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위의 코스모폴리탄, 두바이
두바이는 사막 위에 거짓말처럼 세워진 기적의 도시다. 세계 최상급의 타이틀은 죄다 거머쥔 욕망의 세계. 40년 만에 쌓아올린 현대적인 마천루 사이를 걷다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흙빛 골목을 산책하고, 오만 국경에 위치한 하타에 로드 트립도 다녀왔다. 과거와 미래, 대도시와 대자연을 넘나들며 마주한 오늘의 두바이.
아무도 모르는 도시
이따금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부르즈 칼리파는 전 세계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 그 도시가 중동의 두바이라는 것도. 최첨단 건축 기술이 집약된 828미터 초고층 빌딩, 태양에 번쩍번쩍 빛나기까지 해서 똑바로 쳐다보기가 쉽지 않은 부르즈 칼리파는 여지없는 두바이의 상징이다. 그저 최고층 타이틀 때문만은 아니다. 두바이가 품고 있는 어떤 욕망을 대변하는 존재인 것이다. 두바이엔 온갖 건물이며 장소할 거 없이 세계 최고, 혹은 세계 최대, 세계 최초의 수식어가 붙는다. 모든 게 최상급이고 과장됐으며, 적당한 건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처음에는 감탄사를 멈추지 못한다 해도 며칠이면 무덤덤해지고 만다. 어느샌가 그 최상의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여러 의미에서 두바이는 아찔하다. 과거와 미래를 순식간에 뛰어넘고, 땅과 하늘을 오가는, 한계가 모호한 세상이다. 도시는 폭발적으로 진화 중이다. 한때 황량한 모래밭이었던, 진주를 캐던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40여 년 전을 생각한다면, 여행자로서 단 며칠 만에 두바이의 성장 속도가 피부로 느껴진다고 말하는게 과언이 아닌 거다. 1960년대와 비교해 인구도 무려 130배 이상 늘어났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도시의 절반은 지금도 공사 중이다. 농담이 아니라 세계에서 크레인이 가장 많은 모여 있는 곳이 두바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그 말이 이곳에서는 진리다. 순수 에미라티, 그러니까 아랍에미리트의 국적을 가진 현지인이 인구의 15퍼센트에 불과한 것도 이 도시를 처음 마주한 이에겐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머지 85퍼센트는 일하기 위해 찾아든 외국인이라는 뜻. 두바이에서는 누가 로컬이고, 누가 관광객인지 구별하는 일은 절대 불가다. 두바이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로컬도 결국은 잠깐 머무는 외국인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한편, 우리가 에미라티와 우연이라도 말 섞을 확률은 낮다. 물론 거리에서 스쳐지나가긴 하나, 에미라티는 이 나라의 상류층으로 공무원이나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에만 종사하기 때문이다. 새하얀 칸두라를 입은 남자, 검은색 아바야를 입은 여자를 보면 그들이 에미라티구나, 하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겨우 며칠 동안의 감상에 불과하지만 두바이는 마치 할리우드의 재난영화의 결말과 닮았다. 사람이며 기술할 것 없이 지구의 온갖 귀한 것들을 모두 보호해두었다가 종말 후에 다시 시작되는 세계에 풀어놓은 듯한. 모래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사막 한가운데를 거짓말처럼 장악한 두바이의 마천루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엉뚱한 상상이 머리를 스치기 마련이다. 두바이 하늘을 깎아놓은 풍경은 단순히 오일 머니에서 시작된 부의 자랑만은 아니다. 당연히 그 출발은 척박한 땅에서 기름을 찾아낸 1960년대였으나 오늘의 두바이가 향해가는 미래는 두바이 국왕(아랍에미리트는 7개 토후국으로 이뤄진 나라)이자 아랍에미리트 부통령인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 꿈꾸는 또 다른 세상이다.
