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감성여행

[ 관광지 ] 비 내린 정취에 스며들다

비 내린 항주의 풍경은 수채화처럼 은은했다. 옅은 운무雲霧 아래에는 빗물을 머금고 더욱 선명해진 나뭇잎과 바위와 사람들이 있었다.

항주는 그렇게 잔잔하게 또 선명하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비오는날의 서호

중국 4대 미녀 중 하나인 서시西施의 아름다움에 비견될 정도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서호西湖. 원래 서호는 포구였지만 퇴적물이 쌓이면서 그 기능이 바뀌어 육지의 호수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람들의 손길이 이어져 지금의 아름다운 서호가 만들어졌다. 서호에 가기로 한 날, 비가 내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언젠가 서호는 맑은 날보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 더 운치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쉬움과 기대가 뒤섞인 묘한 심정으로 서호십경西湖十境 중 하나인 화항관어花港觀魚로 향했다. 송나라 때 한 관료가 그곳에 누각을 짓고 물고기를 기르며 풍경을 즐겼다하여 붙여진 이름 화항관어. 빗물을 촉촉하게 머금은 나무들 사이로 난 돌길을 산책하는 한적함이 마음에 든다. 나뭇잎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물방울들은 작은 전구들처럼 반짝인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보니 붉은 잉어 떼가 있는 연못이 보인다. 물속을 한가로이 노니는 잉어들도 빗물을 머금은 것인지 그 붉은 색이 유난히 선명하다. 연못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운무가 내려 앉은 서호의 드넓은 경관이 펼쳐진다. 크고 작은 배들이 호수 위에 유유자적 떠있다. 그 중 한 배에 몸을 실었다. 배는 천천히 서호를 미끄러져 가며 시대를 뛰어넘어 중국의 시인과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여주었다. 흐릿한 듯 은은하게 눈에 담기는 풍경들이 여유롭고 운치가 있는 곳. 도시의 삶에 지칠 때면 비 내리던 날 한가롭게 노닐었던 서호의 정취가 떠오를 것 같다.


남송시대의 거리
하방가

하방가는 항주의 명산인 오산吳山 기슭에 남송南宋시대 번화했던 청하방의 옛 거리를 재현해놓은 길이다. 비가 내린 날의 낮 시간이었지만 하방가 입구에 있는 황금색 미륵보살상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미륵보살상을 쓰다듬으면서 소원을 빌고, 미륵보살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하방가로 들어가기 전에 필히 거쳐야하는 통과 의례와도 같이 보인다. 넉넉하게 활짝 웃고 있는 미륵보살상 위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동자상 100여 존이 있어서 하나씩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약 460미터에 달하는 돌로 된 길 양쪽으로 목조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서 옛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찻잎, 부채, 한약, 전통 공예품, 주전부리 등 온갖 물품이 취급되고 있어 한나절쯤은 쉽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방가를 대표하는 물건은 차와 약 그리고 부채. 한방약을 취급하는 호광여당胡?余堂, 부채를 취급하는 왕성지산장이 백년이 넘는 오랜 전통과 품질로 유명하다.


왕성기부채박물관

1979년 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 캄보디아의 전 국왕이 항주를 방문했을 때, 그는 항주에서 가장 유명한 세 가지 물건을 선물로 받았다. 도금생都?生의 실크, 용정차?井茶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왕성기王星?의 부채였다. 항주의 부채는 송나라 때부터 뛰어난 품질로 이름을 떨쳤다. 청나라 시대부터 수백 년째 부채를 제작해온 왕성기산장王星?扇庄은 지금도 모든 부채를 장인들이 두 손으로 직접 제작하며 항주 부채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오고 있다. 그 명성을 확인하기 위해 왕성기 산장에서 운영하는 부채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은 부채역사관, 부채미술관, 명품부채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된 부채들 하나하나가 특별하지만 그 중에서도 돋보기가 없이는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불경佛經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는 부채가 특히 인상적이다. 같은 건물의 다른 층에서 부채 장인들이 실제로 부채를 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묵묵히 작업에 몰두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왕성기산장의 유구한 역사와 명성을 읽을 수 있다.


