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도
공존의 미학
청도에는 무언가 특별한 기운이 감돈다. 청도의 하늘 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짝을 지어 가만히
음미하지 않으면 가슴으로 느낄 수 없는 오묘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중국과 독일, 바다와 산, 과거
와 현재, 낭만과 열정 그리고 남과 여.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연주하는 청도 세레나데.
구시가지
청도 여행의 핵심은 구시가지에 모두 모여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대표적인 볼거리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잔교에서부터
팔대관까지, 그 길 사이사이에는 오늘의 청도를 탄생시킨 독일의 흔적들, 아름다운 해변과 거리, 연인들의 낭만
그리고 칭다오 맥주의 뜨거운 열정이 함께 숨 쉬고 있다.
잔교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들의 빛바랜 색들이 거리의 세월을 짐작케 하는 구시가지의 중심지역을 지나 해변 앞에닿았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중국식 누각, 회란각 回瀾閣과 발걸음을 그곳으로 안내하는 잔교가 고요히 바다 위를 가로지른다. 청도맥주의 로고 속에
담겨있는 회란각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사람들은 열심히 잔교 위를 걷는다. 1891년 청나라는 열강의 침입에 대비,
군수물자를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 이 다리를 건설했고, 독일은 이 다리를 통해 청도를 점령했다. 한때 파괴되었다가 다시
재건되기도 했던, 유난히 아픈 기억들을 많이 품고 있는 잔교는 많은 여행자들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슬프지 않은 모습이다.
어둠이 내리니 잔교는 제 몸에 가녀린 불빛을 피워 도시의 낭만을 이야기한다. 청도 최초의 부두에서 오늘날 청도의 상징으로
시간의 굴레를 지나 유유히 빛을 밝히고 있는 잔교는 내일 또 누군가에게 긴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것이다.
영빈관
‘House under canopy of the heaven’, 중국인들은 영빈관을 이렇게 얘기한다. 독일 총독이 청도의 하늘 아래 지은, 독일의 작은
성을 닮은 자신의 관저. 어디에서든 그 집이 돋보일 수 있는 곳에, 그리고 청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 영빈관은 중국의 유명한 정치가 모택동이 무척이나 사랑했던 그의 여름 별장이기도 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실내에
들어서자 훤히 열린 공간 속에 화려하게 장식된 샹들리에와 가구 등이 단번에 시선을 압도한다. 100년 이상 자리를 지켜 온
것들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모습들이 한 사람의 영화롭던 삶을 또렷하게 조명해주는 것 같다. 영빈관의 그 고귀한 자태는
안에서도 밖에서도 변함없이 한결같다.
천주교당
구시가지 중심에서부터 하늘 아래 뾰족이 솟은 첨탑 두 개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그 모습에 이끌려 걸음을
재촉하니 너른 광장과 함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르네상스 양식의, 청도에서는 유일한 천주교 성당이다.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
봤다면 무척이나 어색하고 낯선 모습이었겠지만, 이곳에서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있는 느낌. 유럽식 돌바닥과 파스텔 톤의
건물들, 그리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벽화와 클래식한 느낌의 카페들이 한데 어울려 이곳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닌,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공간이 되었다.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웨딩 촬영을 하는 연인들, 또 그
광경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그 보다 어린 커플들이다. 성당이 지어진 1934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왔을 것 같은 그 풍경,
또 앞으로도 끊임없이 달콤한 꿈과 약속들이 충만할 것 같은 모습. 청도의 연인들은 이곳에서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있다.
피찬이위엔
구시가지의 거리들을 둘러보다 우연찮게 어느 골목의 간판에서 ‘1902’라는 숫자를 발견했다. 청조시기 문호가 개방되었던
청도에는 수많은 변화들이 일어났고, 당시의 일들을 상징하는 이러한 숫자들을 지금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숫자들을 볼 때면 늘 그 의미가 궁금한데, 1902는 오래된 먹자골목인 피찬이위엔이 처음 생긴 연도였다. 작고 그리 길지 않은
골목이지만, 그래서 이 골목은 더욱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꼬치거리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종류의 꼬치들을 맛볼
수 있는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선을 끌면서도 막상 잘 팔리지는 않는 것이 곤충튀김이다. 매대에 누워 꿈틀꿈틀 거리는 큼지막한
애벌레에서부터 멋진 포즈로 앞다리를 치켜세우고 있는 전갈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생김새도 다양하다. ‘다리 네 개가
달린 것은 밥상 빼고는 다 먹는다’는 중국인들의이야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시장 풍경. 그렇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먹음직스런
먹거리들도 많아 국적불문,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즐거운 골목이다.
청도맥주박물관
청도 또는 칭다오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단연코 청도맥주일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양꼬치에 칭다오’라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유행을 만들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청도맥주는 1,600여 맥주
브랜드가 있는 중국에서도 최고의 명성을 변함없이 이어나가고 있다. 청도맥주박물관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2003년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여행자들을 반긴다. ‘1903’이라는 숫자가 출입문 위에 커다랗게 쓰여 있는 독일식
건물의 꼭대기에는 커다란 청도맥주 캔들이 설치되어 있어 그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로 잠시도
쉬어갈 틈이 없다. 박물관 관람의 첫 코스인 A동 입구에는 중국국가풍경구 4A급(AAAA) 명승지라는 안내문이 있다.