“우리는 100년도 살지 못하겠지만, 우리의 창의력으로 창조한 유산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지난 40년 동안 두바이를 완전히 뒤바꿔 놨다. 1985년의 국영 항공사 창설은 칭송받는 그의 업적 중 하나이고, 부르즈 알 아랍, 주메이라,부르즈 칼리파. 팜 아일랜드 등 지금의 두바이의 이름을 있게 해준 랜드마크들도 전부 그의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사실 하나는 석유산업이 현재두바이 GDP에서 5퍼센트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름이 더 이상 두바이의 기적이 될 수 없다는 걸 일찌감치 예감한 두바이 국왕은 다른 미래를 계획해왔던 것이다. 관광, 항공, 금융, 부동산에 기댄 경제는 두바이의 오늘을 새로이 조각하고 있다.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제다 타워가 완공될 예정이다. 세계 최초로 높이 1킬로미터가 넘는 탑이다. 이에 가만히 있을 두바이가 아니지, 두바이 국왕은 발 빠르게 두바이 크릭 타워의 건설을 지시했다. 아직 정확한 숫자가 공개되지 않아 확신할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크릭 타워가 제다 타워보다 조금 높을 거라 예상하고 있다. 어떻게라도 세계 최고를 놓치지 않으려는 욕망의 반증. 그나저나 부르즈 칼리파가 세계 3위의 마천루로 하락하는 날이 머지않았다니, 그래서 두바이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속속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며칠이 힘들었던 건 그래서였을 거다. 먼 미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두바이, 여행자로서 이 도시를 제대로 즐기는 법은 오늘을 잘 먹고 잘 노는 것밖에 없다. 두바이에서 오늘이란, 모든 것의 최상급 순간이니까.
쇼핑으로 시작하는 휴식
두바이에 사는 로컬들의 삶은 단순하게 세 가지로 해결되는 듯 보인다. 먹고 마시고 쇼핑하기. 두바이관광청의 홈페이지에 쇼핑몰 가이드 부분에서 무릎을 칠만한 문구를 하나 발견했다. ‘이 도시의 비공식 스포츠가 쇼핑이다.’ 보통 여행지에 가면 로컬들이 즐겨 찾는 아지트에 솔깃하기 마련이다. 그 도시의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런 장소니 말이다. 두바이에서는 쇼핑몰이 그러하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있는 100개 이상의 쇼핑몰을 섭렵하는 일, 그게 바로 두바이 로컬처럼 노는 법인 셈이다. 단, 두바이에서의 쇼핑몰은 의미가 좀 다르다. 이 도시의 쇼핑몰엔 상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보통 물건을 사면서 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되는 기막힌 공간이다. 만약 단 하나의 쇼핑몰만 둘러봐야 한다면, 그리 어려운 결정은 아니다. 두바이 몰에 가면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라는 타이틀을 꿰차고 있는데, 규모가 축구장 50개를 합친 것만 하다. 한 지붕 아래 입점한 상점 수만 1200개 이상. 갤러리 라파예트와 블루밍데일스 백화점도 이에 포함된다. 신발 가게만 40개가 밀집해 있는 레벨 슈즈를 상상해보라. 아무리 쇼퍼 홀릭이라도 두바이 몰은 만만하지 않을 거다. 쇼핑몰만 돌아다니는 택시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넘쳐나는건 숍만이 아니다. 카페와 레스토랑의 개수도 200개를 넘긴다. 올림픽 대회 규격의 아이스링크가 있고, 아쿠아리움과 언더워터 동물원이 있으며, 테마파크 수준의 브이알 파크, 22개의 스크린이 있는 극장 등이 들어서 있다.
