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감성여행

[ 관광지 ] 인천 굴업도 어드벤처 판타지 백패킹

인천 굴업도
어드벤처 판타지 백패킹

은하수가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잠이 들고, 야생사슴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모험 가득한 하루가 펼쳐진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발걸음을 맞추어 걷고, 서서히 떨어지는 태양빛에 억새와 수크령이 일렁이는 모습을 가믄하 바라보는 평화로운 시간까지. 이 모든 낭만의 순간을 인천 굴업도에서 마주했다. 겨울이 깊어지면 엄마 품처럼 깊고 포근한 여행이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 학교나 교회 수련회, 걸스카우트와 보이스카우트로 캠핑을 떠났을 때처럼 두 손으로 직접 텐트를 치고, 코펠에서 익어가는 밥 냄새에 침을 꼴깍이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숟가락을 들고 기다리는 그런 여행. 침낭 속에 누워 밤이 깊도록 친구들과 수선스럽게 이야기 나누다 잠이 들어 코끝에 닿는 차가운 아침 공기에 눈을 뜨고,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처럼 정겹고 따뜻한 여행말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 순간, 배낭을 꾸렸다. 배낭을 메고 오롯이 내 두 발과 의지로 몰랐던 세상을 찾아나서고 싶었다. 호젓한 겨울바다도 보고 따뜻한 숲의 온기도 느낄 수 있는 곳. 인천 앞바다에 모인 수많은 섬들 중 이 모든 감성을 채워줄 굴업도로 떠났다. 굴업도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알던 섬이었는데, 대기업의 골프장 건설계획으로 환경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세상과 단절됐던 원시의 섬은 어떤 모습일까.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를 지나 소나무 숲길을 헤치고 해안 언덕을 거닐다, 풀을 뜯는 야생사슴 옆에 앉아 도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험의 세계. 개머리언덕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텐트 안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새까만 밤하늘을 빼곡하게 채운 노오란 별빛 아래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는 낭만의 시간. 백패킹 감성으로 가득 채운 인천 굴업도에서 보낸 하룻밤.

원시 섬과의 만남

SUV 차량 트렁크에 짐을 싣고 캠핑장으로 이동해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자는 오토캠핑도 좋지만, 배낭 하나 짊어지고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걸으면 되는 백패킹이야말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특별한 여행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 연안부두여객터미널에서 배로 1시간 10분, 다시 덕적도에서 배를 타고 2시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인천시 옹진군에 위치한 굴업도는 한겨울의 판타지 어드벤처를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다. 굴업도와 덕적도를 비롯해 8개 유인도와 34개 무인도가 모여 있는 인천 앞바다 덕적군도에서도 배편으로 가장 먼 곳에 있는 굴업도는 그 만큼 인간의 발길이 뜸했던 곳이다. 그덕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도 불리는 섬. 굴업도의 면적은 여의도 절반 정도의 크기이지만 그 작은 품안에 백사장, 갯벌, 해안사구, 주상절리, 초원, 숲, 습지 등을 모두 품고 있다. 우리나라 유인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섬이면서 특히 섬 전체가 해발고도 100m 이내의 구릉으로 이뤄져 있어 초보자들도 백패킹을 하기에 좋아 ‘백패커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백패킹을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이 많다. 

