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감성여행

[ 관광지 ] 캐나다 동쪽 끝,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 모험기

캐나다 동쪽 끝,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 모험기
Cape Breton Island Adventures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몸을 던져라. 그러면 반드시 전에 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서 캐나다의 작은 섬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에 살았던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그의 말처럼 누구나 쉬이 떠나지 않는 캐나다 동쪽 끝에서 모험에 뛰어 들었다. 두 발로 숲을 걷고, 카약에 올라타 노를 저으며, 고래를 찾아 바다를 헤매었다.

다정하고 순수한 섬

캐나다 동쪽 끝의 노바스코샤주, 거기에서도 북동쪽 끄트머리의 푸르른 땅. 캐나다 사람들에게 지도를 쥐여 줘도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그런 섬이 하나 있다.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 미지의 섬은 아니다. 오히려 캐나다 사람들이 설면서 한 번쯤 가보기를 소원하는 곳. 그저 손에 쉬이 잡히지 않는 목적지일 뿐이다. 인생의 크기에 비하면 찰나와 같은, 겨우 4일을 이 섬에서 머물렀던 나에게도 우리의 자연이, 인간의 삶이, 흘러가는 시간이 얼마나 찬란한 것인지 다정하게 보여줬다. 무스와 곰이 집으로 삼는 울창한 숲이 있고, 그 깊은 나무들 사이를 걷다가 이따금 먼 바다에 시선을 두면 고래가 숨을 쉬며 제 존재를 알려오는 거짓말 같은 세상. 일년 내내 이들의 식탁에 오르는 흔한 반찬은 싱싱한 랍스타요, 스코틀랜드인의 후손이 한 집 건너 한 집에 산다는 동네에선 밥상을 앞에 두고 바이올린을 켜도 발을 동동 구르며 춤을 춘다. 서울에서의 일상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이들의 매일. 나에게는 두말할 것 없고, 대자연의 품에서 사는 보통의 캐나다 사람들에게도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는 현실보단 꿈에 가까울 것이다. 지난 10월의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는 고요하고도 고요했다.

여름 한철 휩쓸듯이 찾아드는 관광객이 빠져나간 섬의 가을. 하늘을 파랗고 숲은 붉었다. 덩그러니 남은 계절은봄과 여름에 진득하게 숨겨두었던 제 마지막 남은 은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초록에서 서서히 붉고 노랗게, 주홍빛으로 혹은 금빛으로 물들이며, 11월이면 색깔들이 섬을 집어삼킬 것이다. 근사한 단풍놀이는 섬의 북서쪽을 빙 둘러 이어지는 총 300킬로미터의 순환 하이웨이 카봇 트레일을 달리며 하기로 했다. 1497년 이 땅에 발을 디뎠던 탐험가 존 카봇의 이름을 딴 도로. 그래서인지 카봇 트레일 드라이브가 모험 그 자체다. 산악지대를 오르락내리락 달리다 보면 숲과 바다의 호수가 융단처럼 사위에 펼쳐지는데, 눈 깜박하는 것조차 아깝도록 차창 밖 모든 순간이 장관이다. 압도적이거나 화려하진 않다. 오히려 수수해서 마음에 든다. 카봇 트레일은 '캐나다에서 가장 풍경 좋은 드라이브 코스'라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듣곤 한다. 언덕 하나를 넘으면 계곡을 겹겹이 뒤덮은 가을빛이, 다시 커브길을 돌면 드라마틱한 해안 절벽이, 이따금 도로 위로 거대한 무스가 끼어들어 오도 가도 못하니 말이다. 카봇 트레일 위의 모험이란 마음에 드는 곳에 멈춰 구경하고, 실컷 눈에 담으면 다시 달리고, 더 오래 머물고 싶을 땐 전망 좋은 리조트에서 하룻밤 지새면 그만인 것이다. 

