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안식,
퐁 뒤 가르 & 님 그리고 알비
처음엔 몰랐다. 이토록 아름답고 눈이 부신지를. 숲속에서 가만히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위대한 군주여.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 당신의 아름다운 손을 흔들어 자비를 내려주소서. 그래서 당신을 경배하게 하소서.
물이 전하는 신화,
퐁 뒤 가르
몽펠리에에서 두 시간 남짓. 님을 지나 북서쪽으로 작은 마을들을 따라가다 보면 퐁 뒤 가르라는 거대한 고대 로마의 수로교(水路橋)를 만날 수 있다. 석회암으로 건조되었으며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님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기독교가 전파되기도 전 시기에 지어졌다. 높이 49m, 길이 275m의 3단 아치로 겹쳐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물의 다리. 우선은 이 다리를 직접 보기 전에 현실적으로 알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이다. 퐁 뒤 가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입구에 위치한 전시장에 들릴 필요가 있다. 복합 콤플렉스는 옇상을 보여주는 멀티미디어관과 퐁 뒤 가르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그리고 안내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어 이해를 돕는다. 전시장에 나와 잠시 강을 걷다 보면 모습을 드러내는 퐁 뒤 가르. 몽펠리에에서 본 수로는 어쩌면 퐁 뒤 가르를 위한 예고편이자 희생이었는지도 모른다. 희생이라는, 다소 무겁고 종교적인 표현을 쓴 이유는 아무래도 이 퐁 뒤 가르가 지니고 있는 건축학적. 역사적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퐁 뒤 가르의 모습은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다른 거대 건축물과 비교해도 전혀 그 아름다움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밀리지 않았다. 고대 로마인들이 이 절정의 건축물을 짓는데 단 5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했고, 2천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거의 원형 그대로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면 퐁 뒤 가르에 대한 인식은 어느새 신화로 바뀌어 곧바로 믿음이 되며, 아마 수 천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엔 분명히 종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동안 서서 이 고대 로마인들이 만들어 놓은 걸작을 감상할 것. 만일 풍 뒤 가르에 대한 메뉴얼이 있다면 맨 처음에 나오는 사항일 것이다. 과거 로마시대에는 물이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을 정도로 사회적인 효과가 컸고 크만큼 물이 신의 존재처럼 중요했기에 단순한 물의 이동에 이토록 많은 기술과 시간을 총합시켰을 터. 그렇지 않으면 퐁 뒤 가르는 이해되지 않는다. 야트막한 동산을 따라 3층 높이로 오른 후 수로를 통해 반대편으로 나가면 퐁 뒤 가르 일대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길고 어두우며 낮고 좁은 3층의 수로를 지나가는 것은 마치 피라미드를 탐험하는 것처럼 분명히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이다. 골고루 빼곡하게 자라난 초록의 나무들이 남프랑스를 배경으로 꾸미고 있고 조용하게 가르동(Gardon) 강이 흘러가는 풍경과 그 사이 완벽한 균형과 대칭으로 서 있는 퐁 뒤 가르의 정경이 눈에 넘치게 담기는 순간. 아름다움을 넘어선, 어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마저 느낄 수 있는 곳. 만일 태초에 프랑스의 생명이 태어난 곳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 기원은 이곳, 퐁 뒤 가르일 것이다.
프랑스 속의 로마, 님
님의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숨은 보석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맞는 이름.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애착이 가는 님.
