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온천 성지는 어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는 온천욕. 몸을 담그는 순간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온천의 계절인 겨울이 왔다. 일본, 중국, 대만 등 가까운 곳에 싫증 난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유럽의 온천 성지를 모았다.
스위스 로이커바트
취리히에서 기차로 4시간 정도 이동하면 로이크 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편버스로 갈아타고 알프스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더 들어가면 스위스를 대표하는 온천 마을, 로이커바트(Leukerbad)에 이른다. 해발고도 1411~2610m에 걸쳐 자리 잡은 로이커바트는 마을 전체에 총 30개의 온천장이 있고, 51℃의 뜨끈한 물이 매일 400만 리터씩 온천장에 솟아난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주목받은 이곳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를 비롯해 모파상, 마크 트웨인, 피카소 등이 애정을 갖고 머문 장소였다. 로이커바트의 온천수는 칼슘과 유황 성분이 풍부하고 나트륨, 스트론튬, 철분, 불소 성분이 섞여 있어 치료 효과가 좋다. 1960년대부터 로이커바트는 본격적인 황금기에 돌입한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스위스 보험사에서 치료를 목적으로 로이커바트를 방문하는 경우, 그 체류비까지 보험 처리를 하기로 하면서 스위스 전역에서 사람들이 밀려든 것이다. 이런 경우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를 확대할 만도 한데 이들은 단지 마을 외곽으로 순환도로를 만들고 마을버스 정도만 운영했다. 스위스의 자연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서다. 로이커바트에서 가볼 만한 스폿은 발리저 알펜테르메와 헬리오파르크 호텔 & 알펜테르메, 로이커바트 테르메 등이다. 모두 알프스 온천 센터로 큰 규모와 양질의 서비스를 자랑한다. 혹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알프스의 장관을 조용히 감상하고 싶다면 아델보덴에 있는 더 캄브리안 호텔을 추천한다. 시야를 가로막는 기물이 전혀 없는 노천 수영장으로 멀리 보이는 만년설과 중간중간 능선 사이로 흐르는 폭포를 조용히 응시하면 대자연의 광활함에 감동하게 된다.
아이슬란드 블루라군
아이슬란드는 얼음과 불의 땅이다. 섬의 중앙과 동쪽은 빙하로 덮여 있지만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까닭에 활화산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지난 2010년 유럽에 항공 대란을 일으킨 에이야파들라이외퀴들 화산이 대표적이다. 얼음의 땅 여기저기에선 '게이시르'라 불리는 가헐천이 솟구친다. 그만큼 지면 아래 열이 많다는 뜻이다. 실제 아이슬란드는 1인당 지열 에너지 사용량이 세계 1위다. 그 덕분에 온천만 780여 개에 달한다. 그 중 아이슬란드 하면 떠올리는 온천은 바로 블루라군(Blue Lagoon)이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남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노천 온천으로 유명하다. 그 크기만 1500 평이 넘는다. 사실 블루라군은 온전히 자연의 산물로 형성된 곳은 아니다. 지난 1976년 지열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지하 2000m 지점의 뜨거운 물을 끌어올렸는데 이를 지열발전에 쓴 후 온천수로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에메랄드빛 물감에 우유라도 탄 듯 뽀얗게 푸른 물빛이 비현실적 감각을 선사하는 블루라군의 물은 유황과 광물질, 미네랄이 풍부해 피부와 관절 질환에 뛰어난 효능을 발휘한다. 특히 유리의 원료인 이산화규소를 함유한 하얀 실리카 머드는 각질 제거에 효과적이라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온몸이 하얗게 될 때까지 진흙 마사지를 즐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자연 25곳'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로 그 명성이 탁월한 블루라군에서 수영복 차림의 사람 수백 명과 함께 야외 온천을 즐기는 경험은 쉽게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는 '물의 도시'라 불린다. 지상에는 푸른 다뉴브강이 흐르고 그 지하에는 온천수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실제 중부 유럽에서 손꼽히는 온천 도시인 부다페스트는 시내에 120여 곳의 온천이 성업 중이고 매일 부다페스트에 공급되는 온천수만 3000만 리터에 달한다. 부다페스트의 온천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5℃부터 75℃까지 다양한 수온에 칼슘, 마그네슘, 탄산수소, 황산과 나트륨이 풍부해 만성 척추 질환과 관절염, 퇴행성 질환, 외상 후 재활치료에 효과적인 수질 덕에 부다페스트는 목욕 문화를 즐긴 로마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온천 낙원이 됐다. 게다가 16세기 이후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는 동안 터키식 스파 문화가 정착하고, 19세기 들어 온천 테라피의 유행으로 대규모 온천 시설이 들어서면서 온천은 바야흐로 부다페스트의 훌륭한 관광자원이자 시민의 삶에 깊숙이 들어온 일상이 되었다.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온천은 많지만 유명세로 볼 때 첫 번째는 역시 세체니 온천이다. 1879년 발견한 이곳의 온천수는 75℃까지 올라간다. 1913년 네오바로크 양식의 목욕탕을 만들고 1927년 온천 수영장까지 갖추며 명실공히 유럽에서 가장 큰 복합 온천 시설이 되었다. 세체니 온천이 앞서 말한 19세기 온천 테라피 시기의 산물이라면, 루더시 온천은 오스만튀르크의 터키랑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팔각형 모양의 대형탕과 터키 양식의 돔형 지붕 등 그 건축양식의 독특함 덕분에 도시의 명소가 됐다.
