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문 세계유산기행
중국 동남해안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 하문과 그 주변 지역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품격 있는 여행지들이 산재해 있다. 세계적인 유산들에 깃든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와 문화 속에 맘껏 빠져들었던 시간. 2017년 복건성 하문의 고랑서가 중국의 52번째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중국은 프랑스와 함께 세계유산최다 보유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문의 고랑서는 18~19세기 유럽과 중국의 건축 양식이 혼재된 이국적인 풍경으로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하문에서 버스를 이용, 당일 투어로 다녀올 수 있는 정주에서는 고대 중국에서만 나타난 독특한 주거 형태인 토루군이 기다린다. 무이산은 빼어난 풍광과 더불어 그 속에 깃든 깊이 있는 문화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및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으며, 과거 우리 사회에도 깊숙이 자리 잡았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발자취를 밟아볼 수 있어 하문 여행은 더욱 뜻깊게 가슴 속에 내려앉는다.
근대 유럽여행, 고랑서
하문 본섬에서 남서쪽으로 약 700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작은 섬 고랑서는 영국을 비롯한 서양 열강의 진출이 활발했던 당시의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지역으로 그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가장 최근에 중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3시간여를 날아서 도착한 중국 동남해안의 항구도시 하문에서 페리에 몸을 싣고 고랑서로 간다. 즐비하게 늘어선 세련된 고층 빌딩들을 배경으로 하문과 고랑서 사이를 가로지르는 노강 해협을 따라 페리는 고랑서에 닻을 내린다. 주황색 지붕을 얹은 유럽풍의 건축물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야자수가 늘어선 산책로와 해변은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문호개방을 통해 청나라에 상륙한 유럽 건축양식으로 세워진 각국의 영사관과 사택들은 백여 년이 넘는시간이 흘렀음에도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여행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국의 조계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1869년에 지어진 3층 높이의 영국 영사관 건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이 사용했던 일본영사관 그리고 필리핀대사관 등이 차례로 모습을 나타낸다. 개신교 교회와 가톨릭 성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며 고향과 그곳에 두고 온 이들을 떠올렸을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길은 병원과 음악청 그리고 중국 최초의 잔디구장인 인민체육장 등으로 이어진다. 고랑서에 상륙해 중국의 근대화에 공헌했던 문물의 흔적들을 끊임없이 마주할 수 있다.
고량서의 축소판, 숙장화원
숙장화원은 대만의 손꼽히는 부호였던 임숙장이 고랑서에 조성한 대규모 공원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고 대만이 일본의 손에 넘어가자 임숙장 일가는 선대의 고향인 복건성으로 돌아와 대만에서 가까운 고랑서에 숙장화원을 조성했다. 중국식으로 꾸민 정원과 유럽식으로 지어진 별장이 어우러진 풍경이 마치 고랑서의 매력을 축약시켜 놓은 것만 같다. 바닷가에서 언덕으로 향하는 길에는 임숙장의 44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44교가 기다리고 있다. ‘바다 쪽으로 탁 트였고, 하늘은 끝이 없다’는 의미를 품은 ‘해활천공’, 네 글자가 새겨진 다리 입구의 바위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다리를 건너 숙장화원의 언덕 위에 오르면 해변과 산 그리고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어우러진 고랑서만의 독특한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음악의 섬, 피아노 박물관
숙장화원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피아노 박물관이 있다. 중국에서 피아노 보유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유명한 고랑서에는 현재 총 100여 개의 음악 명문가들이 있고, 중국음악가협회는 고랑서를 ‘음악의 섬’으로 공식 명명하기도 했다. 고랑서 출신의 유명 피아니스트 호우의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에서 수집한 백여 대의 피아노를 기증했고 숙장화원의 일부 건물이 피아노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1801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피아노를 비롯해 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건반이 연주되는 피아노 등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다양한 형태의 피아노들이 전시된 곳. 고랑서에 피아노와 함께 서양음악이 들어오며, 일찍이 향기로운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고풍스러운 공간에 멈춰서 가만히 눈을 감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낭만적인 시간을 그려본다.