어촌 마을을 어슬렁대면 부두에 쌓여있는 랍스터 어항을 구경하거나 푸짐한 시푸드 차우더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는 소소한 재미도 로드 트립의 매력이다. 다만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는 지금부터 휴식기에 들어가고 있다. 이미 몇몇 박물관과 레스토랑은 문을 닫았고 시내는 한산하다. 길고도 혹독히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섬은 마치 긴 잠에 빠진 듯 더 고요하고 쓸쓸해질 것이다. 일 년의 딱 절반, 5월부터 10월까지 그 기간 동안 여행자를 맞이하는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 물론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 그래도 나머지 시간동안 섬을 지키는 건 여전히 랍스터 잡는 어부와 머리 희끗희끗한 섬의 주민들뿐이다. 이제 다시 다음의 봄, 여름, 가을을 고대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단 4일, 짧았던 모험이 앞으로 견뎌내야 할 도시에서의 회색 삶을 꽤 오래도록 포근히 달래주고, 이 섬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온갖 감정과 생각들로 인해 나의 일상이 아주 조금은 변하게 될 거라는 작은 꿈을 품어 본다. 살면서 한두 번 캐나다 동쪽 끝 작은 땅에서 누렸던 가을빛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산과 바다,
무스가 있는 하이킹
SKYLINE TRAIL HIKING

스카이라인 트레일
'노바스코샤 주에 간다면 카봇 트레일을 꼭 달려야 해요. 그리고 카봇 트레일에 간다면 반드시 스카이라인 트레일을 걸어야 하고요.' 시드니까지 비행기를 몇 번 갈아타는 동안 옆자리에 앉았던 캐나다 사람들,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동양인에게 호기심 어린 인사를 건네는 동네 주민들까지 전부 같은 레퍼토리로 대화를 이끌었다. 카봇 트레일은 섬 북서쪽의 케이프 브레턴 하일랜드 국립공원의 3분의 1을 가로질러 뻗어있다. 게다가 섬 면적 중 20퍼센트가 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즉 카봇 트레일 드라이브를 하면서 하이킹을 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일랜드 국립공원에는 초보자를 위한 쉬운 산책길부터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되는 난이도 높은 등산로까지 총 26개의 트레일이 있다. 산악지대, 해안선, 툰드라, 늪지 등 길이 난 곳의 자연과 지형도 제법 다양하다. 그러나 너도나도 입을 모아 꼭 걸어야 한다고 등 떠미는 길은 스카이라인 트레일이다. 난이도는 초급. 어린 아이들도 거뜬히 걷는 산뜻한 산책길 수준이다. 어느 계절이 찬란하지 않겠느냐마는 스카이라인 트레일에서 느끼는 가을의 서정은 남다르다. 덩치 큰 사철나무와 달리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키 작은 풀들도 울긋불긋 계절을 즐기는 풍광이 독특하다. 

얼핏 보면 맨땅이 불타는 듯 보이기도. 바싹 말라버린 갈색 고사리와 가을볕을 닮은 노란 꽃 골드로드 사이로 발걸음을 살포시 옮기며 나아가는 길. 평지에 가까운 스카이라인 트레일은 마치 가을이라는 카펫을 깔아놓은 듯 곱고 폭신하다. 이 길 위에선 오감이 살아난다. 축축한 숲의 향기, 발끝에 흩어지는 흙냄새,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냄새,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스한 태양빛에 집중하게 된다. 한 걸음 한 걸음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어 카메라 셔터를 수도 없이 눌렀지만 사진 실력이 안타까웠다. 실제는 훨씬 더 황홀하다는 걸 알아 달라. 총 7.5킬로미터로 둥글게 도는 루프 트레일은 땀 흘리는 수고로움의 크기에 비해 얻어지는 기쁨이 크다. 길 끝에는 누구라도 격하게 감동시킬 드라마틱한 풍광이 기다린다.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의 찬란히 빛나는 서쪽 바다. 세인트 로렌스만의 아찔한 절벽을 향해있는 보드워크를 내려갈 때마다 바다가 벌떡 일어나 덮칠 것처럼 웅장하게 다가온다. 전망대 왼쪽으로는 지금껏 달려온 카봇 트레일의 구불구불한 자태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스카이라인 트레일 보드워크의 끝, 하이킹 후에 감상하는 일몰은 관광청이 추천하는 ‘노바스코샤주에서 꼭 해야 할 경험 25’ 리스트에 톱으로 올라있다.

