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에 멈춘 시간, 온타리오
온타리오의 호수와 시간은 정직하게 흘렀다. 젓는 만큼 나아가면 갈수록 깊어졌다. 멈출 수 없어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깊어질수록 애틋해졌다.
캐나다 남동쪽에 위치한 온타리오는 호수의 주(州)다. 미국과도 국경을 접하고 있는 오대호(Great Lakes, 슈피리어호·미시간호·휴런호·이리호·온타리오호)를 비롯해 크고 작은 수많은 호수들을 끼고 있다. 주도인 토론토를 시작으로 휴런호에 맞닿은 조지아만(Georgian Bay)을 따라 돌았다.
너에게 가져온 캐나다
고작 기념품 하나로 계산적으로 굴고 말았다. 시럽 1L를 만들려면 40L의 단풍나무 수액이 필요하고, 단풍나무 한 그루가 1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수액이 4L 정도라면, 열 그루의 단풍나무를 1년간 짜내야만 1L의 메이플 시럽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그중 50ml를 너에게 가져왔노라. “그러니까 이 한 병에 단풍나무 한 그루의 반년이 농축돼 있는 거지.” 그러니까 팬케이크보다는 부디 창의적으로 먹어 달라. 단풍놀이를 다녀온 것도 아니었다만 H(요리보다 여행을 좋아한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 정작 이런 기억들이었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나란히 쓰인 표지판, 걷는 발마다 퐁퐁 샘솟던 자유 같은 것들. 국기에서도 캐나다의 소수는 확실히 존중받고 있었다. 17세기 초 정착한 프랑스인들의 지배를 받던 캐나다는 18세기 프랑스와 영국간의 7년 전쟁으로 영국령이 됐고, 국기에는 한동안 유니언기(Union Flag, 영국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독립 후 프랑스계 국민들의 반발 끝에 1964년 당시 총리였던 레스터 피어슨은 전 국민 대상 국기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누구에게나 캐나다인 단풍잎기(The Maple Leaf Flag)가 채택됐다.
전 세계 메이플 시럽의 70~80%이 날 정도로 캐나다에는 단풍나무가 많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닐 거라고. 단풍잎 모양의 시럽 병을 두고 H에게 지난 여행을 막 토해 내던 참이었다. 1년 내내는 아니고 사실 단풍나무 수액 채취는 3~4월에 몰아 한다고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세상 대부분의 공식들처럼, 여행에 대한 기억 또한 ‘평균’에 수렴한다는 걸 몰라 줄 리 만무한 그에게. 행여 깨질까 톡톡한 스웨터에 말아 가져온 공을 알아주길 바랄 뿐더러, 입에 단데 몸에 좋기까지 한 걸 마다할 이유가 우리 사이에는 없었다.
Toronto 토론토
쿰쿰한 망상들의 출처
자전거와 강아지는 토론토가 살기에 꽤 괜찮은 도시라 판단하게 된 두 가지 이유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강아지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세인트 로렌스 마켓(St. Lawrence Market)으로 가는 길, 맞은편 버지 공원(Berczy Park)에서 목격한 그것은 다름 아닌 강아지 분수다. 강아지 26마리와 고양이 1마리가 분수 위에 있는 단 하나의 뼈다귀를 쳐다보고 있는 애처로운 형상이라니. 물가에서 신이 난 강아지를 곁에 두고 피크닉처럼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결국엔 결정적이라 해야겠지. 견주도 아니며 자전거도 서툰 내가 토론토에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 진짜 이유. 세인트 로렌스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은 토론토에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했다. 로브스터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버거며, 세계 각국 스트리트 푸드가, 온갖 신선한 과일과 해산물과 채소들이 현란하게 늘어서 있다. 200년을 넘겼다는 마켓의 역사처럼 끈덕지게 퍼지는 냄새의 출처는 치즈 가게 집중 구역. 쿵파오 치킨과 샐러드 한 박스, 수박 한 컵에 손이 동났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숙소에 쟁여 놓은 화이트와인이 아무래도 어른댔다. 이 한 덩이 더한다고 뭐 그리 달라질까, 어깨에 멘 에코백에 결국 치즈 세 덩이를 욱여넣었다. 마켓 앞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야 손은 가벼워지고 배는 채워지는데 이 녀석, 어떻게 알고는. 저녁에 개봉 예정인 브리 치즈가 유난히 쿰쿰하게도 올라왔다. 함께이고 싶다는 건 그만큼 깊어졌다는 뜻이겠으나 그 깊이가 지난 시간과 꼭 비례하란 법은 없다. 치즈와 화이트 와인, 강아지나 자전거, 어쩌면 이곳에 온 순간부터 비롯된 망상일지 몰랐다.
