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감성여행

[ 관광지 ] 여행전문가가 말하는 새해에 떠나고 싶은 여행지

금연과 금주 혹은 다이어트 같은 진부한 계획 대신 새해에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여행 전문가 4명이 새해에 떠나고 싶은 여행지를 보내왔다.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은 행복 부탄

부탄의 국가 철학이라는 GNH는 다름 아닌 국민행복지수다. 경제 발전은 불교적 전통문화에 기초해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행복지수의 기본이란다.


또 가고 싶을 만큼 멋진 여행지는 얼마든지 있다. 여행 기자라는 직업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지구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는데 멕시코의 카리브 해 연안부터 남프랑스의 포도밭, 그리고 서호주의 아웃백과 아프리카의 섬나라까지 제법 추억이 쌓인 여정을 떠올리면 그곳의 공기를 다시 들이마시고픈 욕망에 매번 사로잡힌다. 하물며 철부지 소년들이 어설픈 백호주의를 드러내며 돌을 던져대던 뉴칼레도니아나 힌두교 사원에서 맨발로 질퍽한 소똥을 밟아야 한 인도마저 기회만 주어진다면 기꺼이 재방문하고 싶다. 하지만 내겐 가보지 못한 나라가 많고, 알고 싶은 도시가 넘쳐난다.

 가장 좋은 여행지는 결국 다음 여행지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자주 떠올리는 여행지는 부탄이다. 부탄은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다.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 깊숙이 자리 잡았는데, 여전히 국왕이 나라를 진두지휘하는 왕정 국가이기도 하다. 독실한 불교 국가여서 나라 안에서는 도살과 도축을 금지한다. 점차 나아지곤 있다지만 문맹률도 높다. 수도 팀부(Thimbu) 도심에서는 오늘도 신호등 하나 없이 교통경찰의 수신호에 의지해 자동차들이 오간다. 이 정도 수치와 상황을 듣고 보면 부탄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깝고, 그래서 살기에 안 좋은 나라로 손꼽힐 듯하다. 


 

그런데 부탄에는 GNP나 GDP 대신 GNH라는 척도가 있다. 국가의 철학이라는 GNH는 다름 아닌 국민행복지수다. 경제 발전은 불교적 전통문화에 기초해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행복지수의 기본이란다. 티베트를 여행하기 위해 네팔의 국경도시 코다리(Kodari)에 들렀을 때, 렌터카 사무소에서 만난 부탄인 가이드가 인상적인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그는 티베트 수도 라싸의 포탈라 궁전 앞 호수를 콘크리트 광장으로 메워버린 중국 정부의 만행을 이야기하며 부탄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일갈했다. 자연을 훼손해야 한다면 차라리 산업 발전을 포기하는 것이 부탄의 방침이라는 귀띔이었다. “세상 밖 속도와 발맞추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부탄은 그때부터 궁금한 나라였다. 티베트를 횡단하며 고산병으로 신음하다 보니 히말라야의 도시들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부탄은 지난 2010년 유럽 신경제재단(NEF)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우리나라는 80위다). 과연 그곳엔 어떤 행복이 존재하는 걸까?

 나라 안에서는 살생을 못하지만, 죽은 가축을 중국과 네팔 같은 이웃 나라에서 도축해와 마을 잔치를 벌인다는 그곳이 궁금해졌다. 숲에 길을 내는 일조차 엄두내기 힘들다는 막강 자연주의자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 조심스레 다가가고 싶어졌다. 못 하나 없이 자갈과 나무와 진흙만으로 사원을 짓고, 죽은 이의 다음 생을 위해 늘 기도한다는 부탄 사람들의 친절한 미소를 맞닥뜨리고 싶다. 신호등을 세웠지만 인간미가 사라진 것 같아 다시 교통경찰의 수신호로 대체했다는 그들의 낭만을 들여다보고 싶다. 지독하게 다사다난한 대한민국의 병신년을 보내며 세상의 물질적 척도와 상관없이 풍요로운 부탄의 행복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어진 것이다. 새해엔 부탄에 다녀와야겠다. 히말라야 산자락의 고산병이 두렵지만 비아그라를 챙겨 가보겠다.

  정명효(여행 칼럼니스트)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곳 에사우이라

자주 그런 상상을 한다. 나를 아는 이가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상상. 해가 바뀌고 새날이 시작되면 그런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지금의 내가 불만이어서가 아니라 조금 더 좋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으므로. 여행이 좋은 이유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잠시 다른 환경에서 조금 다른 마음으로 살아보는 것. 그래서 좋은 마음의 나로 돌아와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것. 이왕이면 그곳이 지금보다 조금 느리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걸려드는 곳이 있다. 모로코의 서쪽 에사우이라(Essaouira).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마음이 되고 싶어진다. 성곽에 둘러싸인 조그만 바닷가 마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얼굴을 바꾼다. 하늘과 바다가 그리는 선율에 따라 몇 번이고 표정을 바꾼다. 그때마다 그것이 과하지 않아 낯선 곳이라는 부담마저 없었다. 부실해 보이는 오래된 성곽은 바다의 바람을 막아주는 노인의 거친 손등처럼 애틋한 자세로 그곳의 모든 것을 보호했다. 소박하게 웅크린 작은 마을은 어설픈 단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것으로 길을 만들고, 손때 묻은 세월의 울타리 속으로 따뜻한 불빛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밝힌다.