두바이 몰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은 또 하나의 도시다. 참고로 두바이에서 두 번째로 큰, 몰 오브 디 에미리트에는 슬로프 5개를 갖춘 실내 스키장까지 있다. 얼마 전까지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거대 쇼핑몰이 두바이의 상징이었으나 최근에는 오픈 에어스타일에 층수가 낮은 쇼핑센터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박스 파크와 시티 워크다. 다운타운과 부유하고 활기찬 동네 주메이라 사이에 터를 잡은 시티 워크는 ‘두바이 쇼핑’의 정의를 다시 쓰는 중이다.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종합쇼핑문화지구. 오픈된 광장과 거리는 런던 스타일. 야외 카페에 앉아 패션 부티크를 드나들며 쇼핑백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세련된 에미라티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칸두라와 아바야로 온몸을 뒤덮고도 무엇을 그렇게 사는 것인지. 시티 워크는 명품 숍에서 막 쇼핑을 마친 에미라티들이 슈퍼카에 올라타는 그런 동네다. 한편, 박스 파크는 선박 컨테이너를 재활용해서 꾸민 독특한 공간이 돋보인다.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린 구조물이 신기한데, 이렇게 만든 알록달록한 컨테이너 건물들이 알 와슬 로드를 따라 1.2킬로미터 가량 펼쳐져 있다. 펑키하고 다소 차가운 도시 분위기에 상점이나 카페와 레스토랑도 평범하지 않아서 젊은 감각의 힙스터들의 아지트로 거듭나고 있다. 다른 쇼핑지에 비해 꽤 한가로운 편. 낮보다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밤이 특히 아름답다.
힙스터가 사랑하는 동네
노는 스타일이 조금 다른 로컬들은 알세르칼 애비뉴로 향한다. 공장과 카센터가 밀집했던 알 쿠오즈 지역에 조성한 예술 구역. 창고를 개조한 투박한 건물에 2007년부터 갤러리와 작업실, 편집숍, 카페 등이 들어서면서 현재 중동 예술의 중심지로 우뚝 섰다. 갤러리만 20개 이상으로 뉴욕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레일라 헬러 갤러리가 가장 유명하다. 미국과 유럽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한다. 갤러리 이자벨 반 덴 에인데의 경우 중동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부 캐주얼한 소파로 좌석을 꾸며놓은 독립극장 시네마 아킬을 비롯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공간이 알세르칼 애비뉴 3개의 골목을 따라 보석처럼 숨어 있다. 매일같이 무언가가 창조되는 두바이에서 지금 가장 핫한 곳은 이번 여름에 새롭게 오픈한 라 메르다. 위치는 펄 주메이라와 주메이라 베이 사이. 바닷가를 끼고 있는 이 공간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딱히 없다.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해변이 있으며, 거리마다 레스토랑과 카페와 상점이 즐비하고, 야자수 길과 그라피티 벽화가 멋스러운 곳. 사람들의 표정도 두바이 도심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오픈한 지 겨우 몇 달, 로컬들의 방문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넓고 탁 트인 공간에 해안가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캘리포니아 어느 휴양지라고 해도 깜빡 속을 지경이다. 모래 해변 너머 파노라마로 깔리는 아찔한 스카이라인이 이곳이 두바이라고 되새겨 준다.
도시의 옛 시간을 걷다
두바이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도시의 길을 걸었던 건 절대 아니다.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현대적인 빌딩이라곤 하나도 볼 수 없는 밋밋한 흙빛의 광야였다. 오늘날의 모습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반세기도 채 되지 않으니 생각을 거듭할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두바이는 도시를 알파벳 L자 모양으로 관통하는 수로 두바이 크릭을 중심으로 미래와 과거, 둘로 정확하게 나뉜다. 남쪽에 있는 부르 두바이는 도시의 가장 오래된 지역이고, 반대편의 데이라가 우리에게 친숙한 신시가지다. 워낙 극명하게 다르다보니 누구나 한쪽을 선호하는 일도 흔하다. 우리가 기대하는 중동이라는 곳의 매력은 사실 부르 두바이에 응축되어 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초현대적인 두바이 도심이 다소 버거운 이들이라면 올드 두바이가 그 마음을 진정시켜줄 수 있다. 부르 두바이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시간의 속도마저 느려지는 듯한 기운이 덮친다. 우선, 건물들의 높이가 현저히 낮다. 뾰족 솟은 이슬람교 예배당의 첨탑만이 유일하게 높을 뿐. 게다가 모스크부터 호텔, 상점, 옛 주택가까지 전부 흙빛으로 모래바람이 불면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올드 두바이를 제대로 보는 방법은 진득하게 걷는 것이다. 출발은 알 파히디 역사 지구에서 하는 것이 좋다. 1900년대 초 페르시아 상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했던 지역이자 60여 채의 건물이 말끔하게 보존되어 있어 두바이의 옛 시간을 대변하는 장소다. 며칠간 신시가지에서만 머무른 여행자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듯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할 테다.
