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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지 ] [가오슝]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도시


가 오 슝 

대만 제 2의 도시, 가오슝.
바다와 인접해 거친 인상을 가질 법도 하지만 가오슝 사람들은 무척이나 친절하다.
사람들은 웃음으로써 타인을 대하고 예의를 갖춰 낯선 이를 대한다.
거리도 깨끗해 기존의 동남아시아에서 보던 혼잡함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으로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가오슝. 이곳은 그냥 믿고 가는 곳이다.

 

섬 한 바퀴, 치진旗津


섬 속의 섬인 치진으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바다를 건너야 하므로 MRT 오렌지 라인의 끝인 시즈완西子灣 역으로 간 후 구산 페리터미널로 향한다.
치진이 가오슝에서 최초로 상업적인 개발 대상이었던 탓인지 항구이자 페리 선착장이지만 비릿한 바다의 풍경은 조금 덜하다. 배는 거의 10분에 한대씩 올 정도로
자주 있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이를테면 섬, 이라는 곳엘 가는 것이니 더더욱 바쁘게 움직일 필요는 없을 것. 많은 사람, 차량들과 함께 같이 바다를 건넌다는
왠지 모를 무언의 동질감이 작지 않은 배 안에 가득하다. 배는 제법 크다. 10분 정도 바다를 가르면 치진섬에 닿는다. 치진섬은 원래 육지였는데 아편전쟁 이후
가오슝에 들어온 영국인들이 항구로 쓰기 위해서 섬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섬이자 육지였던 곳 그리고 육지였지만 지금은 섬이된 치진. 어쨌든 오랫동안 가오슝의 땅이었다.

섬에 도착하면 스쿠터와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곳이 있어 이 섬이 그다지 작지 않은 곳임을 알려준다. 해변에는 검은 모래들이 밀려온 바닷물에 사르락 쓸리며 해변의 정취를
더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도는 섬 한 바퀴는 바로 치진섬에 온 이유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서 각자 자신이 즐기고 싶은 섬을 마음대로 즐긴다.
섬이 그리고 바다가 부여한 자유는 이곳에서 무제한이다. 바다로 나가는 길옆에는 치진천후궁旗津天后宮이 마치 마을의 어른처럼 섬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이 도교사원은
무려 3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녀 가오슝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는 공식적인 타이틀이 있다. 섬을 한 눈에 담기 위해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인 치허우旗后산에 오른다.
산으로 가기 위해 걷는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이 이 작은 섬 탐방의 숨겨진 여행. 골목의 풍경엔 도시 특유의 조금의 조급함도 보이지 않는다. 산 정상에는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가오슝 등대가 있다. 정상까지는 숨이 가쁠 정도가 아니라서 부담 없이 오르면 좋고 게다가 등대를 보러간다는 마음은 확실히 걸음의 속도에 무게를 주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면 관련 시설 건물들이 부지를 이루고 있고 멀리 치진섬 전체와 바다 건너 가오슝 시내까지 모두 담긴다. 가오슝 그리고 치진에서 맞는 바닷바람. 그냥 좋을 뿐.


시즈완 언덕, 영국영사관英國領事館

 

치진섬에서 돌아와 왼쪽으로 구름다리를 건너 시즈완 언덕으로 오르면 영국영사관과 만난다. 바다와 언덕이라는 너무나 이상적인 조합이다. 일반적으로 드나드는 정문이
있지만 시즈완 바다를 끼고 가는 후문 길이 좀 더 한적하다. 이곳의 공식명칭은 타구打狗영국영사관. 1865년 영국인이 대만에 지은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당시
아편전쟁에서 진 중국이 영국에 개방한 4곳의 항구 중 한 곳이 가오슝이었고 그래서 영국이 대만에서 철수할 때까지 이곳에서 행정업무를 보았다. 한자가 조금 특이한데,
타구打狗는 개를 때린다는 의미이다. 몹시도 이상한 이 이름은 과거 이 지역에 살던 한 토착 부족이 해적을 막기 위해 쳐둔 날카로운 대나무 숲의 타카오라는 뜻을
중국인들이 음역해서 부르게 되었고 이후 공식적인 지역 이름으로 정착된 역사가 있다. 입구를 지나면 당시 상황을 재현한 마네킹들과 관련 자료들을 모아놓은
작은 박물관이 있다. 돌계단을 통해 정상에 오르면 영국영사관이 모습을 보인다. 옅은 적감색의 벽돌로 지어진, 대만 최초의 서양식 건물임과 동시에 어쩌면 가장 품격이
느껴지는 건물. 가오슝에서는 확실히 이국적인 외관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건너편 치진섬의 가오슝 등대에서 보았던 것처럼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해질 무렵 바라보는
시즈만 선셋은 가오슝 8경에 들어갈 정도로 아름답다지만, 구름이 많은 날씨 탓에 아쉬움만 더한다. 극도의 아름다움은 원래 그렇게 흔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미련을 버린다. 항구와 뱃고동 또 마천루와 바다. 흔히들 가오슝을 자매도시인 부산과 닮았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풍광은 오히려 고즈넉한 전라남도의 고흥과 흡사
한 곳. 세련되진 않았지만 담담하게 그저 바다를 받쳐주고 있는 가오슝. 바다가 보이는 삶은, 언제나 옳을 뿐이다.


