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고궁탐독
조선왕조 오백 년의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담겨 있음에도 여전히 고궁은 가깝고 또 멀다.
그래서 광화문 앞을 걸을 때면 복잡한 서울 한 가운데 고궁이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들곤 한다.
말이 없는 서울의 고궁을 돌아보는데 하루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기에 야간개장까지 꼼꼼히 꿰었다.
다시 찾은 서울의 4대 고궁탐독.
돌담길 너머, 덕 수 궁
1969년에 찍은 덕수궁의 대한문 사진을 보았다. 도로를 넓히는 공사 중 거리에 나앉은 대한문은 일년 동안이나 도로 가운데 방치되었다. 뿐만 아니라 궁내의 공원과 놀이터 공사를 진행하며 담장과 철책을 갈았다. 한때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했던 것처럼 우리의 손으로 덕수궁의 수난을 이어갔떤 것. 그러나 덕수궁의 대한문은 다행히도 다시 지금의 위치로 돌아왔고 그에 기대어 있는 돌담길을 걸으며 수많은 연인들이 사랑했고 이별했다. 본래 '정릉동행궁'이라 불리던 덕수궁은 선조가 죽고 난 뒤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창덕궁 완성 후 경운궁은 버려진 궁으로 전략하게 된다. 다시 활기를 띠게 된 것은 명성황후 시해참변 이후 고종이 머물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다시금 왕이 임하는 궁궐이 된 경운궁은 비로소 지금의 이름 덕수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의 거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아야 했던 덕수궁이지만 덕분에 서울도 꽤 걷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황실을 엿보다,
석조전 관람 & 음악회
2014년 10월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개관한 석조전은 준공 당시의 고증사진자료를 토대로 황궁의 생활사를 재현해냈다. 대한제국의 생활사와 정치, 의례, 외교는 물론 황실사의 개인적인 공간까지 관람할 수 있어 흥미롭다. 유물 보호를 위해 해당 시간마다 15명이라는 극히 제한적인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며 대한제국의 역사와 서양인이 본 대한제국, 제국의 황실가족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특별해설도 함께 들을 수 있다. 또한 매달 마지막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날'에는 석조전에서 여러 분야의 다채로운 공연이 열린다. 12월까지 계속되는 석조전 음악회는 저녁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진행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음악회와 석조전 내부 관람 모두 홈페이지( www.deoksugung.go.kr)를 통해 신청이 가능하다.
사연 많은 작은 문들, 창 경 궁
창경궁에서 일어난 왕족과 관련된 수 많은 사건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임오화변이 아닐까. 궁내 선인문 안뜰에 놓인 뒤주는 8일간 세자의 죽음을 지켜봤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훗날 창경궁에 가해진 폭력과도 같은 역사의 시작이었을까. 우울해 하던 순종황제를 위로한다는 취지 아래 시작된 동물원과 식물원 공사는 궁전의 초석까지 파헤치며 궁궐의 권위를 상실시켰다. 창경원이라는 슬픔 이름을 버리고 창경궁으로 다시 복원되기까지 약 40여 년간 이곳은 서울의 놀이터이자 꽃놀이 명소였다. 현재는 유행처럼 옮겨간 사람들의 관심 밖에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창경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걸어봐야 할 서울 고궁 중 하나다.
고궁을 알려거든, 경 복 궁
1926년, 곧 헐릴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이어지던 광화문은 무더위 속에 결국 철거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본에게 조선왕조 오백 년의 정통성과 역사적 권위를 훼손하기에 가장 적당한 일이었고 대중이 받는 충격이란 총독부 건물의 남쪽 시야를 시원하게 트이게 하는 효과보다 하찮은 것이었다. 그 후 2010년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복원사업으로 제 모습을 갖추기까지 광화문은 해체에 해체를 거듭하면서 말 그대로 '뼈아픈' 비운을 겪어내야 했다.
'이곳은 어떠한가?' 재위 3년째가 되던 해 여름 태조가 물었다. 터를 돌아보던 그의 눈빛이 확신으로 차올랐다. '이 땅의 형세는 참으로 왕도로서 모자람이 없다. 항차 뱃길이 편하고 땅이 고르며, 인사에도 편리함이 많으리라.'고 묻는 듯 대답했다. 그 후 여러 임금이 경복궁에서 왕조의 역사를 이어갔고 수많은 사연을 품은 경복궁의 규모는 점점 커져 갔다. 그리고 오늘날 경복궁은 다시 서울의 중심이자 고궁의 꽃이 되었다.
#고궁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경복궁 야간 특별 관람
경복궁이 불을 밝혔다. 야간 특별관람 행사를 추진한 이후 매번 뜨거운 호응으로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 1일 4,500명의 제한 관람으로 이루어지는 이 행사는 경복궁의 아름다운 밤을 기억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더 자세한 관련 사항은 경복궁 홈페이지( www.royalpalace.go.kr)에 안내되어 있다.
찾을 수 없는 영화, 그래도 궁이다. 경 희 궁
지금은 중요 전각 몇 채만을 간직하고 있는 경희궁의 화려했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토록 많은 전각과 정자들은 근시안적인 정책과 일제에 의해 되돌릴 수 없는 아픈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나마 신라호텔의 정문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흥화문과 서울역사박물관 앞 금천교가 그 흔적의 전부다. 한때 7만여 평의 면적에 4대문을 갖추고 수 많은 전각과 행각들로 가득 차있던 곳. 궁궐의 위엄을 드러내던 경희궁은 오늘날 현대식 건물 사이에 물러나듯 축소되어 남겨져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가장 많이 쓰이는 궁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의 화려함에 감탄하고 돌아갈 때 경희궁에서는 흩어져버린 궁의 일부를 떠올려야 했다. 사직단 뒤로 옮겨진 황학정, 조계사의 부속 건물이 되었었던 회상전, 심지어 개인 정원의 일부로 활용되던 흥정당과 광선문도 지금의 모습으로 축소되기까지의 이류를 보탰다. 아예 사라지거나 흩어져버린 궁이지만 서로를 지켜주고 있는 듯 나란히 서있는 서울역사박물관과 함께 돌아본다면 옛 모습의 영화로움을 가늠해보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겉만 봐서는 모를 서울이라면,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역사박물관은 작은 서울이자 깊은 서울이다. 다른 시간,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왔다 사라져갔던 모든 서울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서울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식으로 변해서 오늘까지 이르렀는지 알고 싶다면 서울역사박물관이 답이다. 서울을 말해주는 다양한 기증유물과 각종 체험교실, 문화행사들이 다양하게 열리고 있어 사계절 내내 흥미로운 볼거리들이 풍성하다.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