알 파히디 역사 지구에는 옅은 아이보리색의 네모난 상자 같은 건물들이 미로처럼 좁은 골목들을 따라 줄줄이 이어진다. 겉으로만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 속을, 벽을 따라 헤매듯 돌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 적용된 전통적 건축법도 인상적이다. 위로 불쑥 튀어나온 사각 탑은 아랍인들의 지혜로 만든 바질, 즉 ‘바람의 기둥’이다. 위쪽에 부는 뜨거운 바람이 탑으로 들어와 아래쪽에 있는 찬 물을 통과하면서 집 안에 시원한 공기를 돌게하는 방식이다. 고온 건조한 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한 천연 에어컨이었던 셈이다. 단순한 형태의 흙색 건물들 사이에서 너무도 새하얀 덕에 더욱 경건하게 느껴지는 알 파루크 모스크가 우아하게 빛난다. 알 파히디는 사방이 희미한 모래 색깔이다 보니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이면 그렇지 않아도 뽀얗던 분위기가 더할 수 없이 신비로워진다. 광장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벽을 타고 오르는 작은 넝쿨 하나까지도 곱고 싱그럽다. 알 파히디 역사 지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요새 하나가 강한 아우라를 풍긴다. 1787년에 건설한 알 파히디 요새. 이 요새는 두바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71년부터 내부는 두바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바이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마저 채울 수 있는 완벽한 장소. 두바이 옛 지도와 1960년대 오일을 처음 발견하기 이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생활문화와 그 변화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사람 실물 크기로 만든 모형으로 꾸며놓은 공간은 아랍 전통문화의 일상생활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통 가옥, 모스크, 수크, 대추야자 농장, 사막, 바다등에서의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고대시대의 무기와 약 3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의 출토품도 소장하고 있다.
올드 두바이 놀이
멀찍이서 구경만 하다 돌아가는 건 알 파히디 역사 지구를 반만 알고 가는 거다. 문밖에선 절대로 예상할 수 없는 건물들의 쓰임새. 소수의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호텔 등이 차지하고 있는데, 산책 중에 대문이 열려 있는 곳이 있으면 한발 안으로 들어가 탐험하면 그만이다. 대표적인 곳이 엑스브이에이 아트 호텔. 좁은 입구와 달리 내부는 상상이상으로 복잡하다. 페르시안 스타일로 꾸민 14개의 룸을 갖춘 부티크 호텔은 과거 고급 시계 딜러였던 세디치 가문의 집이었다고 전해진다. 멋스러운 카페와 중동지역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갤러리도 함께 있어 여유롭게 쉬다 가기 좋다. 알 파히디 역사 지구에서 요즘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은 아라비안 티 하우스다. 실컷 걷고 난 뒤 지친 발을 쉬어가는, 목마름을 채우는 명소다. 인기 비결은 상큼한 분위기. 잔가지로 엮어 만든 하얀 의자, 새파란 나무 벤치, 안뜰에 따스하게 스며드는 햇살, 싱그러운 식물 화분들까지 조화롭다. 전통적인 아랍에미리트 음식을 선보이고 있어 두바이 로컬과 이방인할 것 없이 즐겨 찾는데, 에미라티들은 주로 커피콩에 사프란을 함께 갈아 넣어 향이 독특한 아랍 커피나 인도에서 넘어온 밀크티 차이 카락을 마신다.