보이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도시
누누는 어쩌다 토론토에 왔다고 했다. 여동생의 레스토랑 일을 돕고자 에티오피아에서 날아온 그녀는 크리스를 만났다. 캐나다인 크리스(Chris)와 에티오피아인 누누(Nunu) 부부는 부나 더 소울 오브 커피(Bu’na The Soul of Coffee)에서 커피를 내린다. 머신에 기대지 않고 오직 손으로, 에티오피아 원두를, 제베나(주전자처럼 생긴 에티오피아 전통 커피 팟)와 시니(커피 잔)를 사용해서.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축복을 받는 과정과 같아요. 그 문화를 토론토에 전하는 것이 목표죠.”
씁쓸함 끝에 정착한 맛은 고소한 축복일지도. 토론토에 늘 따라붙는 ‘이민자의 도시’라는 수식어는 누누와 크리스를 떠나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카페가 위치한 퀸 스트리트 웨스트(Queen Street West)는 토론토 다운타운에서도 특히나 하나로 몰기가 어려웠다. 이탈리아, 중국, 아프리카, 지중해 등 보이는 레스토랑
간판만 봐도. 게다가 보이는 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다. 토론토에서 가장 유서 깊은 호텔(Gladstone Hotel)에서 묵지 않아도 전시를 보고 기념품 가게(Craft Ontario Shop)는 딱히 살 게 없지만 갤러리처럼 드나드는 식, 한마디로 멀티다. 이 모든 걸 표현한 누군가의 문장이 멋져서 그대로 빌자면 ‘Easy Access to Creative Toronto’. 언제라도 올 수 있을 것 같고 그게 언제든 토론토일 것 같다.
Blue Mountains 블루 마운틴
스키 리조트에는 눈이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까워지고 있었다. 호수, 정확히는 만(灣)으로. 조지아만(Georgian Bay)은 캐나다와 미국이 나란히 나눠 가진 휴런호(Lake Huron) 중에서도 캐나다 쪽에 맞닿아 있다. 둥그런 가장자리를 탄 호수 풍경만으로 휴양지가 되기에 족할 텐데, 토론토에서 차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s)에는 대형 리조트가 여럿 들어섰다.
리조트에 도착한 순간 캐리어에 든 옷들이 무용지물이 됐음을 실감했다. 먼 캐나다라도 여름일 줄만 알았고 나이아가라까지는 당연히 고려하지도 않았으니. 호수만큼이나 ‘마운틴’의 스케일이 어마어마했다. 미국 뉴욕에서부터 캐나다 온타리오를 거쳐 미시간, 위스콘신, 일리노이를 잇는 절벽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 지역… 등등이 블루 마운틴이 끼고 있는 나이아가라 이스카프먼트(Niagara Escarpment)의 방대한 정의다. 덕분에 블루 마운틴이 얻은 실용적인 정의는 ‘사계절 리조트 마을’. 스키 로프, 프라이빗 비치, 롤러코스터와 집라인 등 자연 속에서 즐거운 것들이 잔뜩 모였다.