하룻밤을 보낼 2인용 텐트와 1인용 침낭, 아늑한 여행은 아니더라도 잠을 자기 위해 바닥에 까는 것이 좋은 매트와 물을 끓일 버너, 코펠, 간단한 식량, 어두운 밤을 밝힐 랜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을 65L 배낭까지 최소한의 것들만 준비해도 배낭 무게가 10kg을 넘는다. 거의 쌀 한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50분~1시간 정도는 굴업도 언덕을 올라야하기 때문에 백패킹을 떠나기 1주일 전부터 스쿼트와 달리기 등 기본적인 운동으로 몸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또한 무게를 분산시킬 수 있는 등산스틱을 갖추는 것도 추천한다. 고작 하룻밤 떠나는 여행일지라도 백패킹이 처음이라면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안전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오전 5시, 덕적도로 가는 오전 8시 배편을 타기 위해 인천 연안부두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연안부두여객터미널은 배를 타려는 여행객들로 분주했다. 집 떠난 지 7시간, 배를 탄지 4시간 만인 오후 12시에 굴업도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서둘러 짐을 챙겨 배 밖으로 나오자 도심에선 볼 수 없었던, 말 그대로 때 묻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굴업 선착장에는 트럭과 경운기가 미리 마중 나와 있다. 민박집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나온 것인데, 민박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자리가 있다면 얻어 탈 수 있다. 도보로 20분 정도면 마을에 도착하니 배 멀미도 가라앉힐 겸 걸어도 좋다. 굴업도는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섬이다. 대부분 민박을 하는데 고씨네민박, 장할머니민박, 서전이장님민박 등 7개의 민박집이 있다. 민박집에서 맥주, 음료, 라면, 가스 등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거나 식사를 할 수 있다. 마을 앞으로 소나무 숲이 있고, 그 뒤로 고운 백사장의 큰말해수욕장이 펼쳐진 모습이 평화롭다. 굴업도도 식후경, 소나무 숲 벤치에 자리를 잡고 버너에 불을 붙였다. 보글보글 라면이 끓어오르니 사방이 맛있는 냄새로 진동했다. 침이 꼴깍 넘어가고 너 나할 것 없이 라면에 집중하는 상황. 굴업도에서의 판타지한 하루가 시작됐다.

해변, 숲길, 일몰,
그리고 별이 쏟아지는 밤

큰말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해변이 끝나는 곳에 뜬금없는 문이 하나 나타난다. 굴업도의 절경이 펼쳐지는 곳, 바람이 많이 불어 '폭풍의 언덕'으로 불리는 개머리언덕으로 통하는 문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10분 정도 가파른 비탈길로된 산을 타야해서 ‘천국으로 가는 지옥문’이라는 애칭까지 붙었다. 백사장 끝자락에서 바위를 올라 문을 통과하면 키 작고 억센 소사나무 군락을 지나 소나무 숲속을 마주하게 된다. 파도 소리에 위안을 삼으며 앞만 보고 숲을 헤치며 걸은 지 10여 분이 흐르자 눈앞에 불쑥 드넓은 초지가 나타났다. 뒤를 돌아보니 마을보다 훨씬 넓은 큰말해변과 오른쪽 귀퉁이에 토끼섬이 한눈에 들어왔다.1km 정도 이어진 능선을 따라 양쪽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바다에서 시작한 바람은 경사면을 따라 끊임없이 불어왔다. 나무가 없는 초지는 억새와 수크령이 차지했다. 수크령 수염 사이로 파고든 햇살이 바람에 일렁이며 노랗게 물들었다. 바람과 햇살이 빚어내는 개머리 능선의 풍경이 마치 판타지 영화 속에 들어온 듯했다. 

