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이 난
타이난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종종 우리나라의 경주나 일본의 교토와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꼭 비교라는 단어를 가져오지 않아도 각 도시들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기 마련. 타이난은 타이난이다.
안평고보 安平古堡
타이난의 가장 유명한 여행지이고 또 그럴 이유가 충분한 곳, 안평지구. 이 구역은 안평의 옛 거리와 안평수옥安平樹屋이라는 반얀트리 나무로 뒤덮인 건물 그리고 네덜란드 점령
기에 쓰였던 안평고보와 같은 역사적인 볼거리들을 두루 아울러 타이난을 대표하는 여행 명소로 자리 잡았다. 타이난의 여행 기점이며 또 타이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안평. 대
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에 편안하고 또 평화로운 한자를붙였으니 이 도시는 얼마나 오랫동안 태평성대를 누렸던 것인가. 타이난 최고의 여행지이다보니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람들이 훨씬 많이 찾는 안평수옥을뒤로 미루고 안평고보를 먼저 찾는 것이 동선이 여유롭다.이 안평에서 그리 바쁘게 움직일 이유란 없으니 오히려 그
동선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안평고보는 우선 이곳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질 무렵의 풍광이 가히 예술적이라는 찬사를 받아 타이난이 아닌 대만 전체를 통해 8대 미경으로 꼽힌다.
원래 이름이 외국인의 이름인 제럴드성城이었으며 이는 17세기 중엽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세운 군사요새였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요새. 북적이지 않고
고즈넉한 분위기마저 자아내는 안평고보. 당시 사용되던 대포와 관련 물품들도 전시되어 있지만 왠지 모를 편안함이 스미는 곳.
아, 맞다. 이곳 참, 안평이었지.
Old Street, 안평 옛 거리
안평 옛 거리의 구성은 우리나라의 북촌이나 서촌의 골목을 닮아있고 거리의 풍경은 인사동과 비슷하다.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대로 보존하고만 있으라는 발상은 현 시대에는
조금 무리. 거리는 최대한 안평의 정신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대적이고 또 충분히 그들의 정서를 유지하고 있다. 골목골목 구석구석을 걷다 보면 느낄 수 있는 대목인데,
사실상 이곳이 타이난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살았던 사람들의 주된 터전이기에 거리 말고 좀 더 깊숙이 들어간 골목은 어딘지 흔한 가정집들이 모여 있는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다.
옛것이 주는 기품 그리고 그런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무언의 풍경. 이 거리를 빠르게 빠져 나갈 이유는 이 거리에 없다. 최대한 천천히 걸어볼 것. 그리고 안평이 주는
옛것의 무한함을 길 위에서 느껴볼 것. 그러면 타이난 여행은 완성이다.
시오출장소 夕遊出張所
거리를 지나 북서쪽으로 큰 길을 건너면 소금출장소와 만난다. 일본어로 소금이 시오이기에 시오출장소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섬나라인 대만은 오래전부터 천일염이
많이 생산돼 아직도 곳곳에 소금과 관련된 시설들이 많다. 염전 사업이 쇠퇴일로를 걷고 있지만 시오출장소는 소금과 이야기를 묶어 하나의 여행지로 탄생시킨 똑똑한
방문지로 예전 일제 식민지시대에 염부들의 기숙사로 사용했던 출장소를 단정하게 보수를 거쳐 소금박물관 형식으로 재탄생시켰다.
