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베트남이 좋은 건 아니었다.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음에 불친절한 인상을 남겼던 현지인, 몸이 무척이나 안좋아서 누워있었던 시간들까지. 나에겐 그닥 좋은 이미지가 없었다. 하지만 베트남에 대한 이미지 발바꿈은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1년에 2번 이상 베트남을 찾곤 한다. 그 이유를 찾자면 다채로운 도시들이 가득한 매력적인 인도차이나의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 이 중에서도 손꼽히게 기억에 남는 도시들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다낭 Danang
이렇게 인기가 많아도 괜찮은걸까?
베트남 5대 도시 중 하나이자 중부의 최대 도시 다낭. 인도차이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참파왕국의 중심이었던 참파유적지와 옛 무역도시이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호이안(Hoian)을 끼고 있으며, 다낭과 호이안을 이어주는 미케비치와 논느억, 안방비치까지 관광과 휴양을 모두 아우르는 매력적인 도시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최후의 왕조였던 응우웬 왕조의 수도 도시 '후에(훼 Hue)' 까지 접근성이 용이하다. 어쩌면 진작에 떠올랐어야하는 곳임에 분명했다
나에게 다낭의 이미지는 떠오르기 전과 후로 기억된다. 물론 조금 덜 과한, 숨겨진 예전의 다낭이 기억에 남는 건 사실이지만, 가이드북 취재에서 느꼈던 한층 업그레이드된 다낭의 색깔은 모든 여행자가 만족해할만한 무지개의 일곱색깔 그 이상이었다. 여행성향이 관광형이라면 바나힐과 오행산, 다낭대성당과 까오다이교 등의 시내관광과 고즈넉한 호이안의 낮과 밤을. 휴양형이라면 호화로운 리조트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비치를 즐겨도 좋다. 아참. 베트남의 식도락 여행을 빼놓아서도 안된다. 중부에서는 특히 국수종류인 미꽝과 까오러우, 분짜까, 분보후에는 반드시 먹어볼 것. 결론을 짓자면 다낭을 시작으로 베트남이 또 한번 떠오르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기에, 신비스러움이 줄어든 다낭이지만, 충분히 인기가 많을 자격이 있는 도시임에 분명하다.
나트랑(Nhatrang)
빈펄랜드의 도시. 그 이상의 무언가.
개인적으로 다낭보단 나트랑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한국여행자들은 가족단위를 제외하고는 크게 몰리는 여행지가 아닌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의 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시내와 관광지의 접근성이 좋기에 복잡한 일정을 구상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다른 여행지를 가더라도 일정을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는 편이기도 하다. 또한 다낭보다 확실히 바다가 아름답고 해수욕을 즐기기에도 좋다. 러시아의 도시인 마냥 50프로 이상의 여행자가 러시아인으로 동서양의 양면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독특한 도시가 바로 나트랑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트랑의 매력은 베트남의 어느도시보다 휴양하기 좋은 휴양스러움이다. 시내관광과 외부 휴양리조트와의 거리가 정확히 구분되기 때문에 그 누구와의 방해 없이 쉬고 싶다면 아예 섬으로 들어가 휴양을 즐길 수 있을 정도다. 베트남의 프랑스라고 불리는 달랏(Dalat)과의 이동이 용이한 점도 자랑거리다. 젊은 여행자들에겐 비치클럽에서 파티를 즐겨도 좋다.
호치민 Hochiminh
베트남의 현재모습을 담아낸 역동적인 도시
현재의 베트남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남부 최대의 도시다. 베트남의 수도는 하노이지만, 경제 중심은 호치민이다. 호치민시티의 약자로 HCMC로 부르기도 한다. 처음 호치민을 방문했을 때의 느낌은 베트남이 이토록 도시의 이미지가 강하나 싶을 정도였다. 또한 고딕양식과 프랑스 건축물이 서양의 느낌을 풍기곤 했는데, 식민지의 영향인지 빵조차 맛있을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호치민은 도시의 느낌을 제외하곤 크게 볼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자세히 알고 들여다보면 꼭 한번은 제대로 보아야할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 중심엔 바로 프랑스가 있다. 프랑스 식민지 당시 지어진 건축물은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건물들이다. 대표적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의 노트르담의 정면부와 닮았다. 정면부 앞에는 성모마리아상이 있는데, 2005년에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통일궁은 1868년 프랑스 식민 지배 당시 프랑스 총독의 관저였으나, 베트남 남북 분단 후 월남의 응오디지엠 초대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면서 독립궁이라 불렸다. 1975년 북베트남이 탱크를 끌고 이곳으로 돌진하면서 마침내 베트남 전쟁의 막이 내리게 되었고 통일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다름아닌 중앙우체국이었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우체국인 이곳은 파리 에펠탑을 건축했던 구스타브 에펠이 직접 건축에 참여한 프랑스식 건물이다. 프랑스 여행을 자세히 해보았다면 도시의 시청마다 여성상의 얼굴이 새겨진 걸 볼 수 있는데, 중앙우체국의 뉴메틱클락 위에도 마리안느라는 여성상이 새겨져있다. 이 여성의 얼굴은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혁명 정신을 상징한다. 돌이켜보니 호치민의 주요 관광지는 대부분 프랑스 식민시절에 지어진 역사의 아픈 흔적이다. 이 아픔을 간직하고자 한건지, 그대로 보존하여 대표 관광지로 남아있는 건 어떤 이유일까? 호치민 여행의 핵심은 바로 그들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화려한 관광지의 양면성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