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그리운 설국
시레토코
땅이 끝나는 곳.
원주민 아이누족은 그렇게 불렀다. 일본 훗카이도 북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시레토코知床 반도. 가슴 깊은 곳에 품어왔던 설국에 대한
동경을 찾아 벅찬 마음으로 떠났다. 그리고 조금은 이른 겨울의 시작에서 설국의 끝과 마주했다.
삼일을 운전해 늦은 밤, 시레토코에 도착했다. 아침에 눈을 떠 제일 먼저 방안의 창문 커튼을 젖혔다.
보통의 아침 풍경이었지만 왠지 창문에 낀 성에마저 아름답다. 장거리 운전에 쌓인 피로는 창밖 설경에 눈 녹듯 사라진지 오래.
육지와 바다가 함께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린 특별한 곳.
난생 처음 보는 장관. 하얗게 얼어붙은 바다와 산 위를 살포시 덮고 있는 눈. 그 모습이 낯설지만,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다.
늘 언제나 저랬듯.
고요함만이 짙게 드리워진 설원.
투박한 눈길 덧신을 신고 요란스럽게 걸어보지만, 산의 정적 앞에 초라한 소음일 뿐.
길게 늘어선 발자국은 흩날리는 눈바람 속에 잊힐 운명을 기다린다.
야생 동물의 낙원 시레토코 국립공원.
시레토코 반도 중앙부에서 시레토코 곶까지의 지역과 해역 일부를 아우르는 곳.
대지에는 흰꼬리수리, 붉은 여우, 불곰과 사슴이 해역에는 향유고래, 바다표범이
관광객들보다 야생 동물을 더 많이 만난다는 소문.
우스갯소리로 넘겼지만,
얼마 후 정말로 등장한 사슴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깊어지는 근심거리, 불곰과의 조우.
하얀 옷을 갈아입은 시레토코 곶.
탁 트인 설원 앞에서 불곰과 마주칠 걱정마저 하얗게 잊었다. 땅 끝에 힘겹게 얼어붙은 후레페폭포도 이 대지와의 이별이 아쉽다.
설국의 마침표 오호츠크해─海와 유빙流氷.
태평양의 거친 파도도 얼려 버린 시레토코의 마술. 유빙 위를 걷고 있는 발끝으로 설국의 전율이 전해져온다.
이 겨울의 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