두꺼운 옷을 챙겼다면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눈이 있을 수는 없는 계절이었으므로. 스키가 목적도 아니었을 뿐더러 어떤 목적을 운운하려는 목적지도 아니었다. 그 후 며칠간은, 숲을 통째로 마시는 것 같은 마운틴 코스터(Lidge Runner Mountain Coaster)를 탈 때만이 유일하게 가슴 쫄깃해지는 순간인 날들이 이어졌다. 주변에 괜찮은 양조장이 있다는 소식을 입수하기 전까지.
취하지도 않고 홀렸다
그렇게 쏘아 붙일 땐 언제고 마지막이 아닐 것처럼 구는 건 또 뭐람. 달달한 여운 탓인지 쌀쌀한 기온 탓인지 테이스팅을 빙자해 연거푸 스파클링 와인을 비워 냈다. “여름에는 호수 주변 공기가 육지 주변보다 덜 데워져 선선하고, 겨울에는 호수의 온도가 육지보다 천천히 내려가요.” 조지아만이 왜 과일 재배에 유리한지에 대해서라면, 블루 마운틴에서 와인과 사이더를 모두 제조해 온 조지안 힐즈(Georgian Hills Vineyards)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서리 피해를 입을 위험이 그만큼 적죠. 나이아가라 이스카프먼트는 따뜻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둬 주는 역할을 해요.” 온화한 기후를 좋아하는 포도와 사과는 호수를 온돌 삼아 절벽을 병풍 삼아, 덥지도 춥지도 않게 무난히 자랄 수 있다.
열매는커녕 꽃도 제대로 피우지 않은 작은 봉우리에 불과했지만. TK 페리 오차드 & 애플 마켓(TK Ferri Orchards & Apple Market)에는 약 5만8,000그루에 달하는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1930년대부터 내려온 가업을 물려받은 톰(Tom)은 아내 카렌(Caren)과 함께 농장과 양조장을 운영 중이다. “사과의 품종은 생각보다 다양해요. 향과 즙의 정도, 산도 등에 따라 용도도 달라지고요.” 그중에서도 TK 페리 오차드의 이름을 붙인 시그니처 품종만을 선별해 애플 사이더를 만든다. “할아버지 때부터 전해진 특별한 착즙 방식과 양조 비법이야말로 시그니처라 할 수 있죠.” 카렌의 머리칼과 비슷한 색을 띤 ‘할아버지 잭의 애플 사이더(Grandad Jack’s Apple Cider)’가 혀끝에 톡, 하고 튀어 오른다. 이하 보다 객관적인 정보로 맛 평가를 덧붙인다면 유혹. 사과꽃말이다.
Midland 미들랜드
시간에도 냄새가 배었다
때는 17세기. 프랑스 탐험가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이 개척하기 전 캐나다에는 주인이 있었다. 캐나다 원주민 중 한 갈래인 휴런족(Huron Wendat, 프랑스인들은 웬다트라 불렀다)은 주로 세인트로렌스강 주변에서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살았다. 식민지 개척 이후 캐나다로 건너온 프랑스인들은 휴런족과의 교섭을 시도했고, 적대 관계에 있던 이로쿼이족(Iroquois)의 세력을 막아 주는 조건으로 휴런족은 이들과의 공존을 택했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모피를 보루로 거래를 했다. 장소는 캄캄한 움집 안. 모닥불 앞에서 들은 이야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쉽게 말해 민속촌 같은 곳이지만 “장소와 복장만 따라한 게 아닙니다. 당시의 경험을 치열하게 재현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 눈빛이 그만큼 치열했다. 1639년 처음 온타리오주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은 휴런족 선교를 목적으로 세인트 마리 어몽 더 휴런(Saint-Marie among the Hurons)이라는 커뮤니티를 세웠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649년 이로쿼이족의 공격을 받은 휴런족이 떠난 후 300여 년간 방치됐던 마을은 고고학 연구 끝에 복원됐다. 완벽한 구현은 살아 있을 때 실현된다. 그 옛날 그때처럼, 돌을 두드리는 대장장이와 곡식을 심는 농부와 미사를 여는 성직자가 이곳에 살고 있다.
