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랑스러웠던 날들에 대한 회상
부탄
이따금씩 옛 나날들을 돌아보는 나이에 섰다. 아련한 기억 속, 푸근해진 가슴이 소환해낸 눈물 한 방울과 웃음을 빼낸 미소, 그리고 그때로 떠나지 못해 애만 타던 발걸음. 심장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린 그 기억들을 다시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났다. 부탄에서 재회한, 생을 사랑하게끔 해줬던 나날들.
파로(Paro)
파로는 부탄의 서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탄의 수도인 팀푸와는 차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이다. 부탄 국제공항이 이곳에 있어 항공편으로 부탄을 드나드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곳으로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온 부탄의 젊은이들이 많은 도시이다. 부탄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기는 곳 중 하나인 탁상 사원은 모든 여행객들이 반드시 다녀가는 부탄여행의 핵심 볼거리이다.
+ 첫인상, 부탄 파로 국제공항
방콕에서 이른 아침 떠난 비행기는 인도의 콜카타에서 잠시 쉬어가며 손님을 바꿔 태우고 다시 하늘로 올랐다. 부탄이 가까워진 건지 갑자기 기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의 함성과 아쉬움이 뒤섞인 소리들, 8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눈 덮인 고봉들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감췄다 하고 있었다. 무엇하나 내 맘 같지 않은 시간, 그럼에도 서서히 부탄여행의 흥분이 시작되는 시간. 파로 국제공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착륙하기 어려운 공항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었다. 항공기가 지나다닐 수 있는 상공과 넓고 긴 활주로가 필요하지만 해발 2,230미터의 산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탓에 항공기가 착륙할 만한 공간이 부족해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가 떠오를 때쯤, 비행기는 어느새 활주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위기감은 짧은 활주로에 놓인 공항청사의 모습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공항에 있는 작은 사원인가?’ 은둔의 왕국, 작은 불교왕국 부탄, 이라는 수식어들이 드디어 실감나고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왔다. 한산하기만한 시골 공항일 거라 생각했지만 공항 앞을 가득 메운 뜻밖의 환영 인파는 이곳이 부탄 유일의 국제공항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후, 마중 나온 가이드를 찾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들의 얼굴이 한국 사람들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는 사실과 환영 인파들이 대부분 남자라는 것, 그리고 모두가 치마를 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돌아봐도 어느 때보다 부탄스러웠던 풍경.
+ 파로 시내에서
예상보다 안락한 투어 차량에 올랐다. 부드럽게 공항을 빠져나가는 대한민국 브랜드의 SUV 차량에 초행길의 불안감은 잊었다. 그렇게 찾아든 편안함은 또 다른 곳에서도 전해졌다. 건너 마을 아저씨가 아닌가 싶은 한국인을 닮은 운전사의 얼굴, 낯설지만 급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시내 풍경 그리고 둔탁하지 않은 촌 동네의 아날로그 감성들, 그럼에도 가난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하기만 한 거리. 잠시 스마트폰의 심카드를 바꾸기 위해 작은 가게에 들렀다. 저마다 손에 든 문명의 화려함과 가게 안의 낡은 공기가 뒤섞여 부탄에 대한 호기심을 마구 증폭시켜 놓았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바깥 세상과 부탄을 이어주는 통로, 파로.
+ 부탄이야기의 시작
탁상 곰파
부탄을 여행하며 가이드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름은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였다. 국민의 90% 이상이 불교도인 부탄은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중한 스승이라는 의미의 ‘구루 린포체Guru Limpoche’로 불리기도 하는 파드마삼바바는 인도의 탄트라 불교, 즉 밀교를 부탄에 들여왔으며, 부탄 사람들은 우리가 단군왕검을 모시듯 그렇게 파드마삼바바를 숭배한다.
부탄의 건국 신화나 다름없는 파드마삼바바의 이야기가 탁상 곰파에 남아 있다. 8세기 호랑이를 타고 날아온 파드마삼바바는 아득한 절벽 위에 둥지를 튼 탁상 곰파에서 수도에 정진했다고 전해진다. 부탄여행의 첫 목적지는 바로 그 신화를 만나러 가는 길. 부탄을 이해하고 여행을 시작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지만,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3시간 쯤, 산길을 올라야 한다. 등산로 입구에는 등에 안장을 얹은 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도보를 택했다. 그리 거칠지 않은 길에 끊임없이 여행객들과 부탄 남성들의 전통복장인 ‘고’를 입은 가이드들을 마주쳤다. 치마를 닮은 고를 입은 남자들의 모습도 낯설지만, 치마를 입고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은 뒤 등산화를 신은 모습은 정말로 어색해서 가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곰파는 사원이라는 뜻이고 탁상 곰파는 호랑이 둥지 사원을 뜻하는 Tiger’s Nest로 통한다. 1692년 최초로 자리를 잡은 탁상 곰파는 부탄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부탄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자료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파드마삼바바의 신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뛰어난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화를 품고 있는 곳들의 아름다움과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그곳들의 특성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탁상 곰파를 향해 계속해서 산을 오르는 길에 이따금씩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3천 미터의 하늘에 매달린, 아슬아슬하다가도 그림처럼 아름답고 또 절묘한 그 모습에서 계속해서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목적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신의 영역이 시작된 걸까. 마지막 다리를 건너고 사원 앞에 다다르자 무의식적으로 경건해지는 여행자들의 모습들, 입가를 떠나지 못하는 평화로운 미소를 만났다.