 이른 아침 선착장의 흥정은 갈매기의 노래처럼 부드러워, 저렇게 해서 어찌 살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는 내가 그곳에서는 가장 험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 여겼다. 정확한 질량이 없는 흥정은 때론 불편함을 낳지만, 조금 손해 보는 날이면 알아들을 수 없는 따뜻한 농담이 덤으로 따라왔기에 불만 없이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주곤 했다. 대개 그런 식이었다. 


모든 것을 직접 부딪쳐야 겨우 구할 수 있는 불편함 속에서 무심하게 던져주는 따뜻한 것들. 그것이 좋았다. 그런 것을 무심하게 지나치기엔 내가 너무나 편리하게 살아왔구나 짐작했다.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들을 눈치 보며 피해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빛나는 풍경. 그곳에서 가장 흔한 것은 바다가 아니라 바다를 닮은 미소거나 마음이었다. 카페 탁자 모서리에도, 투명한 찻잔에도, 노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모자 위에도 한가로운 바다의 무늬가 있고, 느린 고양이의 발걸음도 이곳 사람들의 성품을 닮아 부드러운 파도 같다. 모든 것이 그렇게 평온한 바다였다. 딱히 볼 것이라고는 없다고 말하기엔 모든 것이 볼거리였다. 소통할 수 없는 표현 사이에서 건져낸 것은 순전히 눈가의 주름이나 입가의 미소 그리고 가볍고 정성스러운 손짓. 그거면 불편할 일이 없는 곳. 그 속에서 소통하는 내 마음이 유일한 볼거리라 생각했다. 말하자면 ‘내가 나를 보기 좋은 곳’. 여행자에겐 그것이 제일 큰 위로가 되었다.

 새해가 되어 새로운 내가 절실할 때 자주 그곳을 떠올릴 것이다. 그럴 때면 조용히 그곳으로 돌아가, 떠난 적 없고 돌아온 적도 없다는 표정으로 그 풍경 안에 다시 녹아들고 싶다. 언제 돌아오더라도 낯설지 않은 곳, 언제 만나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처럼. 변함없는 풍경 속에서 비슷한 표정의 사람들과 좋은 마음이 되어 찻잔을 들 수 있는 따뜻한 한 모금의 크기로 존재하는 곳. 모로코의 서쪽 에사우이라.

 글·사진 변종모(여행 작가) 


낯선 자들과 동행하는 곳 이스라엘

사람 구경하는 데는 예루살렘만 한 곳이 없다. 제각각인 인간의 행색이 곧 풍경이다. 기독교의 성지순례지로 알려져 있지만 달각거리는 구시가의 성벽 안에는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 아르메니아인이 뒤엉켜 산다. 삶의 골목들은 보이지 않는 경계로 나뉘고 그들만의 성지는 벽 하나 사이에 두고 기도 소리를 내며 공존한다. 예루살렘 박물관 벽 한편에는 ‘Gathering of Strangers(낯선 이들의 모임)’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동·서예루살렘의 경계이자 중심인 구시가는 풍경의 온도 차가 심하다. 무슬림과 유대인과 관광객이 오가는 게이트가 다르고, 외곽을 다니는 차량의 모양새도 다르다. 동서를 가르는 직행버스는 없다. 좀 더 번듯하고, 좀 더 시장 같은 2개의 버스터미널이 검문소를 사이에 두고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나란히 들어서 있다. 구시가 동쪽의 동예루살렘이 아랍 영역에서 이스라엘로 합병된 것은 1967년의 일이다.

 이곳에 얽힌 역사와 전설은 수천 년 세월의 종교와 전쟁까지 복잡다단하게 녹아 있다. 황금 사원이 빛나는 구시가 바위 돔 광장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중심지다. 무함마드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천국 여행을 시작했다는 이슬람교의 세 번째 성지가 예루살렘 한가운데에 있다는 자체가 사실 흥미로운 대목이다. 문화적 독특함도 이스라엘로의 귀환을 부추긴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로 ‘사바스’라 불린다.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춘다. 버스도 다니지 않을뿐더러 발걸음을 떼는 수조차 제한한다. 빵을 굽거나 커피를 내리는 일상 속 노동 행위조차 금지다. 종교적 유대인은 사바스에는 아예 가족이 호텔을 빌려 투숙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날만은 조식 식당의 커피 머신도 자취를 감추고 버튼을 누르는 동작도 금지되기에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는 지루한 장면이 목격된다. 다소 엉뚱하고 불편해도 사바스에 예루살렘의 호텔에 묵는 것은 그래서 더욱 별천지다.