실제 맥주를 생산하는 공장이면서 100여 년의 역사와 제조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곳이지만, 청도 대표
여행지로서의 면모를 확인하는순간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청도맥주의 역사, 양조방법, 실제 포장 과정 등이 차례대로
전시되어 있다. 맥주의 본고장에서 온 독일인들이 노산의 맑은 물로 만들어 마시던 청도맥주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 같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맥주 시음이다. A, B동의 박물관을 관람하는 동안 총 2번의 시음
기회가 주어졌다. 첫 번째 시음은 외부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청도맥주를 맛보는 시간. 발효 과정 이전의 맥주로
완제품 보다 조금 더 알싸한 맛에 최고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박물관 투어의 마지막 코스에서 두 번째 시음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막 생산한 숙성된 맥주의 시음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기념품과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흑맥주와 같은 다양한 청도 맥주의 구매도 가능하다.
맥주거리
청도맥주박물관을 나오며 왠지 아쉽던 마음을 달랠 곳을 바로 앞에서 찾았다. 박물관 내의 제1공장에서 생산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맥주집들이 거리를 이루고 손님들을 부르는 맥주거리다. 이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생산된 지 이틀을 넘기지
않은 신선한 맥주를 인근 바다에서 길어 온 해산물과 함께 마실 수 있는 곳. 한국에 ‘치맥’이 있다면 중국에는 ‘조맥’이 있다.
싱싱한 조개 요리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중국의 음식문화를 체험해본다. 거리에 앉아있으니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자주 지나쳐간다. 맥주통에 비닐을 걸어놓고 맥주를 따르는 모습, 비닐에 담긴 맥주를 손에 들고 다니거나 빨대로 비닐에 담긴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청도맥주는 다른 맥주를 마시다가 마셔도 맛있지만, 청도 맥주를 마시다가 다른 맥주를 마시면 맛이
없다고 할 정도로 청도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청도 시민들의 맥주 사랑을 이곳에서 확인한다.
중산공원
식물원에서 태평산 케이블카를 타고 하늘에 올라 시시각각 변하는 청도의 풍경을 감상하며 다다른 곳은 중산공원이다. 평일
이른 아침이지만 중산공원의 산책로는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느릿느릿 걷는 걸음이지만 꽃대궐을 이룬
벚꽃나무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 꽃이 활짝 피었다. 청도의 봄은 이곳에서 그야말로 만개한 채, 떠나갈 줄 모르는
것 같다. 청도 시민들의 가장 큰 휴식처인 중산공원은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80헥타르의넓은 부지 안에 식물원, 동물원, 놀이공원 등을 고루 갖추고 있고 바쁘게 공원 안을 둘러본다 해도 하루가 모자랄
만큼 거대하다. 이 공원은 과거 독일 점령 하에 식물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울창한 숲을 이룬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공화제를 창시하고 국민정부시대에 국부로 칭송되던 손중산을 기념하여 1929년 중산공원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그의
얼굴이 조각된 석상이 공원을 지키고 있다.
TV타워
110미터의 산 위에 우뚝 선 TV타워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먼 우주를 향해 날아오르려는 우주선을 보는 것만 같다. 타워의
1층에서 청도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251미터 높이의 전망대로 오르는 시간은 단 53초. 순식간에 고속 엘리베이터가
삼면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청도의 풍경을 눈앞에 가져다놓았다. ‘WINDOW OF QINGDAO’, 파란 바다를 앞에 두고
올록볼록하게 그려진 해안선, 그 위에 가득 펼쳐진 주홍색 지붕들과 현대식 고층 건물들의 조화, 잘 정리된 청도 시민들의
삶의 터전과 멀리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 노산의 실루엣까지. 어느 한 방향도 놓칠 수 없는 보석 같은 풍경들이 TV
타워의 창밖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래서 245미터의 카페는 특별한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또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 같은 곳이 아닐까. 낮에도 밤에도 당신의 가슴 속에는 청도라는 단 하나의 이름만이 새겨질 것이다.
팔대관
‘만국건축박람회’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팔대관의 입구에 들어서자 한편에 해변을 두고 여덟 개의 거리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는 10개가 된, 골목이라 해도 괜찮을 크기의 거리들이지만 잘 닦이고 정돈된 모습에서 고급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별장들 사이에 서로 방해되는 일은 없을 것 같은 정도의 거리와 잘 가꿔진 정원은 도심 속에 숨겨진 여유를
마음껏 뽐낸다. 마음 같아서는 한집 한 집 들어가 둘러보고 싶지만 대부분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그저 아쉬울 뿐. 독일이
청도를 점령하던 시절, 유럽의 부호들은 이곳에 너나할 것 없이 아름다운 별장을 지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축물만
200여 개나 되고, 20여 개 나라의 건축 양식을 이곳에서 모두 볼 수 있게 됐으니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팔대관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화석루를 찾아간다. 장개석이 몇 차례 머물다 간 곳이라는
화석루는 ‘꽃과 돌과 집’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담장 너머로 보는 짧은 모습만으로도 화석루의 진정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다.
2편_ 신시가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