팀푸(Thimphu)
부탄의 수도인 팀푸는 부탄에서 도시적인 풍경을 거의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법에 의해 타 지역은 건물이 3층을 넘지 못하지만 팀푸에서는 6층까지 허용돼 수도로써 차별화된 모습이 시각적으로 좀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의 눈에는 여전히 시골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곳, 하지만 여느 빈국들과 달리 도시의 깔끔함과 청결함만은 선진국 못지않은 곳. 높은 곳에 올라 팀푸를 내려다보면 산맥 사이에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의 풍경이 이색적이다.
+ 국가의 중심. 타쉬쵸 종
학창시절 교실에는 근엄한 대통령의 얼굴이 있는 액자가 늘 걸려있었다. 의미도 모른 채 바라봤던 그 모습은 학교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사라진 우리나라의 옛 풍경처럼, 부탄의 국왕과 왕비의 모습을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길거리, 시장, 음식점, 심지어 가정집에서도 국왕과 왕비의 사진을 걸어놓아 하루에도 수십 번 그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본인 사진은 없어도 국왕과 왕비의 사진은 꼭 가지고 있는 부탄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왕가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라도 부탄의 국왕과 왕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왕이 살고 있는 집을 구경하거나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국왕의 집무실과 행정기관, 종교기관이 함께 있는 곳은 둘러볼 수 있었다. 타쉬쵸 종이 바로 그곳. 하얀 성벽과 지붕 위 뾰족한 금탑이 웅장하게 서 있는 타쉬쵸 종의 일부 공간이 여행객들에게 공개되어 내부를 둘러봤다. ‘종’이라는 부탄만의 독특한 풍경을 두 눈에 담고 돌아가는 길, 가이드가 길 옆 아담한 건물을 손짓하며 그들의 국왕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일러줬다. 부탄에서는 무척이나 거대한 규모의 타쉬쵸 종에 비해 왠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은 국왕의 거처 앞에서 ‘정말 왕이 사는 집이 맞을까?’ 하는 의문과 알 수 없는 부러움이 함께 몰려들던 순간. 한 나라의 지도자를 사랑할 수 있는 국민만큼 행복한 국민이 또 있을까.
+ 동그라미로 그리는 행복
내셔널 메모리얼 초르텐
스투파라고 부르는 탑 주변을 사람들이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행복을 비는 의식, ‘코라’. 부탄에서는 어딜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도로에서 스투파가 나타나면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스투파를 한 바퀴 돌고 지나가는 차량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팀푸 시내 중심에 위치한 내셔널 메모리얼 초르텐에는 부탄 여행 중 봤던 것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스투파 주위를 돌고 있었다.
평일 오후 시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부탄의 절실한 불교신자와 승려들도 있었지만 비슷한 불교문화를 갖고 있는 여행객들과 학생이나 직장인들의 모습도 적지 않았다. 서로 모습은 다르지만 그들의 얼굴에 각인된 진지함과 간절함은 한결같았다. 코라를 돌고 있는 옆에서는 스투파를 향해 절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마니차-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를 돌리고 있는 사람들. 그 모든 풍경들이 이곳의 주인공인 부탄의 3대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축을 위한 것이든, 자신과 가족을 위한 것이든, 그들이 그리는 동그라미 속에 담긴 마음은 모두 똑같아 보였다. 행복, 부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 어느 초등학교에서
학교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산허리에 걸터앉은 황톳빛 운동장이었다. 하얀 가루로 그어 놓은 선들이 바람에 날렸는지, 아이들의 발자국에 지워졌는지 군데군데 지워져 있는 모습이 이제는 기억조차 까마득한 옛 나날들을 꺼내어놓았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공을 차던 볼이 빨간 소년들. 그때의 시간보다도 더 먼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교실의 풍경을 잠시 마주했다. 책상, 공책, 필통, 칠판... 그런 것들의 낡음이 학교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칫 오해할 뻔 했던 순간을 깨워준 건 아이들이었다. 우리에게 또박또박 영어로 이야기 했고 제법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 거리감이나 거부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던 동그란 눈과 입안 가득한 웃음. 초등학생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단어가 아주 적당하게 스며들어 있었던 그들의 얼굴들.
+ 108개의 스투파
도출라고개
팀푸에서 푸나카로 가는 길, 해발 3,100미터가 넘는 도출라 고개에 올랐다. 정상의 언덕 너머로 아침 안개와 구름이 뒤섞여 먼 하늘 너머에서 반겨주길 기대했던 히말라야의 영봉들을 가리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해발 6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설산들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는 가이드의 이야기가 무심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쉬울 필요는 없었다. 히말라야를 대신해 드룩 왕걀 초르텐Druk Wangyal Chorten이라고 불리는 108개의 스투파와 사원이 도출라 고개의 정상에서 아침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인도 정부의 부탁을 받은 부탄이 인도 반군을 소탕한 뒤, 전쟁에서 생을 마감한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원과 탑들. 108개나 되는 스투파에 담긴 영혼들 때문일까, 히말라야보다도 더 성스러운 기운이 도출라 패스의 정상을 감싸고 있었다.
부탄 이야기는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