반에 두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조합이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에티오피아, 코스타리카 등 드립커피는 기본이고 우유를 넣은 카페오레도 추천. 아이스크림의 그것과는 달리 보리차처럼 구수하고 담백한 한 모금과 모나카에 속을 채운 앙버터 한 입의 궁합이 짝짜꿍 잘도 맞다. 주방과 테이블이 하나의 공간에 활짝 열려 있는 구조여서인지 어느 양반의 가정집에 온 듯한 기분도 든다. 가오픈 기간인지라 SNS에 뜨는 공지로 늘 오픈시간을 확인해야 하는 방식만도 그렇다.
분위기로 꽉 찬 서울커피상회
희끗하게 벗겨진 콘크리트 벽에 새하얗게 드리운 커튼, 드라이플라워 한 움큼에 앤티크한 가구와 소품, 어둑한 조명까지. 분위기란 분위기는 모두 갖춘 덕일 테다. “자리가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해 주세요”라며 들어서는 손님에게 일일이 공지할 정도로 서울커피상회는 ‘서촌 카페’로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다. 혼자보다는 둘이 오붓하게 앉아 마시기 좋은 메뉴는 말차크림프레소와 아인슈페너. 층층이 올려 내는 데 적잖은 공이 들었을 말차크림프레소는 휘휘 젓지 말고 그대로 마시면 되는데 부들하고 쌉싸래하다가 달콤한 맛이 차례로 정직하게 온다. 가끔 껌 포장지 같은 데서 훅 올 때가 있긴 하다만. ‘괜찮아, 마음에 가시가 좀 나 있어도’, ‘꾸미는 여자보다 꿈이 있는 여자가 예쁘다’ 카페 곳곳에 쓰인 문장들이 가슴을 치는 건 들려오는 노래 혹은 계절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