고래를 상상하고 무스를 만나고
“운이 좋으면 햇볕에 반짝이는 수면 위로 숨을 쉬러 올라오는 고래를 볼 수 있죠. 신이 나면 점프도 하고, 꼬리도 흔들고요. 물개들도 헤엄치지요. 아니, 사실 운이 좋지 않아도 됩니다. 솔직히 여기에선 쉽게 보이는 풍경이거든요.” 마지막 전망대에 서서 바다를 노려보며 고래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국립공원의 파크 레인저 미란다가 다가왔다. 그녀의 말과 달리 운이 모자라 고래는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저 넓은 바닷속에 고래들이 수영하고 있는 상상을 하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모두 멈추세요! 말소리를 줄이고요. 무스가 편안해질 수 있도록 뒤로 조금씩 물러나세요. 어서요!” 앞서가던 파크 레인저 미란다의 다급한 목소리. 캐나다 야생동물의 아이콘 무스가 코앞에 서 있었다. 내 생의 첫 무스를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에서 마주할 줄이야. 입술까지 덜덜 떨리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무스는 판타지 영화에 등장할 법한 묘한 얼굴에 키가 2~3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구인데다가 그를 받치는 다리는 장대처럼 길고 말랐다. 눈앞에 있는 관목을 집착에 가깝게 뜯어 먹고 있던 무스는 암컷이었는데, 수컷의 경우엔 손바닥 모양의 큰 뿔이 자란다. 

매해 겨울 떨어졌다가 봄이 되면 다시 뿔이 자라나기 시작한다고. 신비하고도 멋지지만, 한편으론 사슴과 말, 소를 마구 뒤섞은 것 마냥 우스꽝스러운 동물이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보면 멍한 표정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무스를 말코손바닥사슴이라고 부른다. 현존하는 사슴 중에 가장 큰 종이다. 국립공원 안에서는 자연 보호를 위해 정해진 트레일을 벗어나면 안 되지만,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는 무스를 피하고자 파크 레인저를 따라서 숲을 멀리 가로질러 건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짝짓기 시즌엔 암컷도 수컷도 극도로 예민해진다. “가을이 무스의 짝짓기 시즌입니다. 지금이 피크예요. 무스 수컷은 소리를 내는 암컷에게 다가가 짝짓기를 해요. 종종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끼리 뿔을 부딪치며 싸우기도 한답니다.” 무스들만의 평온한 시간을 만들어준 미란다는 국립공원 직원들과 상의해 무스가 관찰된 구간을 즉각 폐쇄했다. 무스도 관광객도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숲과 바다와 고래와 무스가 있는, 스카이라인 트레일을다 걷고 돌아오는 길. 울창한 숲을 뒤돌아보며 저 나무 틈 어디에선가 무스들이 사랑하며 살고 있구나 생각을 하는 동안 발걸음을 돌리는 하이커들을 지켜보며 오늘의 운에 감탄했다.

반짝이는 물 위의 신선놀음
KAYAK PADDLING

노를 젖는 기쁨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는 카약을 타고 불러볼 수 있는 최고의 목적지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물줄기, 숨겨진 해안선을 따라 노를 저으면 등대, 폭포, 동굴, 독수리 둥지 등 차를 타거나 걸어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섬의 숨겨진 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고래와 물개를 코앞에서 마주하고 함께 물질하는 동화 같은 장면도 오로지 카약이 주는 기쁨. 몇 시간의 노질만으로도 어엿한 모험가 경지를 맛본다. 섬에서의 첫 일정이 카약이었다. 그런데 사실 핼리팩스에서 시드니까지 연결 비행기가 안개로 착륙하지 못하면서 회항하는 일을 겪었다. 새벽 3시 겨우 호텔 방에 누워 오전 9시 카약은 무리라고 중얼거리다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한나절 노를 젓고 나니 전날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렸다. 깊은 바닷물을 휘휘 저으며 아침을 보내는 동안 피로도 짜증도 하얗게 잊어버린 것. 물에 반사되는 강한 햇살에 눈도 못 뜨고 싱글 카약 노 젓기에 아등바등하느라 근육통을 얻었지만 수면에 바짝 붙어서 바라보는 풍경, 노를 물에 넣었다 뺄 때 ‘차르르르’ 소리를 내며 흩어지는 소리, 물 한가운데 둥둥 떠서 느끼는 고요함,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흰머리 독수리의 환영 인사까지 모두 감동이고 위로였다. 첫날부터 모험가 놀이에 빠진 곳은 카봇 트레일에 위치한 세인트 앤스 베이다. 십 대부터 이곳에서 카약을 탔다는 안젤로 스피나졸라가 운영하는 노스 리버 카약 투어스의 하프 데이 카약 투어에 참여했다.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단시간에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의 조각을 하이라이트로 경험할 수 있어서다. 

