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감성여행

[ 관광지 ] BOGOTA MEDELLIN YOPAL

BOGOTA MEDELLIN YOPAL
콜롬비아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공감

엘도라도의 전설에서 시작해 그라피티의 천국으로 이어져온 콜롬비아의 긴 세월의 틈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경이로운 역사, 감미로운 풍경, 정겹고 흥겨운 기운, 앞으로가 기대되는 문화적감성,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낸 우리의 옛 추억까지. 왠지 흔쾌히 그리고 마음껏 공감했던 시간들.

BOGOTA
보고타

콜롬비아의 수도이자 제1의 도시인 보고타는 남미에서 가장 매력적인 대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해발 약 2,6000미터에 위치한 이 도시의 매력은 무척이나 다채롭다. 역사적인 랜드마크와 흥미로운 소재의 박물관들은 물론이고 불가사의한 볼거리와 도시 전체를 뒤덮은 음악과 춤, 그리고 예술과 미식까지 두루 갖췄다. 매일같이 황홀하게 물드는 석양 아래 차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활한 도시 풍경을 지켜본 날에는, 뜨거워진 가슴에 어쩌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파키라 소금성당
자연과 인간의 극적인 콜라보레이션

'소금성당', 한글로 번역된 이 단어를 듣고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바닷가 주변도 아닌, 어두컴컴한 동굴 속 광산이라니. 보고타에서 북쪽으로 1시간쯤 달려간 시파키라 마을은 그리 특별한 것 없는 보통의 마을로 보였지만, 광산이 시작되는 동굴 입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묘한 긴장감과 난데없는 기대감이 몰려들었다. 약 1,500년 전 바닷속이었던 곳이 지각변동에 의해 소금광산으로 뒤바뀌어 버린 사실은 입구에서부터 사방으로 하얀 소금이 두텁게 쌓여 있는 모습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눈과 입을 통해 소금광산의 증거를 확인하고 난 뒤, 미스테리한 자태를 하나씩 눈 앞에 드러내는 소금성당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100명 이상의 조각가와 광부들이 창조해 낸, 깊은 신앙심의 결정체이자 산에 대한 갈망이 표현된 작품들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지하 깊은 곳에 숨어 어느 성당에서도 경험해본 적 없는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십자가의 길'을 상징하는 14개의 예배당. 그 속에는 광부들의 피와 땀뿐만이 아닌, 신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했던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인걸까. 거대한 십자가와 예배당, 곳곳에 자리잡은 섬세한 조각상들 그리고 가녀린 하얀빛을 쏘아내는 소금과 눈부시게 투명한 지하 호수, 그 모든 것에 켜켜이 쌓여있는 것은 나로서는 감히 흉내 내지 못할 심도의 존재들이었다. 입은 굳게 다물어졌지만,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흥분과 평화가 마음속에서 공존했던 시간. 어둠 속 시파키라 소금성당에서 다시 빛 좋은 보고타의 현실로 돌아 나오며 앞으로의 삶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우리 생에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지만, 우리 앞에 남겨진 세월의 길이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무한하기에 뜨겁고 짙은 삶을 살아봐도 좋겠다'고.

과타비타 호수
엘도라도 전설과 보고타 전설의 증거

보고타에서 소금성당을 지나 조금 더 먼 곳에 위치한 과타비타 호수. 소금성당만큼의 놀라운 볼거리는 갖고 있지 않았지만, 엘도라도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콜롬비아노들에게는 그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었다. 다시 말하면, 보고타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타비타 호수를 한 번쯤 들러보는 것이 좋고, 과타비타 호수를 조금 더 흥미롭게 둘러보려면 엘도라도와 보고타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가는 것이 좋겠다. 보고타의 전설은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이 남아메리카에 있다고 믿었던 황금의 나라, 즉 엘도라도의 전설과 관계가 깊다. 스페인이 콜롬비아를 침략하기 전, 지금의 보고타 지역에서 처음으로 정착 생활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무이스카 족으로, 당시 약 50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1536년 스페인의 곤살로 히메네스 데 케사다는 엘도라도의 전설을 쫓아 콜롬비아 내륙으로 들어갔고, 갖은 고생과 희생을 했지만 결국 보고타 인근에 도착하여 무이스카 족을 정벌하고 황금과 에메랄드 등을 약탈했다. 