외부는 아무래도 일본풍. 내부로 들어가면 잘 진열된 화려한 색감과 반짝반짝 빛이 나는 365가지의 소금이 먼저 빛을 발한다. 각 생일에 맞춰 분류된 탄생소금에는 저마다
특징적인 글귀가 적혀 있어 의미를 더하고 각종 소금관련 기념품들과 카페테리아도 갖춰져 있어 잠시나마 쉬어가는 것도 좋다. 달콤 짭짜름한 소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은
이곳에서 할 일 중 하나. 밖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는 갖가지 자신들의 소망을 담은 목패를 걸어 소망을 기원한다. 소금과 바람. 어쨌거나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두 가지가
함께 공존하는 곳. 안과 평이 같이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사다난 , 적감루 赤嵌樓
적감루는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이 대만을 점령한 후 행정 건물로 세운곳으로, 이후 대만 건국의 아버지이자 민족 영웅인 정성공鄭成功-1624~1662 이 대만 수복
후 본부로 사용했으며 다시 일본 점령기에는 일본의 행정관처로 쓰이기도 한 대만 국가 1급 고적이다. 보기보다 꽤나 오래된 역사를 지닌 적감루. 부침이 많아 그렇게
슬퍼 보이던 적색을 띠고 있는 것일까. 적감루의 모습은 확실히 사연을 많이 담고 있는 것처럼 전체적으로 밝은 톤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대만은 중국은 물론 영국과
네덜란드, 스페인과 현세의 일본 등 참으로 많은 나라로부터 탐을 당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섬사람 특유의 배타심 없이 외부인들에게 우호적이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대만인들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적감루 부지 내에는 작은 연못과 두 개의 주요 건물이 있는데 문창각과 해신묘가 그것이다. 익히 알고 있지만 침략을 당한 일본에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대만은 곳곳에 일본의 흔적들이 많다. 문창각文昌閣은 일본 전역에 있는 천만궁天?宮사원처럼 학업의 신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입시철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자식의 학업이 잘되기를 비는 부모들과 학생들로 넘쳐난다. 도교에선 문창이라는 인물이 신으로 추앙받는다고 해 중국에는 많은 지역에 문창각이 있을 정도이다.
문창각 앞 해신묘海神廟는 적감루의 2층에 위치해 있다. 단순하게 몇 가지의 전시물들뿐이라 다소 한산한 풍경이지만 밖의 망루로 나가면 적감루 부지와 그 너머의 풍경들이
보여 잠시 동안 숨을 고르며 그간 지나온 가오슝과 타이난에서의 여행을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골목을 위하여 하나, 션농지에神農街
도시임에도 크게 번잡지 않은 타이난에서 걷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땅, 그 땅을 직접 밟는다는 것이 얼마나 성스러운 일인지 안다면 말이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영화 세트장처럼 1940년대 무렵 건물의 옛 정취를 구경할 수 있는 골목인 ‘션농지에’. 시내 중심인 서문 로터리에 위치하고 있고 그다지
길지않은 골목은 일본과 중국풍이 적절하게 섞여있는 분위기. 오후 나절에 가면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좀 더 이른 시간에 가는 것이 이 골목을 느끼기에 더 없이 알맞은 시간이
다. 션농지에에서 애써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으며 또 사람이 많다고 스스로 기대를 져버릴 필요도 없다. 주어진 길을 따라 가면 그만. 인파가 가득하지만 상업적으로 일부러
꾸며놓지 않은 소박함과 순수함이 아직도 골목에 가득하다. 빈티지와 아날로그 그리고 고풍스러움이 동시에 상존하는 션농지에.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므로 아무래도 기본적
인 소음이나 행동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골목을 위하여 둘, 뚜이위에먼兌悅門
션농지에에서 예상 밖의 인파로 조금은 낯선 감정을 느꼈다면 가까운 거리의 뚜이위에먼 거리가 확실한 대안이다. 골목에서 나와 대로를 건넌 후 문현로文賢路를 따라 가면
작은 돌 성곽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뚜이위에먼이다. 성곽까지 가는 길은 무척이나 밋밋하다. 다행스럽게 나쁜 의미로 전달이되지 않았다면 그런 느낌은 오히려 더없이
조용해 담담하다는 얘기로 들리길 바란다. 이것은 200여년 경에 지어진 타이난을 감쌌던 성곽 중 일부였으나 지금은 이곳 하나만이 남아있어 당시의 흔적을 짐작케 한다.
대만 국가지정 2급 고적. 션농지에보다는 확실히 한산한 거리이다.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릴 정도고 또 그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골목의
정취는 나지막이 머물러있다. 좀 더 개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카페와 상점들. 그러나 몇 곳 되지 않는 그들만의 정서가 이 곳에 따로 있다.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면 조금 더 맞을까.
이제야 바쁘게 지나왔던 타이난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시간. 고양이가 반겨주는 카페에 들어가 크림이 듬뿍 담긴 카푸치노를 한잔할 것. 비로소 타이난이 내 옆으로 가까이 오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