땅에서 안전 교육과 기본적인 노 젓기 방식, 균형 잡는 법 정도만 숙지한 후 곧장 바다로 나간다. 어려움은 별로 없다. 팔을 휘두를 힘만 충분하다면 말이다. 앞쪽에 달린 양 페달을 밟아 방향을 바꾸는 것도 수월한 편이다. 카약 위에서 보낸 시간은 3시간이 조금 넘는다. 총 거리는 6킬로미터 남짓. 카약에 정답은 없다. 원하는 속도로 천천히, 혹은 빨리 젓고 잠시 쉬기도 하면서 제 나름의 흐름을 타면 되는 일. 초보자로서 온 힘을 다해 바다를 헤치며 노를 저었다. 그러다가 힘들면 모래밭에 카약을 세워두고 미리 준비해간 바나나 브레드에 달콤한 루바브 잼을 발라 먹었다. 따뜻한 차이 티를 마시자 긴장했던 근육도 스르르 풀렸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물 냄새, 나무 바람 냄새에 취해 그렇게 다시 카약 위로 기어올라 노를 저었다. 카약 투어가 끝나고, 다시 뭍으로 돌아와 장비 정리를 마친 가이드 안젤로가 기타를 집어 들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이스트 코스트 뮤직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된 적도 있는 싱어송라이터. 그의 목소리와 기타 선율은 바람과 함께 흩날렸고, 몇몇은 잔디에 누워 빛을 쐬고, 누군가는 사과를 베어 물었다. 장코라는 이름의 개가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며 내 무릎에 검은털을 비비적댔다. 카약이 이토록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이었나? 인생이란 이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운 일이었구나. 다시 카약을 타고 나가 세인트 앤스 베이 어딘가에 여권을 푹 담가버려야 할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던 시간. 안젤로가 연주했던 노래 제목도 기가 막혔다. 아름답게 불완전한 Beautifully Imperfect.

고래가 사는 푸른 바다
WHALE WATCHING

섬의 꽃, 웨일왓칭 투어
세인트 로렌스만은 고래들의 세상이다. 5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둥근머리돌고래, 알락돌고래, 밍크고래 등 우리가 아는 온갖 고래들이 출몰한다. 마치 같이 짠 것처럼 여행자들이 섬에 모여드는, 딱 그 기간 동안에 고래도 찾아드는 셈. 그렇기에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를 여행하면서 고래를 생각하지 않는 일은 가당치 않다. 노바스코샤주에서 고래를 관찰할 수 있는 바다는 ‘웨일왓칭의 수도’라고 불리는 펀디 오브 베이와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 두 곳. 섬 북쪽에 위치한 세인트 로렌스만의 플레즌트 베이, 미트 코브, 잉고니시비치, 네일스 하버, 체티 캠프에 가면 고래를 찾겠다는 꿈을 싣고 항해를 떠나는 보트가 온종일 항구를 드나든다. 7~8월에는 하루에 5번, 6월과 9월 그리고 10월에는 하루에 3번씩. 해안가에 알록달록 장난감 같은 집들이 띄엄띄엄 들어선 작은 마을, 플레즌트 베이의 주요 산업은 어업이다. 봄에는 랍스터, 여름에는 스노크랩을 잡는다. 바다 옆의 숲에는 새도 많고, 여우와 코요테, 귀여운 눈덧신토끼도 산다. 갑싼 피시앤칩스 가게 말고는 분위기만 황홀한 바닷가 마을에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오로지 고래, 바다에 사는 아름다운 생명체를 만나기 위해서다.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에 사는 고래와 해양생물에 관해 전시하는 웨일 인터프리티브 센터에서 항구쪽으로 내려가면 임시 건물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전부 웨일왓칭 투어 보트 회사들이다. 하나같이 ‘저희는 확실히 고래를 보여드립니다’와 같이 자신 있는 문구로 유혹하는데, 본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알락돌고래 지느러미를 살짝 본 게 전부다. 2시간이나 바다를 헤맸지만, 고래 시즌이 끝날 무렵이기도 하고 바다 기상이 썩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라탄 보트의 이름은 개런티드 웨일스. 정원 35명의 2층짜리 작은 보트로 출발 10분 만에 몇몇은 이미 뱃머리에서 비닐봉지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상황이었으니 고래도 그날은 평온한 바다 안에만 머물길 택했을 테다.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세인트 로렌스만에 찾아드는 고래들을 의심하진 않는다. 보트 회사의 웹사이트나 브로슈어 말고 여행자들이 인스타그램에 직접 올린 플레즌트 베이 사진을 찾아보니 나의 경험과는 반대로 혹등고래가 물 위로 몸통을 반쯤 드러낸 사진부터 돌고래 떼가 보트를 따라 달리는 동영상까지 해시태그에 딸린 피드가 화려하더라.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가장 큰 고래는 단연 대왕고래예요.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이죠. 흰수염고래라고도 부릅니다. 