핵기지로 오인 받은 건축물, 토루
동서냉전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 미국 CIA가 위성으로 중국 정보를 수집하던 중 중국 동남부 산악지역에서 둥근 형태의 수상한 건축물 수십 개를 발견했다. CIA는 이를 중국이 새로운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조사를 펼쳤지만 조사결과 핵기지가 아닌 흙으로 쌓아올린 민간주택임이 밝혀졌다. 이 해프닝으로 인해 토루가 세상에 알려졌고,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토루에 사는 사람들을 객가인이라고 부른다. 정치적인 이유로 중원에서 남방으로 이주해온 이들을 본래 남방에 살던 이들이 부르던 이름이었다. 객가인들은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성채 같은 집을 지어 수십에서 수백 명이 함께 살았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토루는 명나라 때 건축된 것들로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토루도 존재한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가옥구조, 토루를 보려면 하문에서 차를 타고 남정으로 가자. 토루가 가장 잘 보존된 곳 중 한 곳이다.
하나의 탕과 네 가지 반찬, 전라갱 토루
남정 토루에 도착하여 토루 투어버스로 갈아타고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30분쯤 달려가면 전라갱 토루 전망대에 도착한다. 중국 사람들이 사채일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토루군을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위치한 네모난 토루는 한 개의 탕이 되고, 그 주위에 있는 네 개의 동그란 토루는 네 가지 종류의 반찬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다섯 개의 토루가 자욱한 안개에 모습을 감췄다 드러냈다 하는 것이 마치 갓 요리한 음식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처럼 보여 더욱 흥미롭다. 대나무숲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면 토루를 하나씩 둘러볼 수 있다. 수십, 수백 명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지만 대문은 오직 하나뿐. 아래쪽에는 창문이 없고 윗부분에만 감시와 공격을 할 수 있는 작은 창을 설치해놓아 대문만 걸어 잠그면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는 구조다. 외벽의 창문을 최소화하는 대신, 토루의 가운데 부분을 비워 그곳을 통해 바람과 햇살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에는 여전히 객가인들이 터전을 삼고 예전처럼 살아가고 있다. 문화유산인 토루를 보존하고 현지인들의 생활을 보전하기 위해 토루는 1층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며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복건성 최고의 토루,
유창루
하판촌에 위치한 유창루는 원나라 때인 14세기 초반에 유, 나, 장, 당, 범씨가 힘을 합쳐 만든 토루로 그 역사가 무려 700년에 달해 ‘토루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개울을 따라 걷다 보면 수백 년이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떠안아 왔음에도 여전히 건재한 유창루의 성채 같은 외관이 나타난다. 한눈에 다 담기지 않는 거대한 토루의 내부로 들어서면 전라갱 토루보다 두 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규모에 먼저 압도된다. 5개의 성씨가 함께 살았던 만큼 방의 개수도 270여 칸에 달하며 토루 중앙에는 관음보살을 모신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공우물을 사용하는 다른 토루들과 달리 우물이 각 가정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유창루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5층으로 지어진 유창루는 3층과 5층의 기둥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점이 특이하다. 기둥이 기울어져있는 이유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스승에게 토루의 건축 비법을 배운 제자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 일부러 어려운 구조로 설계했다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비바람과 지진으로 기둥이 자연적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맞든 지금까지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자체만으로 유창루는 토루 건축의 표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장수마을, 탑하촌
탑하촌은 장씨들의 집성촌이자 대표적인 장수마을로 손꼽힌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을 따라가면 신령스럽고 고즈넉한 풍경들이 차분히 담긴다. 하천에서 마을을 가로질러 언덕위에 올라가면 장씨 가묘인 덕원당德遠堂이 보인다. 그 앞에 칼을 땅에 꽂아놓은 듯한 모습의 탑 21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름 그대로 탑 아래 있는 마을이다. 탑하촌 출신으로 그 이름을 떨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들의 모습에서 한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끝부분이 붓 모양으로 되어 있는 탑과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는 탑, 주인공의 업적을 문과 무로 나눈 것이다. 이곳에 탑을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친회의 의결을 거쳐야하는데, 충족해야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재미있다. 장수마을답게 조상 중에 100세가 넘도록 장수한 이가 있어야한다는 조건. 특히 돌로 쌓아 만들어진 축대 위에 세워진 다른 탑들과는 달리 탑 하나가 그 아래에 세워져 있는 점이 의아하다. 귀족 신분이었던 다른 탑들의 주인들과는 달리 본디 신분이 낮았던 이가 주인공. 미국으로 건너가 큰 성공을 거둔 주인공이 마을의 발전을 위해 어마어마한 거금을 내어놓자 이곳 사람들이 그의 공을 기려 탑을 세웠다. 하지만 신분의 차이를 고려하여 다른 탑들의 아래에 위치를 잡았다고 한다.