그리고 케사다는 1538년 원주민들의 중심지였던 바카타 지역에 보고타를 건설한다. 과타비타 호수 바닥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호수의 물을 거의 다 빼기까지 했다. 결국 황금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1969년 일대에서 황금 뗏목 모형이 발견되며 엘도라도의 전설과 과타비타 호수는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과거 이곳에 거주하던 무이스카 족은 족장이 즉위하면 새 족장이 온 몸에 황금을 바른 채 뗏목에 황금 제물을 가득 싣고 물속으로 들어가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거행했다고 전해진다. 깊은 산 속 하늘과 맞닿은 곳에 한가로이 잠들어 있는 듯한 과타비타 호수에 과연 홍금을 묻혀있을까. 중요한 사실은, 과거 무이스카 족에게 금은 '부'가 아닌 신과 인간의 연결고리였다는 것. 그래서 더욱 아리송해진 질문에 대한 해답을 과타비타 호수 어딘가에서 도생하고 있을 신에게 말없이 물어볼 뿐이었다.

몬세라떼
'보고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한 선셋

아직 태양의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 머물고 있던 시간, 보고타가 품은 모든 것이 해발 3,152미터 몬세라떼 성당 아래로 펼쳐졌다. 단순히 그 풍경을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넉넉해졌다. 그리고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오자 태양은 어느새 눈높이에 닿아 있었다. 붉은빛이 광활한 도시를 서서히 덮어가고, 잠시 노랗게 타오르는 듯하더니 결국 검게 물들어 갔다. 어둠은 더욱 선명히 어두워졌고, 길을 밝히는 전구 하나하나는 그토록 깨끗하게 빛을 밝혀준 농도 짙은 선셋이 또 다른 도시 하나를 창조해나가는 짧은 영화 한 편을 차분히 감상했다. 기꺼이 몬세라떼는 가슴 깊은 곳까지 찾아들었고, 그 머묾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도시의 찬 공기마저 따스해진 순간, 어떻게든 로맨틱할 것 같았던, 다가올 보고타의 밤이 무척이나 기다려지고 있었다.

MEDELLIN
메데진

해발 약 1,500미터의 안데스 산맥 고원 지대에 위치한 메데진은 콜롬비아의 제2의 도시이자 안티오키아 주의 주도이다. 보고타에 비해 아늑한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도시 메데진은 365일 따스한 봄 날씨를 띠며 '영원한 봄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1970~90년 대 마약과 범죄 등으로 어둠의 이미지가 강했던 메데진은 이후 혁신도시로 거듭나며 이제는 희망의 도시로 그 모습을 탈바꿈했다.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코뮤나13
달동네의 감동 스토리

코뮤나13은 과거 반군과의 전쟁, 갱들 사이의 총격전, 폭행과 강도 사건 등으로 콜롬비아에서 가장 위험했던 빈민가였다. 그런 곳을 메데진 여행의 첫 목적지로 소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완벽하게 뒤바뀐 달동네의 반전 스토리 때문인 것 같다. 이제는 콜롬비아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여행지가 되었다는 마을 초입에서 여행은 시작됐다. 좁은 골목을 따라 이어진 경사가 급한 언덕, 그 언덕에 매달려 다닥다닥 층을 이루며 붙어 있는 작은 집들. 그리고 마을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강렬한 그라피들. 사실 그 풍경까지는 우리나라에서도 관광지가 되어버린 몇몇 벽화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경사가 더욱 급해지고 주민들의 삶의 현장이 본격적으로 사직되자 이 마을을 뒤바꾼 주인공이 모습으르 드러냈다. 총 6대의 전기 에스컬레이터. 걸어서 마을 정상까지 오르는데 30~40분 걸리던 거리가 10~15분 정도로 단축되면서 이 마을에 신선한 활기가 찾아 들었다. 이동의 어려움으로 시내와 단절됐던 탓에 범죄조직의 소굴로 악명 높던 마을이었지만, 경찰과 안전요원들이 찾아와 주민들을 살뜰히 돌보며 새로운 행복이 찾아든 것. 