<아레나 님>
Arènes de Nîmes
님에 도착해서 거리를 걷다 보면 그리고 님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고 오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느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경이와 찬탄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 로마에만 있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세계인류문화유산인 콜로세움. 본토인 로마의 것보다 보존상태가 훨씬 좋은 것을 넘어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님의 아레나이다. 과거 로마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남프랑스 지역에는 유난히 그 시대의 유적들이 많고 이곳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해 보존과 유지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육즁한 벽돌과 돌기둥이 늘어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입구로 들어가 콜로세움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 경기장 안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유난히 많은 출입구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보다 빠르게 드나들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이었다니. 그 당시 이미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갖춘 그들의 아이디어에 역시 또 한번 경이와 찬탄을 보낸다. 과거에는 물론 이곳에서 검투사들끼리 결투를 벌였다. 패배한 자가 현장에서 왕의 지시에 의해 바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상업영화가 지닌 왜곡된 정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투우의 종가인 스페인. 특히 바로 옆에 이웃한 카탈루냐 지방이 투우를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는 데 반해 아를과 이곳 님에서는 아직도 투우를 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1년에 2차례 정도 열린다고 한다. 곧 있을 밴드 뮤즈의 공연준비가 한창인 당시엔 엄청났을 2만석 규모의 님 아레나. 아레나 맨 윗층으로 올라 가면 돌벽 너머 님의 전경이 펼쳐진다. 님의 경우 시작일 뿐인 곳.
<메종 카헤 & 카헤 시립 현대 미술관>
Maison Carrée
Carré d’Art-Musée d’art contemporain
아레나에서 내려와 작은 도시님의 골목을 따라 걷는다. 사람도 많지 않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가 아니라서 한적한 공간은 오로지 걷는 사람의 몫이다. 될수록 천천히 걸어야 이 작은 도시님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듯. 시내 중심인 마르셰 광장Place du March에는 님의 상징인 야자수와 악어 조형물이 있다. 과거 로마가 이집트의 나일 지역을 정복하고 난 후 나일의 대표적인 공원인 라 퐁텐느 공원을 향해 걷다 다시 맞닥뜨리게 되는 지점. 메종 카헤라고 불리는 고대 로마의 또 다른 유적. 그 유명한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 영감을 준 건축물로 보존 상태가 너무나 좋아 2천 년 전의 것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우구스트 황제가 자신의 두 손자에게 주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이른바 '미'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생긴다면 '완벽한 보존미'라는 칭호를 받기에 조금도 아깝지 않은 신전. 하얀 대리석을 입고 말갛게 서 있는 메종 카헤의 모습은 아레나에서 느꼈던 왕의 기품이 조금 다른 형태로 표현된. 그야말로 어린 왕자의 모습이다. 메종 카헤의 반대편에는 극적으로 대비되는 현대적인 모습의 카헤 시립 현대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 현대 세계 하이테크 건축의 시초이자 세계 유수의 건축물을 도맡아 진행해온 건축의 대가 노먼 포스터의 초기 작품으로 이 건물 이후 그의 건축 철학이 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던한 인테리어의 미술관 옥상 카페에 올라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메종 카페를 보는 시간. 남프랑스 특유의 온화한 햇빛이 메종 카헤의 대리석에 반사되어 내려앉고 님의 현대와 과거는 이 지점에서 동시에 손을 맞잡는다.
<르 퐁텐느 정원>
Les Jardins de la Fontaine
님 사람들의 휴식처인 르 퐁텐느 정원은 님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둘루즈에서 보았던 것처럼 정원 주위로 운하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도시의 틀이 충분히 갖춰지고 난 이후인 18세기 무렵의 것이라고 한다. 다시 한번 2천년 전의 아레나와 메종 카헤에 경의를 표하는 시간. 정원은 무척 드넓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정원으로 루이 15세가 직접 명을 내려 짓게 된 이 정원에는 주목할 만한 장소가 한 곳 있는데 바로 다이안 신전(Temple de Diane)이라고 불리는 2세기 즈음의 고대 유적. 많은 학자들이 도서관이나 유곽일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오랜 기간을 연구했지만 정확한 용도를 아직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미스터리한 건축물이다. 정원에서 나와 빅토르 위고 대로(Victor Hugo Boulevard)를 따라 내려오면, 계속되는 유적의 진행에 하나의 작은 쉼표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소설 '별'의 작가인 풍스 도데의 생가. 라옹(Lyon)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알레스(Alès)를 거쳐 파리에서 대부분의 일생을 보냈지만 도데는 분명 님에서 태어났고 이 따듯한 님의 별을 기억하며 소설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늦은 시간이라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쉽지만 그래도 님을 내 마음 속에 별처럼 새길 수 있었던 시간. 가뜩이나 조용한 남프랑스의 님. 밤이 내리면 부디 도데가 보았던 그 시절의 별을 볼 수 있기를.