예술 특별자치구역, 보얼예술특구駁二藝術特區

가오슝 거리를 걷다 보면 대만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서 아니, 거창하게 예술이라는 단어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문화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고 또 생활 속 사소한
부분에서도 그런 마음을 가지려는지 알 수 있다. 문화와 가깝고 친숙하게 산다는 것은 확실히 어떤 삶보다 낭만적이다. 보얼특구는 영국영사관에서 내려와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대만의 택시비는 그리 비싸지 않지만 가오슝의 구석구석을느끼려면 역시 직접 걷는 편이 좋다.

옛 항만 부두의 창고 단지 25개동을 전시장과 작업실, 공연장 등의 창작공간으로 용도 변경해 새로운 공간으로 재해석한 보얼예술특구. 특구는 한때 산업의 쇠퇴로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던 가오슝에 숨과 활기를 불어넣어 가오슝에 문화라는, 흔하지만 중요한 코드를 이식했다. 보얼은 대만어로 ‘제 2호 연결 부두’라는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연결이란 당연히 부두와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문화 그리고 다시 되돌아와 문화와 부두를 연결한다는 뜻일 게다. 가오슝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에게 버려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보얼예술특구. 특구는 각 기능과 콘셉트에 따라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각각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공방에서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품을 만드는 미래의 공예장인이 작업 중이며 레스토랑에서도 보얼 특유의 작고 소소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철도박물관과 특구 내를 도는 꼬마 기차는 보얼만의 작은 방문지이자 가족을 위한 소품. 곳곳에 설치된 재기발랄한 조형물 또한 이곳의 상징물들이기도 하다. 바깥쪽으로
운동장 몇 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공원이 있어 여행객들뿐만 아니라 가오슝 사람들에게도 문화의 공간이자 쉼의 안식처가 되는 보얼특구. 가오슝에서 꼭 들려야 하는 곳이다.


아름답고도 고운 별천지, 미려도美麗島 역



가오슝에서 문화나 예술은 보얼특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하디흔한 지하철역에서 만나는 문화. 사람들과 가장 가까 운 예술. 그것이 아마 가오슝이 바라보는
그런 정신에 대한 철학이자 그 지점인가 보다. 아름다울 미美와 고울 려麗자를 쓰는 미려도 역은 가오슝의 레드 라인과 오렌지 라인 두 개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찾아가기가 어렵지 않다. 역에 내려 내부에 설치된 거대한 조형물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껏 봐왔던 어느 장면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멋진 광경이 눈앞을 가로 막는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곳. 지하철 역사라는 흔한 공간을 이렇게 멋지게 꾸민 가오슝 사람들. 마땅히 대단하다. 천장은 직경 30미터의 길이, 무려 6천여 개의
유리판이 동원됐으며 4년에 걸친 제작기간. 이탈리아의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Narcissus Quagliata가 만든 ‘Dome of light’는 이렇게 탄생했다.



아마 지구 상 어딘가에는 이 지하철을 직접 보는 것이 인생 버킷리스트에 드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표현된 작품은 다소 난해하다.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자‘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또 비너스의 결혼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형상들이 화려한 색감들과 함께 뒤섞여 있다.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고 또 그 우주 공간에 와있는 것도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들어 우주에서 날아온 하나의 물체를 경이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므로 자리를 옮겨가며 감상하는 것이 좋다.
‘Dome of light’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이라는 테마에서 꾸준히 TOP을 차지하고 있으며, 가오슝에는 이와 같은 공공예술을 볼 수 있는 곳이 미려도 말고도 일곱 군데나
더 있다고 한다. 지하철 역 내에 있으므로 입장료는 당연히 무료. 현세에 가장 아름다운 천장화의 타이틀은 미려도에게.