달달하고 쫄깃한 대추야자를 곁들이면 환상의 궁합이다. 거대한 은쟁반에 스크램블 에그, 가지, 블랙 올리브, 페타 치즈, 허머스, 빵 등 여러 음식을 담아내는 아침 식사도 인기 메뉴다. 주말 아침엔 줄을 설 정도로 붐비기 때문에 아라비안 티 하우스에서 뭐라도 마실 작정이라면 서두를 것을 권한다. 두바이에서 꼭 경험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전통적인 나무 배 아브라에 올라타서 두바이 크릭을 건너는 것이다. 5분 남짓 떨어져있는 뱃길이 데이라와 부르 두바이를 연결하고 있다. 한 번에 탈 수 있는 인원이 스무 명쯤 되는데, 자리가 채워지면 배가 출발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뱃삯은 단 1디르함, 우리나라 돈으로 300원 정도다. 배 위에서 물길을 따라 끝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제법 베네치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더욱 다름없다. 걸프 해에서 흘러들어와 형성된 두바이 크릭은 과거 유럽과 아시아를 잇던 바닷길이다. 두바이 역사와 함께 흘러온 물길. 오래된 도시의 낭만을 만끽하는 방법으로는 아브라에 올라타는 것 만한게 없다. 배 위에 앉으면 비로소 두바이 삶의 현장에 가까워진 느낌을, 이국적인 중동의 맛을 본 듯 흐뭇해진다.
두바이 근교 여행지, 하타
거친 대자연의 매력
두바이를 여러 차례 다녀온 이들조차도 하타의 존재를 모른다. 여행자가 도시를 잠깐 벗어나는 경우는 20분 거리에 있는 사막 사파리에 다녀오는 일뿐이다. 그러나 두바이 초고층 빌딩 숲에서 차를 타고 44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1시간 30분 남짓 달리다 보면 눈앞의 풍광이 손바닥 뒤집듯 극적으로 바뀐다. 낙타와 오닉스가 거니는 끝도 없이 펼쳐져 있던 사막이 사라지고, 어느새 시꺼멓고 거친 돌산이 압도적으로 시야를 장악한다. 도끼로 툭툭 깎아낸 듯 투박한 암벽들. 그 사이를 뚫고 도로 위를 달리는 내내 창문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하타는 누구도 두바이에 기대하지 않는, 숨이 멎는 어마어마한 자연으로 가득한 세계다. 하타는 이웃 국가 오만의 북동쪽에서 시작해 아랍에미리트 동쪽까지 쭉 뻗어있는, 아라비아반도에서 고도가 가장 높다는 알 하자르 산맥의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두바이에서 겨우 134킬로미터 거리에 있지만, 공기부터 지형까지 확연하게 다르다. 지극히 야생적이며 박력이 넘치는, 묘한 매력이 있는 땅. 이번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모험심 강한 유럽인들 사이에서만큼은 인기여행지라는 거다. 소셜 미디어에 잠깐 검색해 봐도 하타에서 등산하고, 자전거 타고, 배 타고, 온갖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 시대의 모험가들을 볼 수 있다. 하타에서 가장 흔한 액티비티는 하이킹이다. 알 하자르에서의 하이킹은 일반적인 등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풀 한 포기 없는 땡볕 아래 험준한 바위투성이의 산을 헤매는 것에 가깝다. 조심해야 할 것도 한둘이 아니다. 사람 사는 마을을 제외하곤 문명이란 없으니까.