'에스컬레이터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스토리를 가이드를 통해 전해 듣고 난 뒤부터 수많은 그라피티에서도 또 다른 이야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예쁘고 멋있는 그림이 아닌,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기억하고 더욱 밝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주민들의 염원이 담긴 메세지들. 특히,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애타는 마음으로 집 안에 숨어 흔들었던 하얀 손수건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함께 공감하고 잊지 말아야 할, 말 없는 가르침이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던 때, 에스컬레이터를 갈아타며 어느새 마을 꼭대기에 도착했다. 왠지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한 도시 전망 속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나쳐 온 마을의 평범한 일상도 내려다보였다. 집을 수리하는 사람, 작은 공사를 위해 주차하고 있는 트력,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강아지 그리고 깜짝 댄스공원을 열어준 동네 아이들. 이런 소소한 풍경들이 어느 마을의 꿈이 되거나 기적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를 바라는 코뮤나13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풍경이 아닐까.

보테로 광장과 안티오키아 박물관
콜롬비아가 담긴, 보테로식 예술세계

페르난도 보테로,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꼽히는 그의 작품은 한눈에 보면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독특한 화풍을 보여준다. 언젠가 보았던 둥글고 육감적인 인물 표현과 왠지 장난스럽기까지 한 세부 묘사 등은 미술을 몰라도 그의 작품에 눈길을 주기에 충분했다. 메데진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보테로 광장에는 그의 작품인 23개의 조각상이 광장 안에 유쾌한 기운을 잔뜩 뿌려 놓았다. 메데진의 어느 곳보다도 밝은 기운이 가득히 느껴지던 그곳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조각상 앞마다 콜롬비아노 특유의 밝고 쾌활한 모습들이 연출되었다. 그들의 눈에도 흥미로운 보테로의 작품들을 더욱 풍성하게 감상하기 위해 광장 한편의 안티오키아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티오카아 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보테로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이미 많은 애호가들과 여행객들로 분주했다. 전시실의 가장 앞에서 관람객을 맞는 작품은 그의 아들의 초상화. 아직 어려보이는 얼굴, 안타깝게도 보테로보다 먼저 세상을 뜬 아들의 얼굴로 이곳에 걸리게 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전시장의 가장 앞에 내 아들의 초상화를 걸어주세요' 보테로가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들을 기증하며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제시했던 단 한가지의 조건이었다. 이렇듯 보테로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세지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독특하고 유머러스 한 표현의 이면에는 사회 이슈에 대한 비평과 콜롬비아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깊게 녹아 있었다. 보테로 식의 표현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집중할 수 있었던 콜롬비아 이야기들이었다. 

메데진 보타닉 가든

영원한 봄의 도시로 불리는 메데진의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로 손꼽히는 콜롬비아이기에 한 번쯤 들러볼만한 곳으로 빨강 바나나와 같은 특이한 것들을 비롯해 약 1천여 종 이상의 생물과 4.500여 종의 꽃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독특한 난초들이 많아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곳곳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이나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 촬영 모습도 볼 수 있다.