능선을 따라 30~40분 정도 걸으니 개머리언덕이 눈앞에 보였다. 개머리언덕은 서쪽에 위치해 일몰이 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 백패커들이 사랑하는 굴업도 최고의 야영지다. 개머리언덕의 광활한 초지는 오래 전 섬의 목장이었다. 소떼를 방목하던 초지에는 이제 흑염소와 야생사슴들이 살고 있다. 사람이 다가가도 그리 놀라지 않고 유유히 풀을 뜯는 사슴의 모습이 그저 신기하다. 마을에서 키우던 꽃사슴이 울타리를 탈출해 200여 마리의 대가족이 됐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야생사슴 무리를 만날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댔다. 전망 좋은 언덕엔 이미 많은 백패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텐트를 치기 위해 평평하면서도 돌이 없는 자리를 골랐다. 바로 앞으로 바다도 내려다보이고 파도 소리가 들려 백패킹의 감성을 즐기기에 적당해 보였다. 텐트를 치고 의자에 앉으니 바다 위로 덕적군도가 펼져진 모습이 그림 같았다. 오후 5시 반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검푸른 바다 위로 노을이 반사되는 풍경, 세상의 모든 색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순간, 어둑해진 하늘 사이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비행기 혹은 전투기일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혜성은 아닐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다보니 해가 지고 가녀린 눈썹 같은 초승달이 떠올랐다. 개머리언덕 위 텐트에도 하나 둘 불이 들어오고, 언덕 너머 먼 바다에서는 고기잡이배들이 잔잔하게 머물렀다. 새벽 2시, 은하수들이 절정을 이룬다는 시간에 눈을 뜨고 다시 텐트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많이 불고 몹시 추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방이 고요하고 공기도 차갑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비비며 하늘을 바라보니 새까만 하늘에 노오란 별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저 멀리 은하수도 보였다. 하늘이 무너져서저 별들이 다 쏟아져버리면 어쩌지,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의자에 앉아 한없이 바라보았다. 들리는 건 오직 파도 소리뿐. 어떤 인공의 소음과 불빛도 없는 완전한 자연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감탄하는 것뿐. 그리고 자연 그대로 오래도록 보존될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잠드는 경험, 참으로 황홀했다.

떠오르는 태양과
야생사슴을 보며
시작하는 하루

매일 변함없이 해가 지고 해가 뜨지만 그 자연스러운 현상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오전 7시 7분, 일출을 보기 위해 해가 뜨는 시간을 미리 체크하고 30분 일찍 일어나 개머리언덕 반대편으로 향했다. 외딴 섬에서 맞이하는 새벽공기는 깨끗했다. 바다 안개가 개머리 언덕을 감싸 안은 탓에 하늘도 바다도 푸르스름해 보여 마치 온 세상이 잠에서 덜 깬 것 같았다. 그러다 눈깜박할 사이에 하늘이 붉어지더니 바다 너머 구름 뒤로 태양이 솟아올랐다. 구름이 많은 탓에 수평선 끝에서부터 태양이 솟아오르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구름을 뚫고 태양이 올라오는 모습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아침을 열고 싶어 코펠에 물을 끓이고 있는데, 사슴 두 마리가 찾아와 풀을 뜯기 시작했다. 동그란 눈으로 가끔씩 빤히 쳐다볼 뿐, 별다르게 놀라는 기색 없이 유유히 풀을 뜯었다. 야생사슴과 함께 맞이하는 하루. 이 순간 마시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이 이른 아침의 피로를 모두 풀어주었다. 

텐트를 정리하고 마을로 내려가 민박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계란후라이와 미역국, 묵, 김치, 나물과 깻잎에 흰 쌀밥. 소박한 밥상이지만 하룻밤 야생에서 잤다고 갓 지어진 흰 쌀밥과 따뜻한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름다운 해변과 사구, 초원과 숲길, 일출과 일몰에 바람의 풍경까지 굴업도는 작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풍경으로 꽉 차 있었다. 섬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다시 배에 오를 때까지 발길 닿는 곳마다 탄성이 끊이질 않는 곳. 사실 굴업도는 개머리언덕에서 하룻밤 캠핑만 즐기고 가기엔 너무 아쉬운 곳이다. 이 섬은 개머리언덕, 큰말해변이 있는 서섬과 목기미해변, 연평산, 덕물산, 코끼리바위 등이 있는 동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기미해변을 지나 동섬으로 가면 고운 모래가 부드럽게 발을 감싸는 모래사구를 걷고, 123m의 연평산에 올라 굴업도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굴업도를 전부 둘러보기에 1박 2일은 부족했다. 고작 하룻밤 보냈을 뿐인데 떠나는 순간까지도 조만간 다시 와야지, 다짐하게 되는 섬. 긴 시간과 수고를 들였어도 이곳 굴업도에 오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