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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지 ] 역사가 숨 쉬는 통영 시간여행

역사가 숨 쉬는 통영 시간여행

폭염을 견뎌내고 맞이한 신선한 공기에 발걸음마저 가벼워진다.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문득 생각한다. 누군가의 고뇌와 승리가 없었다면 이런 설렘을 느낄 수 있었을까.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의 흔적을 찾아 떠난 시간여행. 경남 통영에서 깊어진 가을빛에도 잠 못 이루던 장군을 만났다. 통영은 충무공 이순신의 도시라고 해도 좋다. 통영시의 현재 지명과 옛 지명까지 모두 장군과 그가 설치했던 조선 수군의 핵심지인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유래했다. 1593년 가을, 당시 조정은 경상도·전라도·충청도 3도 수군을 한번에 통제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에게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했다. ‘한 바다에 가을빛이 깊었구나.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하늘 높이 날아가네. 가슴에 근심 가득하여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빛이 들어 칼을 비추네.’ 조선의 국가적 위기 앞에, 가을의 찬 기운을 느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장군의 마음이 짧은 시조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머쥔 한산도 앞바다가 펼쳐진 곳,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역사를 일궈낸 삶을 품은 곳, 통영.

한산대첩의 격전지가 한눈에
이순신 공원

통영에 도착해 제일 먼저 이순신공원을 찾았다. 한산대첩의 격전지이자 대승리를 거둔 한산도 앞바다를 한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로 57회째를 맞이하는 통영한산대첩축제의 백미인 한산해전의 학인진 재현이 이순신공원에서 이뤄지는 만큼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경관은 통영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공원 주차장에서 내려 높게 뻗은 나무 길 사이를 오르면, 이순신 동상의 뒷모습이 보인다. 한 손에는 칼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바다를 가리킨 장군의 모습은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듯 생생하다. 장군의 동상과 공원 한쪽에 놓인 대포가 아니라면 이곳이 치열했던 전쟁터였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빛나는 쪽빛바다의 풍경이 눈부시기만 하다. 바다 건너편으로는 통영의 명산인 미륵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산책길 따라 공원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시원한 바닷바람에 온몸의 피로까지 사라지는 기분. 아래쪽 해변에는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걷거나 바라보거나 물속에 뛰어들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한산도 앞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이들을 바라보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든든하기만 하다.

TIP. 통영한산대첩축제
매년 통영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념하기 위한 '통영한산대첩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57화쨰를 맞는 축제는 국내를 대표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테마 축제로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맞붙은 한산도 앞바다 해전을 재현하는 행사를 비롯해 거북선 출정식, 전통무예 시범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려 통영시 전역을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

조선수군의 총본부
삼도수군통제영

이순신공원을 빠져나와 삼도수군통제영으로 향했다. 1604년 설치돼 1895년 폐영될 때까지 무려 290년간 왜적에 대비하는 조선 수군의 총본부로 오늘날 해군사령부와 같은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제1대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가 바로 최초의 통제영이다. 한산도에 설치한 삼도수군통제영은 일본 수군의 서진을 막아 전쟁의 확산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전란이 끝난 뒤 한산도와 그 주변 지역이 남쪽 바다를 지키는 중요한 지역으로 주목받으면서 1604년 통제영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삼도수군통제영 앞에 휘날리는 깃발을 바라보며 계단을 오르면 사방이 막힘없이 뚫린 건축물이 보인다. 거대한 현판의 당당한 기상이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이곳이 바로 삼도수군통제영의 핵심인 세병관이다. 