‘눈, 코, 입, 귀, 피부로, 모든 감각으로 시간을 느껴 보라’던 중세인의 안내는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따를 수 있었다. 구수한 빵 냄새만으로. “휴런족의 주식은 옥수수였어요. 주로 빵을 만들어 먹었죠.” 상상했던 것보다 폭신했던 콘브레드에는 “이스트와 설탕을 좀 넣긴 했으니까요(웃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팽팽하게. 천장 틈새로 피어오르는 연기에 햇빛이 파고들었다. 장작 타는 냄새가 싫지 않을 정도로만 코를 타고 들어왔다.
Muskoka 무스코카 & Algonquin 알곤퀸
화려한 시절의 항해
언젠가 캐나다의 한 기자는 ‘캐나다에서는 사람과 어울리려면 집으로 가고 혼자 있고 싶을 땐 밖으로 나간다’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캐나다의 인구밀도*는 1km2당 4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러시아의 인구밀도는 9명, 미국은 34명, 중국은 145명이다. 517명이라는 한국의 밀도에 실감은 배가된다.
무스코카에서 가장 먼저 와 닿는 건 사람보다도 훨씬 빽빽한 나무들이었다. 1,600여 개 호수를 가진 무스코카가 마냥 야생으로만 남지 않은 데는 알렉산더(Alexander Peter Cockburn, 1837~1905년)의 존재가 컸다. 온타리오주 의회의 초대 멤버였던 그는 1865년 가을 친구들과 무스코카를 찾았고 이후 정부의 지원을 끌어 도로와 운하 건설을 추진할 정도로 아주 푹 빠졌다. 그는 급기야 무스코카 내비게이션 컴퍼니(Muskoka Navigation Company)라는 선사를 세워 북미 최초로 호수에 대규모 증기선을 띄웠다. 무스코카는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의 별장지로 떠올랐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과 28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그 시절 항해에 가담했던 라인업이 빵빵하다. ‘왕년’을 들먹이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힘이 없는 것과는 달리 무스코카는 여전히 캐나다 사람들 사이에서 ‘럭셔리 여행지’로 통하고 있다. 셀러브리티가 아니라도 우아하게. 하이웨이 11을 타는 동안 나무의 밀도는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없다. 한적함이 좋았지만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한 기대 또한 없지 않았다.
**각 국가의 공식 인구통계 사이트를 참고했다. 러시아는 2018년 기준, 다른 국가는 모두 2019년 기준으로 집계됐다.
크리스마스 같았던 날
알곤퀸 공원(Algonquin Park)의 한 작은 오두막에서는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집에 비해 제법 큰 테이블에 음식이 하나둘 오르기 시작했다. “Oh! Sweet Canada~” 창밖에서 들려오는 짹짹 소리를 해석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방식이 신박하다. 늘 먹던 치킨이 유별나게 부드럽고 단단한 감자가 참 잘도 으깨졌고 와이파이는 터지지 않았다. 오붓하다 못해 고소하기까지 하다. 낮잠 대신 카누를 택한 건 마냥 게을러지기에 아까운 자연이었기 때문이다. 알곤퀸 공원이 캠핑뿐 아니라 카누와 하이킹 장소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에는 어떤 이견도 있을 수 없었다. 난생 처음 타 본 카누는 정확하게 고통과 아름다움을 맞바꾸는 행위랄까. 요령 없는 팔은 욱신대는데 호수는 갈수록 비경인 것이다. 느리고 서툴러도 멈출 수 없었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결국에 정박한 곳은 또다시 오두막, 이번엔 블루베이 파이와 허브티. 나른한 테이블 위에 오른 주제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저은 만큼 아름다워진 우리는 칼로리를 다시 채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떠나온 만큼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여행 후에 돌아올 일상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기만 하는 이들의 존재에 안도할 뿐이었다. 자꾸만 빈 잔을 채워 내던 주인아주머니처럼 자연은 그렇게 살갑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