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난 산야 여행
하이난 여행의 중심 '산야'
하이난은 크게 북쪽의 하이커우와 남쪽의 산야로 구분된다. 두 곳 모두 국제공항을 갖고 있는 큰 도시들이자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한 곳들이다. 하지만 국내에 소개된 하이난 여행지들은 대부분 하이난 최남단의 산야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산야베이, 대동해, 야롱베이와 같은 아름다운 해변들, 오랜 중국의 문화와 하이난의 전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다양한 문화유산들 그리고 오늘날 하이난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현장들이 조화를 이뤄 뜻밖에도 볼거리가 많은 관광도시이다. 이 여름 산야 여행을 하는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단연 숨 막히는 무더위를 꼽을 수 있다. 때문에 리조트에 머물며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여유롭게 한 군데씩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면 리조트 차량이나 택시를 빌려 하루쯤 이곳저곳 둘러보는 것도 방법. 아무리 매력적인 여행지도 온 몸을 파고드는 땡볕 아래에서는 짜증스러운 곳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 잊지 말자
하이난에는 내가 있다. 오지주도
리조트에 머물며 가보고 싶은 곳 몇 군데의 이름을 골랐다. 세 곳을 추려 리조트에 있는 현지 여행 전문가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가장 먼저 꼽은 곳은 오지주도. 휴양지에서 또 다른 휴양지를 보러 간다는 것이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상기된 그녀의 표정에서 뭔지 모를 진심과 확신이 보였다. 강력한 햇볕이 내리쬐는 아침, 큰 맘 먹고 길을 나섰다. 오지주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선착장 안은 뜻밖에도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미 다녀온 다른 여행지 풍경과는 달리 젊은 남녀의 모습이 유독 많이 보이는 점은 특이하기까지 했다. 쾌속선이 데려다준 오지주도는 첫인상부터 어딘지 다른 모습. 어두웠던 사진을 보정이라도 한 것 마냥 갑자기 시야의 모든 것이 밝아졌다. 에메랄드빛 바닷물도 하얀 모래사장도 파란 하늘도 그리고 사람들도.
오지주도 선착장을 빠져나오면서 바다 위에 놓인 누각과 그 누각을 이어주는 다리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다. 내가 중국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 모습에 이끌려 방향을 잡았다. 다리의 입구는 오지주도에서 가장 뜨거운 곳. 태양이 아닌 사랑에 의해. 키스를 하는 남녀의 조각상 앞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연인들. 그런 황홀한 키스의 순간을 기약하며 오늘을 남기는 이들의 함박웃음. 여행 내내 쫓아다니던 더위를 잊고 이 섬을 돌아볼 수 있는 기운이 샘솟아 오르는 묘한 곳이 되어준 곳, 정인교情人校
해변으로 내려왔다. 바다와 모래사장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져가고 있는 현장의 발견. 한없이 투명한 바닷물과 해를 머금어 더욱 짙은 하얀색이 되어버린 모래사장이 만나는 지점은 블루도 아닌 화이트도 아닌 내 머리가 알지 못하던 색이었다. 오지주도는 섬 안의 모든 사랑의 기운을 모아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그곳에 연인이, 친구들이 그리고 가족의 따스한 가슴이 새겨져 있다.
입장료 1인 152위안(쾌속선 포함)
산야 최고의 해변, 야롱베이
산야베이, 대동해, 하이탕베이 그리고 야롱베이는 산야를 대표하는 해안지역들이다. 모두 아름다운 해변을 갖고 있고 세계적인 리조트와 다양한 볼거리, 상업시설들이 들어서 저마다의 특징들을 갖추고 있지만 하이난 사람들은 그래도 바다는 야롱베이가 최고라고 얘기한다. 그 이유가 궁금해 야롱베이의 해변을 찾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 택시 기사가 내려준 곳은 ‘Yalong bay underwater world’ 앞. 우리네 여름 해수욕장 입구의 분위기와 거의 흡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갈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진짜 해수욕장에 왔구나하는 생각에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든다. 리조트 앞의 해변과는 완연하게 다른 풍경. 북적북적한 해안가에는 작은 식당과 기념품 가게, 음료와 빙수를 파는 노점 등이 늘어섰다. 바비큐를 해먹을만한 꼬치와 길거리 음식들을 파는 가게의 호객꾼들이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식당 곳곳에는 음식과 맥주를 앞에 두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화기애애하다. 드넓은 바다에는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이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하얀 물보라를 만들어내고 하늘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탄 사람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즐기며 해변을 걷다가 배를 타고 바다를 구경하는데 10위안이라는 안내판을 발견했다. 바다에 떠있는 선착장으로 가는 다리 입구에서 10위안을 내고 다리를 건넜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또 다른 안내원은 나를 선착장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자신의 앞에 있는 벤치에 앉으라고 했다. 배는 오지 않았고 나는 그 안내원과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대화를 나누다 그가 시작한 필담으로 모든 이유를 알게 됐다. 10위안은 그저 다리를 건너는 비용이었던 것.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나와 그는 박장대소를 하며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을 찍었다. 야롱베이는 나에게 그렇게 남았다. 현지인들의 따스한 정이 있는 곳, 그래서 어느 곳 보다 더 아름다운 곳, 바로 야롱베이다.
