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준 선물, 팔라완 코론
또 다시 필리핀의 바다를 찾았다. 늘 멋진 추억을 안겨주는 곳이기에 여행에 대한 기대가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갈망으로 부풀었다. 팔라완의 코론Coron은 그런 여행자의 달뜬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안식과 안도의 나날을 잉태했던 바다의 선물, 코론. 그곳에서 보내온 긴 초대장.
흔히 팔라완을 필리핀에 남은 마지막 비경이라고 얘기한다. 태고의 생태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어 때묻지 않은 원시 자연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팔라완은 이미 소문난 여행지이다. 주도인 푸에르토프린세사와 고급 허니문 리조트로 유명한 엘니도, 다이버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코론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코론은 그런 팔라완에서 막내와 같았다. 아직은 순박하고 귀여워, 풉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고 괜히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는 그런 감성이 스멀스멀 샘솟아났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바다 여행의 모든 즐거움과 행복이 코론 안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코론에 숨겨진
다섯가지 비밀
흔히 떠올리는 필리핀의 아름다운 휴양지라고만 하기에 코론은 좀 아쉽다. 하나가 보이면 또 다른 하나가 나타나고, 새로움이 느껴지면 오래된 것들이 주위를 맴돈다. 코론은 그 모든 것들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낌없이 꺼내놓은 비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1.바닷속 신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10여 대 이상의 일본 함정들이 코론 인근 해역에 침몰했다. 산호초로 둘러싸여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난파선들은 오늘날 코론을 세계적인 다이빙의 성지로 만들었다. 곳곳에서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하며 갖가지 바다 동물과 식물로 가득한 신비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2.미지의 세계
필리핀인 듯, 필리핀이 아닌 듯. 코론은 종종 이색적인 풍경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인다. 마치 아프리카에 와있는 것 같은 야생동물 보호구역, 바다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호수와 맹그로브 숲 속의 소금 온천 그리고 기이한 암석들이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산을 이루고 선 절경까지. 필리핀에서도 가장 먼 미지의 세계를 선사한다.
3.아날로그 감성
코론의 관문인 부수앙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우리에겐 낯선 풍경들이 정겹게 펼쳐진다. 프로펠러 비행기, 색색깔 우산을 들고 활주로를 걸어가는 승객들, 사람들이 직접 짐 찾는 곳까지 운반해주는 캐리어, 무게를 재는 바늘 달린 저울까지. 공항을 빠져나와도 마찬가지다. 거리에서도 시장에서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감성들이 끊임없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4.일상으로의 초대
코론의 중심인 코론 타운Coron Town은 번잡하지만 유난스럽지 않다.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여행지의 풍경이 따로 떨어지지 않아서이다. 작은 바닷가 마을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필리핀이나 글로벌 유명 프랜차이즈의 간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유명 여행지가 아닌, 코론만의 보통의 삶 속으로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초대한다.
5.맛과 멋 그리고 서비스 마인드
코론의 숙박시설들은 여느 유명 휴양지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른느낌이다. 대형이라는 느낌이 빠져버린,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진 중·소형의 숙박시설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코론의 멋과 맛이 담겨져 있어 왠지 궁금하고 또 반갑다. 어디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는 모든 스텝들의 서비스 정신은 따뜻한 베풂으로 이어져 더욱 아늑하고 맛있는 휴식을 보장한다.
마퀴닛 온천
코론 타운에서 자동차를 타고 약 20~30분 정도 비포장도로를 달리자 바닷속 온천이 나타났다. 입구에서 바라본 노천탕 주변은 맹그로브 숲으로 우거져있고, 그 너머로 넓은 바다가 펼쳐진 전혀 뜻밖의 모습이다. 예상치 못했던 이 조합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이내 신비롭기까지 한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며 온천이 이곳에 어떻게 생길 수 있었는지 한참을 궁금해 하다 노천탕에 몸을 담갔다. 깜짝 놀랄 정도로 뜨거운 온천수, 호기심에 그 맛을 보니 바닷물의 짠맛이 그대로 전해져 더욱 흥미롭다. 무더운 날씨에 즐기는 온천욕이지만 이열치열을 즐기는 한국인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코론의 이색코스. 매일저녁 하루 일정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곳이 되었다.