현판의 가로 길이는 웬만한 성인의 키보다도 길다. 어린아이가 붓을 들고 뛰어다니면서 현판에 글을 적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3도 수군을 총괄하고 임금의 명을 받들던 이곳은 조선시대 당시 지방관아 건물로는 최고의 위상을 자랑했다.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 건축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건축물 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면적이 가장 넓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세상이 다시 평화로워져서 전쟁할 필요가 없으니 ‘은하수를 끌어와 갑옷과 병기를 씻어두자’고 읊은 두보의 시 ‘세병마행’에서 따왔다. 이름에 담긴 평화를 향한 염원이 간절하게 느껴진다.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으니 파란 하늘과 통영 시내가 한눈에 담긴다. 매립하기 전까지는 통제영 바로 앞이 바닷물로 넘실거렸다고 하니 그 시절, 바다에 비친 통제영을 바라보며 고향을 마음에 품었을 조선 수군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충무공을 모신 사당
충렬사

충렬사는 1606년 충무공의 부하였던 이운룡이 선조의 명에 따라 지은 사당으로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이순신 장군의 위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조선 왕조 최초이자 공식적인 충무공 이순신의 사당으로, 868년 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을 내릴 때도 충렬사는 제외됐다. 충렬사 입구 길 양쪽에는 동백나무가 죽 늘어서 있다. 이 중에는 약 400년이 넘은 나무도 있다. 충렬사 관리인은 붉고 하얀 동백꽃이 충렬사를 뒤덮는 4월이 되면 이곳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늦가을 동백열매가 붉게 익으면 씨앗을 거둬 기름을 짜내어 사용한다고 하는데, 지금도 제법 열매가 붉다. 동백나무를 지나면 강한루라는 누각이 보인다. 예부터 충렬사를 찾은 많은 시인이 이 누각에 올라 충무공의 큰 덕을 되새기며 시제를 떠올렸다고 한다. 강한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비로소 충렬사 현판이 걸린 아담한 사당이 보였다. 사당으로 들어가 이순신 장군 영정 앞에서 참배를 올렸다. 사방이 대나무로 뒤덮여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는 소리가 청량하게 귓가에 울렸다.

TIP. 통영의 동백
동백은 통영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와 꽃이다. 통영시 대부분의 나무와 꽃이 동백나무와 동백꽃일 정도다. 동백꽃이 필 무렵이 되면 바닷가 어민들은 한 해 동안 비바람이 순조롭기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왔다. 그때가 되면 이곳 처녀들이 물동이 안에 동백나무의 꽃잎을 띄워 바쳤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세운 최초의 지휘본부
한산도 제승당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흔적을 찾기 위해 배를 탔다. 한산도에 가기 위해서다. 통영은 소매물도, 비진도, 죽도, 사람도, 욕지도 등 무려 570개의 섬을 갖고 있어 여객선 산업이 발달한 도시다. 요즘에는 여객선보다 요트를 타는 사람이 늘고 있어 유람선터미널에서 요트를 타고 한산도로 향했다. 약 20분 정도 바닷길을 가르니 한산만 입구의 거북등대가 보인다. 그리고 한산도 충무공 유적지인 제승당에 닿았다. 제승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지휘본부이자 집무실로 사용하던 운주당 건물을 칭하는 말이다. 2년 정도 머물며 난중일기를 쓴 곳이기도 하다. ‘지혜로 계획을 세운다’는 뜻의 운주당이라는 이름을 1793년 ‘제압하여 승리를 이끈다’는 제승당으로 다시 명명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처음으로 이곳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인 운주당을 세워 밤낮으로 부하들과 전략·전술을 논했다. 비록 지위가 낮은 군졸일지라도 전쟁에 관한 일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찾아와 말하게 해 군중 사정에 통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철저한 계책과 전략. 이순신 장군이 모든 전쟁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까닭을 제승당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산도에는 제승단 외에도 한산대첩비,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 조선 수군이 바다 너머의 표적을 향해 활쏘기 연습을 하던 한산정, 임진왜란 당시 한산진영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던 망루인 수루가 있다. 수루에 오르니 맑은 공기와 바다 내음이 코 안으로 몰려들고, 가을 정취에 빠진 한산도가 아름답게 그려졌다. 다시 요트에 오를 시간이다. 충무공의 발자취를 따라간 통영에서의 시간여행을 마치며 이 땅을 지켜낸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을 되새긴다. 그들 덕분에 가을빛이 더욱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