 지중해의 도시에 접어들면 이스라엘은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낸다. 유대교 랍비들은 어느새 종적을 감추고 없다. 술과 음악이 흐르고 지중해의 훈풍이 코끝을 간질인다. 북쪽 ‘십자군의 도시’ 아코에서는 기사들의 말발굽 소리 가득하던 성곽 안뜰에서 오페라 콘서트가 열린다. 로마 유적과 비치가 어우러진 카이사레아를 경유해 남쪽에 내려서면 궁극의 텔아비브다. 텔아비브는 ‘봄의 언덕’이라는 뜻처럼 해변도, 거리도 꽃처럼 화사하다. 롱 비치를 조깅족이 핫팬츠 차림으로 뛰어다니고, 기도 소리 대신 요가 선생들이 매트를 들고 활보한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동경하는 도시, 안식일 전날에도 번화가 디젠고프의 술집들이 들썩거리는 도시가 바로 텔아비브다. 여군들은 총 대신, 허리를 잘록하게 조인 군복으로 한껏 패션 감각을 뽐낸다. 이스라엘에 대한 편견은 텔아비브와 맞닿으면 봄눈 녹듯 소멸된다. 전 세계가 분열되는 요즘, 이스라엘을 자주 떠올린다. 복잡다단한 현실 속, 공존의 의미를 던져주는 국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한 놀이터에서 무슬림 꼬마와 유대인 아이가 어울려 놀던 장면은 여전히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올해 꼭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을 방문할 생각이다

 글·사진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때론 맨발로 해변을 걷는 게 중요한 거야 갈라파고스

그곳에 발을 내딛기 전, 갈라파고스에 대한 이미지는 다윈의 진화론과 <종의 기원>에서 비롯한 학술적 이미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바다사자와 바다이구아나, 커다란 등껍질을 짊어진 거북이들이 살고 있는 외딴섬. 에콰도르의 수도 과야킬에서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 하면 이들 희귀 동물을 카메라에 잘 담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하지만 2시간 후 산크리스토발 섬에 내리자마자 갈라파고스에 대한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아, 이런 낙원이 아직 지구 상에 남아 있다니! 공항에서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섬의 주요 마을인 푸에르토바케리소모레노의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이방인을 반긴 건 현지인의 따스한 미소가 아닌 ‘끄으윽 끄으윽’ 하는 바다사자의 울음소리였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는 터줏대감으로 보이는 커다란 바다사자 한 마리가 누워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갈라파고스제도는 화산 폭발에 의해 만들어졌다. 어느 날 바닷속 땅이 솟아올랐고, 머나먼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물의 씨앗이 날아들어 뿌리를 내렸다. 새와 파충류 등도 바다를 건너왔다. 육지와 고립되어 있다 보니 이들은 오직 갈라파고스만의 방식으로 진화하게 됐다. 장화 신은 것처럼 발이 파래 갈라파고스의 명물이 된 푸른발부비새, 날개 길이만 2m가 넘는 갈라파고스 알바트로스 같은 동물은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인 가너 베이에서는 순백의 모래사장과 그 위에 떼 지어 누워 있는 바다사자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갈라파고스에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건 좀 다른 이유에서다. 내가 갈라파고스를 여행한 건 지난해 4월. 에콰도르에 강도 7.8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다. 바닷가에는 쓰나미 경보가 내렸고, 우리가 탄 배는 지진의 진원지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밤새 수평선을 향해 달렸다. 미친 듯이 흔들리며 폭풍 치는 바다를 항해했다. 나는 선실 침대에 걸터앉아 지나온 생을 떠올렸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말고는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선실에 앉아 내가 더 큰 아파트에서 살지 못한 것을, 더 비싼 자동차를 가지지 못한 것을, 더 좋은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을 후회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새벽에 일찍 떠나오느라 일곱 살 난 딸아이를 안아주지 못한 것이, 아내의 볼에 키스하지 못한 것이 후회될 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쓰나미는 오지 않았고, 나는 수평선 너머로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었다. 바다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잔잔해져 있었다. 갈라파고스는 내게 가장 어두운 10시간과 가장 찬란한 아침을 선사한 곳이 되었다.

그 여행 후 삶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조금 더 놀기로, 조금 더 인생을 낭비하기로 했다. 어렵게 지하철과 버스를 타기보다는 웬만하면 택시를 탄다. 틈날 때마다 아이를 안아주고 아내의 손을 잡고 걷는다. 자주 사랑한다고 말한다. 포옹과 사랑을 빼고 나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새해에는 갈라파고스에 다시 가고 싶다.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바다사자가 하품을 하며 있는 순백의 해변을 걷고 싶다. “봐, 인생이란 별거 아니야. 다만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 게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며 모래밭에 우리의 이름을 쓰고 싶다.

글·사진 최갑수(여행 작가)

기사 제공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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