퍼블릭마켓
어느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이지만 현지인들의 일상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코론에서도 역시시장이다. 코론 타운의 선착장과 지프니 정류장 옆에 퍼블릭 마켓이 자리 잡고 있다. 길게 늘어선 트라이시클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한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어릴적 엄마 손을 잡고 따라다니던 재래시장이 떠올랐다. 현대화된 우리의 마트나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들이 줄을 지어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주인장이 직접 만든 게 분명한 파리 퇴치기들. 매대 위에 가득한 생선과 고기를 사수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상인이 손으로 기다란 파리채를 들고 연신 휘두르는 가게도 있고 가느다란 기계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한가로이 돌아가는 가게도 있다. 마치 파리 퇴치기에 따라 가게의 수준이 결정되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 재미있어 더욱 꼼꼼하게 시장을 둘러봤다. 어디라도 그러하듯, 풍성한 먹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흥미로운 물건과 사람들이 환환 미소를 만드는 곳, 코론 퍼블릭 마켓이다.
타피아스 산 트레킹
코론 앞바다의 수평선 위로 조금씩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타피아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에 하얀 CORON 이라는 글자와 커다란 십자가가 서 있는 그곳은 코론 타운의 정상. 코론 타운에서 바라보면 어디서든 훤히 보여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무척 궁금했던 곳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언덕처럼 보이지만 72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중간 중간의 평지까지 포함해 약 1,000개의 발자국이 필요한 길이다. 해가 내려앉으며 어둠이 조금씩 짙어지는 시간, 발걸음은 갈수록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바빠졌고 기대는 점점 커져갔다. 그렇게 도착한 정상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펜스 앞을 차지하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하늘이 검붉어질수록 사람들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났다. 하늘과 바다, 구름과 섬, 그 모든 것들이 어지러운 듯 화려하게 그리고 거창하지만 고요하게 한 장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붉고 검은 빛이 영그는 파란 하늘과 바다, 그 모든 풍경을 코론의 아담한 마을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숨어있는 코론과의 조우
코론 타운은 실제로 코론 섬이 아닌 공항이 위치한 부수앙가 섬Busuanga island에 자리 잡고 있다. 코론 섬은 코론 타운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작은 섬으로, 코론 아일랜드 투어는 누구도 빼놓지 않는 필수 코스다. 코론 타운에서 방카를 타고 아침 일찍 떠나 보트맨들이 이끄는 대로 온종일 코론 섬을 누볐다. 기암절벽들 사이에서 저마다의 경이로운 모습으로 숨어있는 라군Lagoon과 해변, 그리고 바다 속 비경들은 코론의 오래된 진실과 마주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일행을 태운 방카는 서서히 코론 섬으로 흘러들었다. 10여 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위를 둘러싼 세상은 몰라보게 변해버렸다. 좁아진 바닷길은 잔잔한 호수로 모습을 바꿨고, 호수를 둘러싼 웅장한 절벽들은 자신들의 틈사이로 고요한 천국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천국을 즐겼다. 차분히 앉아 눈과 가슴에 천국의 모습을 담는 사람들, 재빠르게 물속으로 뛰어들어 또 다른 세상을 탐닉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살피며 자신들의 세상에 온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 천국은 오직 한 곳만이 아니었다. 방카가 있는 곳이 모두 천국이었다. 호수의 크기와 물의 색과 절벽의 높이와 모양만이 다를 뿐이었다. 때로는 바다로 나가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에 머물렀다.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잠시 낮잠을 청하는 순간에도 모든 곳이 여행자들에게는 같은 이름이었다. 물 위에서도 물속에서도 그리고 해변에서도, 천국이라는 이름은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