밤의 낭만, 대동해
해가 어수룩해지는 시간 대동해로 향했다. 이름난 해변 중 하나라는 사실이 무색하지 않게 늦은 시간에도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길게 뻗은 해변의 카페와 레스토랑은 크고 작은 조명을 켜고 손님을 맞을 테이블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쯤에서 저녁을 먹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선 인근의 쇼핑몰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쯤 지나 밖으로 나오자 어둠은 이미 짙게 깔려있었다.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려는 길, 가까운 곳에서 흥겨운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작정 그 소리를 따라 간 곳은 그리 크지 않은 광장.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음악에 맞춰 스텝을 옮기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고 있었다. 오래 전 상해에서 봤던 비슷한 광경이지만 좀 더 로맨틱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곳이 휴양지의 해변 앞이어서일까.
사람이 그리울 땐, 야시장 탐방
리조트에 머무르며 마음껏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다 보면 문득 그리워지는 것이 있다. 복작복작한 곳이 그립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마구 떠들고 싶은 맘도 간절해진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그럴 때 가장 좋은 곳이 재래시장 아닐까. 하이난에서는 특히 더위가 한풀 꺾인 밤에 돌아보는 야시장이 더욱 좋은 것 같다.
제일 먼저 길거리 음식부터 맛을 봤다. 굴과 조개에 각종 양념을 얹어 불에 구워주는 그 음식은 야시장을 찾아낸 것만큼이나 만족스러운 맛. 꽤 큰 규모의 이 시장에 없는 것은 없었다. 잘만하면 좋은 물건을 아주 저렴하게 얻어갈 수도 있겠지만 흥정을 위한 언어 능력이 부족할 뿐. 그럼에도 두리안과 열대과일을 좋은 가격에 사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저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마음속에 피어나던 그리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산야의 오래된 사랑이야기, 송성가무쇼
세계 3대 쇼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의 송성가무쇼. 중국 사람이라면 평생 한 번은 봐야한다는 그 쇼를 오래 전 항저우에서 본 적이 있다. 한 마디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가슴은 뛰고 있었던 그 쇼를 하이난의 산야에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같은 레퍼토리로 구성된 쇼는 아니다. 송나라를 배경으로 산야의 역사가 담긴 극의 스토리에 따라 연출된 완전히 다른 쇼나 마찬가지다. 무려 4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무대. 산야에 와서 보지 않고 간다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한 시간의 공연. 무대는 항저우의 그것에 못지않게 화려했고 극의 중간중간 어디서, 어떻게, 어떤 것이 나타날지 모르는 특유의 짜릿한 이벤트와 기묘하기까지 한 볼거리들은 업그레이드된 쇼를 선물해 주었다. 중국 특유의 웅장한 스케일은 이런 공연에 대한 목마름을 남겨줄 것이 분명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이 비싼 하이난 여행 중 단 한 가지 비싸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송성가무쇼, 이것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입장료 1인 260위안일반석
공연시간 오후 4시, 8시1일 2회 공연
세상에서 가장 큰 면세점, CDF
하이난의 많은 리조트들이 면세점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China Duty Free’라는 이름의 이 면세점은 하이탕베이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면세점이라고 한다. 습기가 극에 달한 오후 리조트의 셔틀버스를 타고 면세점을 찾았다. 특별히 살 것도 없고 쇼핑에도 그다지 관심은 없지만 리조트에서 맞는 오후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곳도 없을 것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바라본 CDF의 전경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곡선미가 넘쳐흐르는 정면의 디자인은 마치 새롭게 문을 연 공항을 연상시킬 정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말이 피부 깊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3층 높이에 A동, B동으로 구분되어진 이 면세점에 입점한 브랜드는 대체 몇 개나 될까. 대략 20여 개의 제품군에 300여 개의 세계적인 명품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쇼핑만을 위한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점들, 오락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문화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 등도 함께 조성되어 있다. 하지만 가장 관심 깊게 본 것은 면세점 건물 자체였다.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두 눈을 자극하는 이 건물의 건축학적 묘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특히 외부 중앙광장의 풍경은 새로운 우주 안에 들어온 것 같은 특별한 멋을 뿜어냈다. 과감하게 비워버린 중앙광장과 과감하게 열어놓은 광장의 천장은 중국이라는 이름의 위상을 좀 더 높이 바라보게 만드는 그들만의 자신감으로 비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