수려한 산수에 깃든 주자의 흔적, 무이산
하문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3시간여를 달리면 무이산에 도착한다. 전설에 따르면 요임금 시대에 이곳에서 큰 홍수가 나자 팽무와 팽이 형제가 백성들을 위해 아홉 굽이의 강을 파서 물길을 냈다고 한다. 그 물길이 구곡계가 되었으며 무이산의 이름은 팽무, 팽이 형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무이산은 복건성 북동쪽에 위치한 해발 약 720미터 높이의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경관이 빼어나면서 중국 유학의 시조인 주희와 관련된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 있어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 및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주자, 주부자 등으로도 불리는 남송의 유학자 주희는 무이산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고 그의 사상을 집대성했다. 그의 사상은 명나라 때까지 중국을 지배했으며,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기에 성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어 지금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무이산은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더욱 뜻깊고 역사적인 여행지일지도 모른다.
무이산 최고의 절경,
천유봉
무이산 입구에서 전동차를 타고 천유봉 풍경구의 입구에 내려 걷다 보면 구곡계를 따라 내려오는 대나무 뗏목들의 행진이 펼쳐진다. 유유자적 물길 따라 떠다니는 뗏목과 사람들의 풍경이 더없이 평화롭다. 숲 사이로 조성된 산책로와 무난한 경사의 바위길을 따라가면 여러 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는 다동에 다다른다. 이름처럼 바위산 아래에 차밭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본격적인 천유봉 산행이 시작된다. 바위를 깎아 만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800개가 넘는 계단이 천유봉까지 이어지는데,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기분이 느껴진다. 경사가 심한 만큼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며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그렇게 오르다보면 천유라는 붉은색 글자가 새겨진 돌이 나타나 천유봉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무이산의 여러 봉우리들과 그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구곡계가 각기 하늘과 땅에서 꿈틀대는 거대한 용이 되어 역동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천유봉에 오르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못했을 절경. 올라온 방향의 반대편 길로 내려가면 웅장한 바위 봉우리 대신 포근한 오솔길이 나타나고 청아한 새소리가 들려온다. 길의 마지막에 깎아지른 듯한 웅장한 암봉이 등장해 천유봉 산행의 대미를 장식해준다.
무이구곡가의 비경,
구곡계 뗏목유람
구곡계 상부의 부두로 가면 뗏목을 탈 수 있다. 무게 중심을 맞춰 뗏목에 오르면 사공이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로 바닥을 짚어가며 배를 몰아간다. 물결이 굽이치며 흐르는 구곡계는 중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손꼽히는 곳. 주희는 이곳에 살며 <무이구곡가>를 지어 구곡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무이구곡가>를 풍류와 시가의 모범으로 삼아 모방했었는데, 그중 율곡 이이가 지은 <고산구곡가>가 대표적이다. 느리게 흘러가는 뗏목 위에서 무이산의 암벽과 기이한 산세가 이어진다. 개구리 형상을 한 청와석靑蛙石, 첫째 부인의 질투로 독수리에게 죽임을 당해 땅 위로 떨어진 옥황상제의 둘째 부인의 가슴이 봉우리가 되었다는 쌍유봉 등 바위와 봉우리 마다 얽힌 뱃사공의 이야기가 함께 풍경을 따라 흐른다. 천유봉을 오를 때의 풍경과 뗏목에서 바라보는 무이구곡의 정취는 또 다르다. 선장암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그 형세가 더욱 장엄하고, 천유봉으로 가는 길에 지났던 다리를 뗏목 위에 서 올려다보니 왠지 기분이 신선하다. 풍경은 갈수록 새롭고 아름다움은 깊어간다. 유람의 말미에 등장하는 옥녀봉은 구곡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낸다. 선녀가 꽃을 꽂고 물가에 서 있는 듯한 옥녀봉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뗏목은 쉼 없이 흘러 대왕봉까지 지나고 나면 하부의 부둣가에 멈추어 숨을 고른다.
달빛 무대, 인상대홍포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한 장예모 감독은 명실 공히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영화감독이자 연출가이다. 그는 중국의 명산과 호수를 무대로 삼아 지역의 민담이나 전설을 다룬 인상 시리즈를 연출했는데, 천년 만에 만나는 연인의 재회와 무이산의 명차 대홍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인상대홍포도 그 중 하나다. 무이산과 주변 자연을 무대로 수백 명의 배우들이 펼치는 공연은 명성에 걸맞게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360도로 회전하는 관람석에 앉아 달빛이 내리는 자연 한가운데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인상 시리즈만의 특별함이다. 복잡한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공연을 감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으며,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무대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배우들이 객석으로 다가와 관객들에게 차를 권하며 공연의 마지막까지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