큰 대왕고래는 몸길이만 20미터 이상이고, 몸무게도 무려 100톤이 넘어요. 수면으로 올라와 호흡할 때면 분기공에서 분출되는 물기둥이 높이가 10미터까지 솟아오르죠.” 웨일왓칭 보트에는 해양 전문가가 늘 동행해 지식을 나눈다. 맨 눈만으로도 파도치는 먼 바다에 슬쩍 보이는 고래들을 거짓말처럼 다 찾아내는 기인들이다. “저쪽 바다에만 새들이 모여 있죠? 수면 바로 아래 오징어, 정어리, 참치 떼가 가득할 거예요. 주변에 돌고래며 고래도 있을 겁니다. 바다에서 눈을 떼지 마세요!” 그의 말에 따라 바다를 쫓다가 알락돌고래 한 마리의 둥근 머리를 얼핏, 지느러미를 정확히 봤다. 카메라 셔터 클릭도 불가능한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이게 바로 개런티드 웨일스. 혹등고래와 밍크고래를, 심지어는 보기 힘들다는 대왕고래도 볼 수 있다는 호기로운 포부를 싣고 떠난 배가 다시 항구로 돌아왔을 땐 세찬 바닷바람에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보트 2층에 올라 바람도 피하지 않고 고래를 찾아헤맸던, 딱 그 희망의 크기만큼.

바다 내음 가득한 식탁
SEAFOOD PARADISE

랍스터, 그리고 시푸드
노바스코샤주 관광청 담당자 파멜라의 집안은 대대로 랍스터 어부다. 아버지와 형제들도 모두 랍스터 어부. 파멜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랍스터 러버’다. 참으로 부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집에 넘쳐나는 랍스터를 매일같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단다. 그녀의 희망사항은 은퇴한 후에 랍스터 어부 체험부터 요리까지 해보는 랍스터 전문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이다.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에서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흔하디 흔한 게 랍스터 요리다. 삶은 랍스터, 구운 랍스터, 치즈 올려 구운 랍스터, 샌드위치에 랍스터 샐러드를 넣은 랍스터 롤, 심지어는 캐나다 대표 음식인 감자튀김에 치즈커드와 그레이비를 뿌려먹는 푸틴에도 랍스터 살을 올려 먹는다. 여기에서 놀라지 말 것. 맥도날드 메뉴에 맥랍스터 샌드위치까지 떡 하니 들어가 있으니까. 그러나 뭐니 해도 랍스터를 통째로 삶은 다음 버터 소스에 살짝 찍어 먹는 랍스터 요리는 단순하지만 진리다. 열 손가락을 다 빨아도 창피한 줄 모르는 맛.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수온이 낮고 깨끗한 바닷물에서 자란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산 랍스터는 맛이 달라요. 속살이 통통하고, 식감은 쫄깃쫄깃하죠. 그 자체만으로도 감칠맛이 돌고요.” 