이동할 때 필요한 충분한 물과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하고,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아니라면 전문 가이드와 함께 하는 것이 안전하다. 한편, 오만과 국경을 지척에 두고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조금 먼 거리를 이동할 계획이라면 여권을 반드시 챙겨야 하고, 비자 필요 유무까지 확인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타는 매력이 철철 넘쳐난다. 짧은 데이투어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뭐든지 편한 세상을 살다 보면 불편함이 주는 재미가 또 있는 법이다.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을, 게다가 그것도 미래 도시 같은 두바이에서 출발해 하타를 마주하게 되면 감회가 남다르다. 거대하고 황량하고 메마른 돌산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감동이다. 최근 들어 하타를 향하는 여행자라면 무조건 카약을 즐긴다. 사막밖에 상상할 수 없는 두바이에서 카약이라니, 사기꾼의 달콤한 말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하타에 오면 카약을 타야죠. 저희 호텔을 찾는 손님 중 대부분이 낮이면 호수에 다녀와요.” 메마른 돌산에 둘러싸여 있는 우아한 4성급의 호텔로, 하타의 오아시스라고 칭할 수 있는 하타 포트 호텔 매니저의 말이다. 1990년대 주변 지역에 전기와 물을 공급하기 위해 하타 댐을 건설하면서 자연스레 인공 호수가 형성됐다. 둘레는 1.5킬로미터 남짓, 깊이는 17미터. 가만히 있어도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메마른 두바이 땅에서 참으로 생경한 풍광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장비는 호수 입구에 위치한 하타 카약에서 빌린다. 1인용과 2인용 카약부터 패들보트, 도넛보트, 투어보트, 워터 바이크 등까지 갖춘 여행사다. 청록빛의 호수 가까이에 바싹 붙어서 바라보는 알 하자르 산의 경치에 말문이 막힌다. 경이롭다.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웅대한 바위산의 압도적인 크기에 감탄하느라 노 젓는 일을 잊기 일쑤다.
하타 마을 산책
지금은 관광지에서조차도 사람 보기 쉽지 않은 하타가 곧 아웃도어 마니아들의 메카로 올라서는 날이 머지 않은 듯 하다. 두바이 부동산 개발업체인 메라스의 손이 마침내 하타에도 닿았기 때문이다. 10년짜리 에코투어리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으며, 그 의미로 얼마 전에는 알 하자라 산 450미터 지점에 할리우드 사인과 똑같이 생긴 ‘HATTA’ 사인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첫 번째 단계로 지난 10월 하타 와디 허브를 오픈했다. 온갖 종류의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종합 테마 파크로 마운틴 바이크, 승마, 양궁, 클라이밍, 짚라인, 프리폴 점프, 트램폴린 등의 시설을 갖췄으며, 전혀 과하지 않게 자연에 녹아들게 설계된 점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다소 날 것의 하타가 훨씬 매력적이긴 하지만, 앞으로 하타 프로젝트로 실행되는 시설들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하타를 여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어떻게 이런 곳까지 사람이 들어와 살았을까 싶은 하타에도 마을이 있다. 건기에는 메마르고 우기에는 물이 차는 하타 와디주변에 형성된 작은 규모의 마을. 1780년에 세운 주마 모스크가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숲이라고 부르긴 애매하지만, 놀랍게도 울창한 정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역사적으로 하타는 대추야자 농사를 짓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과일은 먹고, 나무는 건축자재로 썼다. 지금도 마을길을 걷다 보면 푸른 밭이며 대추야자, 망고, 라임 할 것 없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빽빽하다. 농장에 물을 대는 관개 시설이 마치 시내처럼 흐르는 걸 볼 수 있다. 코앞이 건조한 돌산인데, 나름의 푸릇푸릇함과 풍요로움이라니. 대조적이고 낯설고, 또 신기하기만 하다. 하타 마을 산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하타 헤리티지 빌리지다. 두바이를 여행하면서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은 옛날에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이곳이 대답을 들려준다. 요새를 중심으로 30여 채의 옛 전통 가옥을 복원해놓은 민속촌으로 내부까지 세심하게 꾸며놓아 생활상까지 짐작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직육면체의 상아색 건물로 보이지만 실내는 꽤 복잡하다. 지역 지도자였던 베이트 알 왈리의 집에 들어가 보면 집의 구조나 가구, 무기, 악기 등에 전통 생활이며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마지막으로 망루에 오르는 것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웅대한 알 하자르 산의 품에 아늑하게 안겨 있는 하타 마을과 그 주변 풍경이 360도 파노라믹 뷰로 펼쳐진다. 현대의 거대 도시로 돌아가기 전, 하타에서의 모험을 마무리하기에 완벽한 장소다.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두바이, 그와는 반대로 먼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하타. 그 둘의 극적인 감상은 쉬이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