정원과 책의 콜라보, 가오슝시립도서관高雄市立圖書館

 

가오슝에는 어딘지 모범이 될 법한 거리나 대상지역들이 많다. 미려도 역이 전세계 지하철역의 모범답안이고 보얼이 세상 모든 특별구역의 미래 자화상이라면 가오슝시립도서관
역시 모든 도서관들이 가야할 길. 게다가 날씨가 변화무쌍한 대만에서라면 이런 값진 실내 스폿은 미리 알아두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 가오슝 시립도서관의 첫 인상은 무척이나
단정하다. 내부 역시 마치 거대한 미니멀 아트를 보는 듯 심플하고 통일된 모습. 이 안에 담겨있는 무수한 것들이 바로 책이라고 하니 무언가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도서관을
가야할 목적 여러가지 중 하나는 바로 도서관의 옥상이다. 뉴 베이 가든이라는 정원으로 동시에 꾸며진 옥상은 가오슝 또 하나의 완벽한 방문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으로
 올라가면 시즈완이나 치진에서 보았던 가오슝의 전경을 이곳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사방이 모두 높은 빌딩들이고 공사현장이지만 이마저도 풍경 속으로 들어와 도시라는 그림이 되는 곳. 아무래도 공공시설이고 일정하게 관리돼야 하는 탓에 옷차림이 불량하면
입구에서 제지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공부를 한다니, 아니 책을 볼 수 있다니 가오슝에 내린 축복은 어디에나 넘쳐나는 것 같다. 지하까지 총 10개 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간인 시립도서관에는 각 층마다 카테고리별로 잘 분류된 도서들이 빽빽해 그야말로 서림을 이루고 있다. 잘 꾸며진 갤러리 같기도, 또 항공사의 고급 라운지처럼
보이기도 했던 시립도서관. 시립도서관은 분명 의외의 발견이자,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가오슝 여행 1순위. 바로 앞에 가오슝 85빌딩이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서 있다.


사랑의 강 , 아이허 愛河

 

어디를 가든지 밤 풍경을 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그곳의 하루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오슝의 밤은 아이허가 책임진다. 아이허는 ‘사랑의 강’이라는 뜻으로
가오슝 시내를 크게 돌며 흐르는 강을 말한다. 조금 낭만적인 연상을 하기 쉬운데, 아이허가 말하는 사랑은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만을 뜻하고 있지는 않다. 가오슝이 지금의
모습처럼 발전을 거듭하며 대도시로 커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환경오염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가오슝 시민들이 사랑을 담아 아이허를 지키고자 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사랑, 그것이 원래 더 큰 법이다.

강변에는 노천카페들이 줄지어 있어 밤에 강바람을 맞으러 온 시민들로 가득하고 가오슝 사람들은 강이 주는 커다란 휴식을 편안하게 즐긴다. 화려한 조명들로 비춰지는 강 주변은
문득 이곳에서 어떤 고백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충분히 불러일으키는 속 깊은 장치들. 밤에는 친환경 유람선을 타고 아이허 주변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데 이는 태양광 
전지의 축적된 에너지로 운행되는 배라고한다. 환경을 위해 태어났고 또 끝까지 자연을 생각하는 아이허. 서울 한강의 작은 버전이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가오슝의 환경에 대한 자세가 솔직히 더 높다.


류허 야시장六合夜市

 

류허 야시장은 가오슝에서 가장 큰 야시장이자 먹자골목으로 타이완 전체의 3대 야시장으로 꼽히곤 한다. 전형적인 먹거리 야시장으로 미려도 역과 바로 연결되니 시간을 잘
분배하면 두 곳을 이어서 다녀올 수 있다. 갖가지 수많은 타이완의 음식들은 이 길고즐겁게 혼잡한 골목에서 금세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이다. 잘 진열된
해산물과 대만 특유의 로컬 음식들, 각종 꼬치류와 국수류 그리고 대만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훠궈요리와 뱀 요리 집 등 실로 다양한 음식들이 길 양 옆으로 진을 친다.
물론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도 있지만 그다지 혐오적이지는 않고 길거리 음식들이지만 위생적으로도 크게 문제는 없다. 대만 여행을 음식 위주로 짠다면 이곳은 거의 성지.
한국인들을 위한 한글메뉴도 곳곳에서 보이니 안심이다. 문득 어디에선가 묘한 냄새가 강력하고도 스물스물 밀려온다면 그것은 백 프로 취두부의 냄새이니 일단 진정할 것.


루이펑 야시장瑞豊夜市

 

대만은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 발달해 아침과 점심, 저녁을 모두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오슝 최고의 백화점인 한신 아레나 근처에 위치한 루이펑
야시장은 관광 지구와 조금거리가 있는 탓인지 아무래도 여행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아 저녁거리를 사러 온 인파들로 류허 야시장보다 좀 더 일찍 붐빈다. 먹거리의 종류는
 류허 야시장과는 많이 달라 류허 야시장이 간식 위주의 음식으로 구성됐다면 이곳은 완전한 한 끼 식사를 위해 차려진 시장.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한국 음식점도 있어 왠지
친근하다. 루이펑이 류허와 구분되어 지는 점은 먹거리와 함께 놀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인데 유원지에서나 볼 법한 각종 게임과 오락 시설들이 한 켠에 위치해 이른바 먹고 노는
 문화로 함께 세팅되어 있다. 여행자의 입장에선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일. 먹는 예절이나 격식을 차릴 필요 없이 그저 입 안에 잔뜩 음식을 넣고 인형 뽑기라도 한 판 해볼 것.
바로 그것이 루이펑에서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