독일 바덴바덴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바덴바덴(Baden-Baden)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도시다. 바로 여기서 열린 IOC 총회에서 서울이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기적의 장소로 기억되겠지만 본디 바덴바덴의 정체성은 유럽 최고의 온천 휴양지다. 19세기 대영제국을 통치한 빅토리아 여왕이 바덴바덴을 즐겨 찾을 정도로 그 명성은 높디높았다. 별명이 유럽의 여름철 수도였을 정도다. 풍료로움과 영광이 가득한 이 도시에는 세계 최초의 카지노가 생겼는데, 도박광인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돈을 잃고 절박하게 쓴 <도박사>라는 책의 극 중 배경이기도 하다. 바덴바덴을 상징하는 온천은 누가 뭐래도 프리드리히 온천이다. 그 자체가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로마 시대의 온천 유적지로 16개의 방을 지나면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화려한 도시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낸 건물도 유명하지만 프리드리히 온천이 특별한 건 바로 남녀 혼탕이라는 점이다. 모든 이용객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함께 온천을 즐겨야 한다. 이는 옛날 로마의 카라칼라 황제가 온천욕을 즐겼다는 자리에 생긴 카라칼라 온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카라칼라 온천의 1층 수영장은 수영복 차림 입장을 허락한다. 온천의 기운을 최대한 받아들이기 위한 누드 혼욕은 동양인에게 꽤나 곤욕스럽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그 수질과 치료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품게 한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환상적인 것’이라는 프리드리히 온천의 슬로건처럼 온천 그 자체에 집중하는 행위는 여행객에게 도시의 숭고한 전통에 참여하는 뜻깊은 경험을 선사한다.
이탈리아 사투르니아
몇 년 전 JTBC에서 방영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이탈리아 편에서 유독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은 장면이 있다. 마치 터키의 명물인 우윳빛 파묵칼레를 축소해놓은 것처럼 층층이 레벨이 다른 노천 계곡에서 온천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모습이었다. 그곳은 바로 토스카나 지방에 위치한 사투르니아(Saturnia)온천이다. 이탈리아는 목욕 문화의 대명사인 로마제국의 본거지였던 만큼 현재까지도 온천이 발달했는데, 전국 250여 개의 온천 중 사투르니아 온천은 3000년 전 주피터가 만들었다는 신화가 깃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노천 온천이다. 화산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천연 온천수는 암반의 미세한 틈을 지나 자연적으로 여과되면서 염분, 유황, 규소, 요오드, 미네랄을 품는다. 피부병은 물론 호흡기, 근육, 관절 관련 질병에도 효능이 뛰어나다. 또한 수온을 항상37.5℃로 유지하면서 초당 500리터의 물이 4시간마다 순환하며 하루에 총 6회 바뀌는 신기한 자연의 흐름 덕분에 현지에서는 ‘신의 온천’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사투르니아 온천에 들렀다면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포소비안코 온천도 경험해보자. ‘하얀 웅덩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문자 그대로 흰 빙벽을 연상시키는 바위 사이로 유황과 칼슘을 함유한 온천수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는 모습이 장관이다. 두 곳 모두 천연 노천 온천이라 언제나 자유롭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여타 온천에선 겪을 수 없는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체코 카를로비바리
체코의 오흐르제강과 테플라강이 서로 마주한 카를로비바리(Karlovy Vary)는 나무가 우거진 언덕 틈에 위치한 온천 도시다. 카를로비바리라는 지명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카를의 온천'이다. 1350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왕국의 왕인 카를 4세가 사냥을 왔다가 다친 사슴이 온천수에서 상처를 회복하는 기적을 목격한 후 이곳을 온천 지대로 개발한 것이 그 유래다. 카를로비바리의 온천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 명소 중 하나로 사람들을 가히 흡입 수준으로 끌어모았다. 괴테, 베토벤, 카를 마르크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비스마르크, 쇼팽 등 도시를 찾은 명사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지금도 이곳의 명성은 확고한데 각 호텔과 주요 온천 시설에 의사가 상주해 처방을 내리는 온천 의료 도시이기 때문이다. 카를로비바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몸을 담그는 온천과는 약간 다르다. 온천을 즐기고 병을 치료하는 행위가 주로 음용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둥이 나란히 늘어선 열주를 뜻하는 콜로나다는 카를로비바리 온천 여행의 핵심이다. 온천수가 나오는 자리에 열주를 세우고 정자 모양으로 지붕을 올려 그 아래에서 온천수를 마셨기 때문에 콜로나다는 도시의 대표 온천 스폿이자 수백 년간 유럽 최고의 건축가들이 설계를 맡아 도시의 윤택함을 과시한 당대 사교의 장이었다. 컵 손잡이에 빨대처럼 구멍이 있는 온천수 음용 전용 컵인 라젠스케 포하르를 들고 콜로나다를 돌아다니다 보면 옛 보헤미안 전통이 살아 있는 도시의 풍경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자료제공 주한 독일 관광청, 주한 스위스 관광청, 주한 체코 관광청, 주한 헝가리 관광청,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