파멜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이토록 싱싱하고 맛 좋은 랍스터를 괜찮은 가격에 맛볼 수 없다면서 섬을 떠나기 전까지 실컷 먹으라고 독려한다. 한편, 랍스터 어부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새벽 3시면 바다에 나가야 하고, 거친 풍랑에 목숨을 위협받기도 부지기수다. 많은 희생이 필요한 일. 게다가 어획이 가능한 라이선스를 받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1년 내내 잡아도 될 랍스터가 차고 넘치지만, 굉장히 조심스럽게 바다를 대하는 멋진 어부들이기도 하다. 적정한 랍스터 수를 유지하기 위해 기간을 정해 어항 놓는 지역을 바꾸며 조업한다. “혹시라도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로의 여행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파멜라에게 받았던 단호한 메일을 기억한다. 섬의 주식은 전부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다. 랍스터는 물론 스노크랩, 홍합, 가리비, 조개, 새우, 연어, 넙치 등 신선한 생선과 해산물이 줄줄이 식탁에 올라온다. 밥 먹을 때마다 푸른 바다가 눈앞에서 출렁출렁댈 지경이다. 온갖 해산물과 채소를 듬뿍 넣어 걸쭉하게 끓인 크림 수프 시푸드 차우더도 반드시 먹어봐야 할 음식. 속을 따뜻하게, 마음도 편안하게 해주는 섬사람들의 소울 푸드다.

소셔블! 와인과 위스키
맛깔스러운 시푸드가 식탁에 오르면 화이트 와인이 절로 생각나는 법. 노바스코샤주에도 20개 남짓한 와이너리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춥다고 꼽히는 기후에서 활약하는 포도밭이라고 할 수 있으며, 포도는 화이트 품종이 주를 이룬다. 토착 품종 라카디 블랑, 쉽게 설명하면 노바스코샤주의 샤도네이 격이다. “벤자민 브릿지 빈야드나 타이덜 베이의 화이트 와인이면 믿고 마셔도 돼요.” 매끼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와인엔 실패가 없었다. 참고로 노바스코샤 주에서는 잔을 부딪칠 때, 치얼스 대신 소셔블을 외친다는 걸 잊지 말길. 특별한 이유는 없어도 다들 그렇게 한다. 18~19세기 스코틀랜드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의 문화가 진득하게 남아 있는 글렌빌에 가면 그림 같은 언덕 아래 스코틀랜드에서 옮겨놓은 듯한 건물이 하나 숨어 있다. 글렌노라 인 앤 디스틸러리. 이 양조장에서 1990년 20배럴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생산한 후 ‘북미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위스키 전문가 이안 벅스튼이 집필한 <101가지 죽기 전에 마셔야 할 위스키>라는 책에 소개되기도 했다. “보리, 효모, 물, 오로지 이 세 가지 재료만 가지고 위스키를 만듭니다. 아무래도 물이 가장 중요하다 보니 마부 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깨끗한 물을 찾아 글렌빌에 터를 잡게 되었죠.” 글렌 브레턴 레어 10년산을 잔에 따르던 마스터 브루어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에서 후손들이 재현시킨 스코틀랜드 위스키라니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술맛이다.

Editor’s Choice
섬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지 2

FORTRESS LOUISBOURG
루이스버그 요새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의 옛 시간이 궁금한 이라면 노바스코샤 주의 북부 도시 시드니에서 남동쪽으로 37킬로미터 떨어진 루이스버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바위투성이 해안가에 펼쳐지는 루이스버그 요새는 1734년 프랑스인이 대서양을 건너와 정착할 때 4킬로미터 남짓한 성곽을 쌓고 마을을 세웠던 당시 모습 그대로를 부여잡고 있는 곳. 5분만 걸어도 과거 속으로 금세 스며드는 마법에 빠지고 만다. 장총을 든 프랑스 군인들이 건물을 지키고, 상인이나 일꾼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요새 안을 천연덕스럽게 돌아다니며 헷갈리게 하는 연기력을 뽐낸다. 아늑한 실내에는 뜨개질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주인 욕을 하는 하인들도 보인다. 심지어 양을 몰고 염소 먹이를 주는 이들까지 종종 요새 안을 오간다. 마치 1700년대의 어느 날인 것처럼 방문객들에게 안부도 묻거나 제 일상을 담담하게 들려주기도 한다. “저는 대구 수출을 하는 상인 미셸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라고요? 그럼 루이스버그까지 배 타고 오는 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저는 프랑스에서 여기까지 6주가 걸렸습니다만.” 이들의 연기에 감쪽같이 속고, 마치 18세기를 산책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힐 수 있는 이유는 루이스버그 요새가 복원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745년 영국군의 46일간의 포위가 있었지만, 완벽하게 불에 타서 파괴된 건 1760년 영국군이 퀘백 시티를 차지했을 때의 일. 루이스버그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새로운 세계를 놓고 싸웠던, 소위 전쟁터였다. 