바위에 아로새겨진 불상
영은비래봉

서호와 함께 항주를 대표하는 명승지로 뽑히는 영은비래봉은 오나라 시대부터 원나라 시대에 걸쳐 조성된 330여 개의 석불石佛과 70개 이상의 동굴을 감상할 수 있는 나지막한 봉우리이다. 바위 절벽을 그대로 깎아 만든 불상들이 이곳저곳 숨어있어서 하나씩 발견하는 묘미가 있다. 그중에서 하방가 초입의 미륵보살상과 비슷하게 웃고 있는 대두미륵불大?彌勒佛과 서쪽 암벽에 있는 서방삼성좌불상西方三聖坐佛像이 특히 인상적이다. 세월의 풍파에 훼손된 불상들도 있지만 잘 보존된 불상들도 많다. 몇 백 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온 이 석불들은, 몇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바위 절벽을 타고 올라간 누군가의 정성으로 만들어졌다. 석불 하나하나마다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어떤 이의 땀방울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1700년 역사의 고찰
영은사

석불들을 보며 길을 오르다보니 치자색으로 노랗게 칠해진 영은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1,7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은사는 중국 선종의 10대 사찰 중 하나이자 항주 제일의 고찰. 남북조시대에 인도의 고승 혜리慧?가 기묘한 기운에 이끌려 항주에 와서 창건했다. 주변 산들에 불도 수행자의 심령이 깃들어 있다고 하여 신령 영靈자와 숨을 은隱자를 합쳐 영은사靈隱寺라고 이름 붙였다. 오나라와 월나라 시대에는 영은사에서 수행을 했던 승려가 3,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다. 입구에서 표를 내미니 검표원이 향을 하나 건넨다. 다른 중국인들처럼 받은 향에 불을 붙이고 웅장한 대웅보전을 향해 공양을 올린다. 보수공사 중이어서 대웅보전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고, 대웅보전 전각내부의 석가여래좌상은 밖에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영은사는 오랜 역사만큼 그 규모가 방대하여 천천히 둘러보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고, 방문객들이 빠져나간 경내는 고요하기 그지없다. 영은사를 빠져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여 길가의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영은비래봉의 석불들은 하나둘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서호의 밤

<서호의 밤>은 서호의 전설과 송나라 민족 영웅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무극으로 중국 무술, 서커스, 현악 연주, 난타 공연 등을 통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서호의 밤은 총 다섯 가지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1막 ‘전왕녹병錢王錄兵’에서는 남송의 명장 악비를 비롯한 용맹한 송나라 시대의 용사들이 등장한다. 2막 ‘남송성경南宋盛景’은 남송 시대의 태평성대를 아름답게 표현한다. 3막 ‘염축전농染祝情錄’에서는 중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양산박과 축영태의 사랑을 풀어낸다. 4막 ‘풍아전당風雅錢塘’은 항주의 특산품인 용정차와 실크를 아름다운 음악과 가무로 표현한다. 마지막 장 ‘동방불광東方佛光’은 공연의 하이라이트로서 1,600년 역사를 지닌 항주의 유구한 불교문화를 보여준다. 공연은 1시간 동안 진행되며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송성가무쇼

<송성가무쇼>는 프랑스의 물랑루즈, 미국 라스베이거스쇼와 더불어 세계 3대 쇼로 불리는 중국 최대 공연 중 하나이다. 남송의 도읍지였던 항주의 역사와 전설, 무용담을 첨단 영상기법과 화려한 조명 등을 통해 풀어낸다. 총 4부로 구성된 송성 가무쇼 1막 ‘항주의 빛’은 항주가 옛날 송나라의 수도였던 것에 대한 자긍심을 춤과 기예로 보여 준다. 2막 ‘금과 철마의 전쟁’은 남송 시대의 영웅 악비의 무용담을, 3막 ‘아름다운 서호’는 서호에 얽힌 전설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마지막 4막 ‘세계는 여기서 모인다’는 중국 56개 소수 민족의 춤과 의상을 표현하며 세계인이 항주로 모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