너무나 로트렉적인, 알비
님에서 차로 다섯 시간 여. 소박하고 풍요로운 남프랑스의 전원 풍경을 따라 세 번 정도 낮은 높이의 산을 넘으면 알비가 보인다. 작고 느리며 낮게 흘러가는 알비. 이곳에 도착해서 처음 내뱉은 말, 이곳에 와서 다행이다.
<로트렉박물관>
Musée Toulouse-Lautrec
알비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로트렉은 알비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두 다리의 골절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됐고, 평생을 장애를 안고 살다 다소 이르 나이에 죽음을 맞은 비운의 화가이다. 젋은 시절 창작열이 넘쳐 파리로 향한 로트렉은 그곳에서 고흐와 고갱. 오스카 와일드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를 하며 프랑스 화단을 이끌었다. 왜곡되고 쓸쓸한 그의 독특한 화풍도 현대 화단에서 독보적이지만 현재에 사용되어지고 있는 많은 포스터 디자인이 그의 작품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피카소 또한 로트렉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인물. 장애라는 콤플렉스와 지체 높은 귀족 출신. 터질 것 같았던 창작열과 정신착란. 갖가지 기행 등 다양하고 상반된 정서가 화려한 파리와 만나 짧게 꽃을 피웠던 로트렉. 높은 문턱으로 까다로웠던 물랑루즈와 몽마르트가 받아주었던 알비의 작은 천재. 그가 사망한 이후 그의 어머니는 로트렉의 많은 유작을 알비시에 기증했고 1922년 이 작품들을 바탕으로 1905년까지 대주교의 관저로 사용되었던 베르비 궁(Palais de la Berbie)에 로트렉 미술관이 세워졌다. 미술관의 위치는 시내 중심. 타른(Tarn) 강과 비유(Vieux) 다리가 굽어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 데생과 판화. 유화 등 수 많은 작품을 소장해 로트렉의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로트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로트렉의 성지. 조용하고 작은 마을 알비에 더없이 어울리는 당신의 이름. 로트렉.
<알비 대성당>
Sainte-Cécile Cathedral
알비 시내로 들어와 로트렉 미술관보다 먼저 시야를 뒤덮는 것은 사실 바로 옆에 위치한 알비 대성당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현세에 남아 있는 세계 최고의 벽돌 성당으로 기록되는 길이 113미터와 폭 35미터 그리고 첨탑의 높이가 78미터에 이르는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 무엇보다 수 백만 개의 붉은색 벽돌로 마감된 우아하고 고귀함이 넘치는 이 성당을 짓는 데 무려 200년이 넘게 걸렸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의 문화유산에 관한 기록적인 책<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의 저자 리처드 카벤디쉬는 그 1001곳 중 하나로 당연히 알비 대성당을 추천한 바 있다.
알비를 여행자로서 방문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성당의 입구에 들어선 순간 모두가 일괄된 반응을 보인다. 그 소리는 단순한 하나의 음으로 충분히 표현될 수 있다. '아!!' 이 감탄사는 저마다의 길이만 다를 뿐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나올 수 밖에 없는 소리이다. 이 것을 진정 이간이 만들었는가에 대한 마음속의 의문은 뒤이어 자리 잡는 과정일 뿐. 성당은 르네상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천장 프레스코화로 가득하며 마치 가우디의 작품에 기원이 되었을 것 같은 갖가지 다양하고 종교적인 조형물과 패턴들로 빼곡하다. 벽면과 천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에만 11년의 기간이 필요했으며 정면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알비 대성당의 공식적인 인정으로 세계 최고의 최후의 심판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세계 곳곳에 유수한 성당 건축물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앞자리에 와야 할 알비 대성당. 조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바라본다면 더욱 더 이 기적과도 같은 건축물에 숙연히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