그 후 오래도록 방치되다가 1961년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의 주된 산업이었던 광산이 차례로 문을 닫자 고용을 늘리고 역사도 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새를 재건해 캐나다 국립 사적지로 지정했다. 막사 건물, 대포 보관소, 총독과 해군 사관의 아파트, 상인의 집, 예배당, 베이커리, 창고, 마구간, 호텔, 카페 등 총 50개의 건물도 새로 지었다. 그런데도 현재 요새의 규모는 당시의 4분의 1에 그친다. 나머지는 여전히 폐허 그대로다. 이를 따라 걷는 루인스 워크 2.5킬로미터의 트레일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루이스버그는 18세기 북미에서 가장 분주한 항구였습니다. 섬에서 잡아들이는 대구의 수출량이 어마어마했죠. 1734년엔 배들을 루이스버그 항구로 안전하게 이끌 수 있도록 캐나다 최초의 등대가 세워지기도 했고요. 이곳 요새에서 등대까지 이어지는 라이트 하우스 트레일을 걸어보세요. 해안길이 장관입니다.” 루이스버그 요새는 노바스코샤주 전체를 통틀어도 꼭 가봐야 할 대표 관광지로 꼽히는 곳이라 가이드 투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진행된다. 단순하게 복원된 건물들만 둘러봐도 재미있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지만, 역사를 알고 보면 훨씬 흥미로운 법. 일반적인 역사 투어부터 다양한 콘셉트의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면 좋겠다. 더불어 요새 안에 위치한 레스토랑 3곳에서는 18세기에 살았던 이들이 즐겼을 법한 대구 요리와 추운 겨울 언 몸을 녹여주었던 핫 버터드 럼hot buttered rum을 판매한다. 과거 병사들이 사용했던 장총 머스킷musket을 쏘는 시연도 놓치면 아쉽다.

ALEXANDER GRAHAM BELL MUSEUM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박물관
“베댁은 ‘전화의 아버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노년을 보낸 여름 별장이 있던 동네예요. 1893년 그는 이곳에 큰 집을 지어 실험실로 썼답니다. 4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했어요. 발성학 교수로 일했던 미국 보스턴을 오가며 살았지만, 말년에 30년 동안은 실험에 몰두하느라 캐나다의 여름 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고 해요.” 그저 자연만이 전부인줄 알았던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의 오래된 휴양마을 베댁에서 발명가 벨의이야기를 듣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그는 미국인이 아니던가. 브라스 도르 호수의 근사하고 평화로운 서정에 반하지 않을 이가 없다는 사실엔 충분히 동의하나 그가 이런 시골에 살았다니.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박물관의 해설사는 그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국적의 과학자이면서, 케이프 브레턴 아일랜드에서 오랜 세월 머물렀고 죽어서도 이곳 베댁에 묻혔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입구에서 그녀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언덕 위에는 베인 브리(스코틀랜드 켈트어인 게일어Gaelic로 ‘아름다운 산’의 의미)라고 이름 붙인 벨의 여름 별장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가 매일같이 고민하고 실험하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을 꿈의 공장. 최초의 실용적인 전화기의 발명가로 널리 알려진 벨은 ‘전화기의 아버지’라는 별명 이상으로 여러 방면의 업적을 남겼다. 축음기, 광선전화, 보트, 비행기 등 분야를 넘나드는 연구를 했으며, <사이언스>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캐나다 최초의 동력 비행기 실버 다트 또한 벨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딴 박물관은 발명가 벨의 열정과 개인적인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발명 과정에서 수없이 만들었던 모형과 결과물들, 이를 꼼꼼하게 기록한 사진과 영상까지 그녀의 딸이 기증한 수많은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대단히 거창하진 않으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가득했던 그의 인생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기분이 뭉클하다.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몸을 던져라. 그러면 반드시 전에 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 나온 후 다시 바라보는 베댁은 마치 처음인 것처럼 감탄스러웠다. 고요한 휴양지에 터를 잡고 자연이 내어주는 품을 가족과 함께 누리며 머릿속에 존재하는 온갖 상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뜻이 조금은 이해되는 전원적인 풍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