YOPAL
요팔

요팔은 카사나레 주의 주도이자 안데스 산맥 동쪽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 약 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지만 최근 경제 발전 등을 통해 인구가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 푸르고, 넓은 평야사바나를 기반으로 오래 전부터 축산업이 발전하였고, 콜롬비아 독립운동 당시에는 이 지역의 가축으로 독립군들에게 많은 식량을 제공했다고 한다. 때문에 인근 도시에서는 지금도 소와 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이들, 소로 만든 요리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산루이스 데 팔렌퀘
작은 시골마을의 환영인사

요팔에서 차로 약 2시간을 달려 산 루이스 데 팔렌퀘에 도착했다. 요팔 역시 콜롬비아의 작은 도시이지만, 산루이스 데 팔렌퀘는 요팔과 비교하면 시골이라는 단어가 서슴없이 떠오르는 아주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교회와 광장의 마리아 상 그리고 고요히 광장 너머로 흐르는 강. 어쩌면 마을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 풍경을 그대로 놓아둔 채 특별한 행사가 열리는 광장에서는 비트 강한 콜롬비아 음악에 맞춘 전통 춤 공연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역에서 커피를 재배하던 모습을 재현한 춤을 함께 추는 아이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힘차고 신나 보였다. 평소의 마을 풍경만큼이나 소박한 아이들의 얼굴을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바라봤다. 때 묻지 않은 콜롬비아노의 얼굴 보다 더 때 묻지 않은 그들의 얼굴에 그려진 미소와 함박웃음. 먼 길을 달려온 손님들에 대한 솔직한 감사와 환영의 인사였을 것이다.

하토 마타팔마
사바나 라이프 체험

열대우림과 사막, 그 사이의 열대초원 사바나로 향했다. 도로가 좁아지고 상태가 험해질수록 차량은 사바나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먼 길을 떠나와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보고타와 메데진과는 또 다른 콜롬비아를 경험할 수 있는 곳, 토마볼린이 부른 '사마나 우먼'의 끈적하면서도 강인하고 스피디한, 진정한 라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토 마타팔마는 어마어마한 면적을 갖고 있다. 말 그대로 완전한 자연의 상태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 거대한 땅의 주인인 모 기업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고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설명을 들으며 버스가 멈춰선 곳에는 카피바라들이 얕은 물가에 놀고 있었다. '초원의 지배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과는 달리 느릿느릿 귀염귀염한 모습으로 방문객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녀석들이다. 

주변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가 시작됐다. 고기 굽는 연기를 따라 가보니 긴 장대 수십 개에 소고기를 덩어리째로 꼽아 장작불에 바비큐를 굽고 있었고, 눈 앞에 펼쳐진 초원에서는 콜롬비아 판소치기 야네로들이 소떼를 몰고 나타나 현란한 소몰이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아주 멀기만 했던 세상의 풍경을 한 끼 식사와 함께 즐기고 있는 그런 순간이었다. 사바나를 돌아보는 방법에는 몇가지가 있다. 말을 타거나, 걷거나 트랙터를 타거나, 가장 최근에는 투어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트랙터 위에 올랐다. 점심을 먹고 조금은 노곤해진 시간, 트랙터 투어는 잠에서 빠져나와 초원의 야생성을 관찰하기에 괜찮은 선택이었다.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초지와 습지가 번갈아 가며 나타나고 푸른 하늘과 구름을 만나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때때로 카피바라 무리를 지나가기도 하고, 초원을 달리는 말의 모습도 스쳐갔다. 제법 먼 길을 나선 것 같음에도, 투어는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태양이 조금씩 모습을 보이고 푸른 초원과 얕은 습지에도 어느새 붉은 기운이 뿌려졌다. 초원을 멀뚱히 지키고 선 여행객을 위한 호텔 앞에서 마시는 칵테일 한 잔에 그동안 몰랐던 사바나의 낭만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선명한 어둠이 초원 위에 촘촘하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트랙터와 검붉은 사바나, 그리고 어둠 속 트랙터 위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온 일행의 익숙한 노래 한 곡.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황금빛 석양 아래 소달구지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옛 시골의 기억을 찾아낸 걸까. 오래도록 잊고 지내던 한 번쯤 꼭 찾고 싶었던 풍경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