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감성여행

[ 관광지 ] 뒤늦은 고백도 꽃이 되는 곳. 아오모리


뒤늦은 고백도 꽃이 되는 곳. 아오모리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난 분홍빛 사과 꽃이 수줍게 들판을 물들이는 곳. 어느새 찬바람이 불어 계절이 기우는 동안에도 그리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꽃잎으로 새겨 넣은 분홍글씨는 그렇게, 가지마다 붉은 사과로 다시 맺혔고 기차는 살며시 긴 옷자락을 드리우듯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을 가로질렀다. 그 사이 가슴 속에 작은 폭죽이 터지듯 꽃은 또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아! 아오모리.



오늘이 축제다.
네부타 마츠리

제 몸 구석구석을 빛으로 환하게 밝힌 대형 종이 인형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는 축제. 대나무에 매달아 놓은 역동적인 사람과 동물들이 찬란한 색과 빛을 통해 더욱 화려하게 빛난다. 농사를 방해하는 잠 귀신을 쫓기 위해 18세기부터 등장한 네부타 사람 모형을 그려 넣은 장식수레. 하나의 네부타는 크기가 가로 9미터, 세로 7미터에 무게만 4톤에 이르며 고대 신화나 무사를 주제로 특별히 제작된다. 일본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축제이지만 아오모리에서 열리는 네부타 축제는 유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축제가 열리는 동안 이곳을 찾는 사람만 3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일본의 3대 축제로 꼽힐 만하다. 축제에 사용되었던 수레를 직접 볼 수 있는 전시관에 들어서자 둥둥 울리는 파장 깊은 북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그것은 네부타가 거리를 행진할 때 군중과 춤꾼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전통 음악소리였다. ‘왓세라~왓세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간결한 발동작을 맞춰 걸을 뿐이었지만 열정적인 거대한 북소리가 군중의 외침과 만나자 울림은 배가 되었다.

매년 축제 때마다 20대가 넘는 대형 네부타가 하네토라 불리는 2천여 명의 춤꾼들에 의해 거리를 행진한다. 단순한 몸짓과 단어 하나만을 외치며 행진하는 동안 그들은 잠귀신을 쫓았고, 게으름과 욕심까지 몰아낼 수 있었다. 네부타의 행렬 속에 자신을 내어 맡긴 사람들 속에서 단순함의 미학을 엿본다. 거대한 인형이라는 짐을 이고 묵묵히 옆 사람과 보폭을 맞춰 걷는 이들의 짧은 외침. 그렇게 마을을 몇 바퀴 돌았을 뿐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다시금 고된 농번기를 이겨낼 힘을 얻었다. 우리는 자주 단순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저 옆 사람과 묵묵히 짐을 나눠 메고 걷는 것. 함께 호흡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세상을 몇 바퀴도는 것. 그 다음에야 비로소 답이 보인다. 그토록 성실한 삶을 살아낸 오늘이 바로 ‘축제’라는 것을.


새벽을 맛보는
아오모리의 바다

새벽 3시, 무츠미나토 역 앞은 싱싱한 수산물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아침을 시작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하치노헤 해역에서 건져낸 바다의 맛을 만나기엔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무츠미나토역전 새벽시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오징어를 들고 인심 좋게 웃고 있는 아주머니의 동상부터가 그 시작이다. 바닥이 물기로 흥건한 생동감 넘치는 한국의 수산시장과는 달리 따스하고 정돈된 주방에 들어서는 느낌이 새롭다. 아침마다 새로 들어오는 싱싱한 해산물을 소량의 포장용기에 맛깔스럽게 담아낸 좌판들이 초입부터 발길을 붙잡는다. 소매시장이긴 하지만 다양한 먹거리를 모두 맛보고 싶은 여행자에겐 더없이 좋은 곳. 성게, 새우, 전복, 오징어 등의 해산물들이 바로 먹을 수 있게 손질되어 있고, 원하는 해산물을 고른 뒤 밥과 국을 주문하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맞춤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점포 바로 옆 노포를 떠올리게 만드는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이른 아침임에도 조금 욕심을 부렸다. 싱싱한 해산물과 따뜻한 미소된장에 고슬고슬한 밥까지 더해지니 아침잠에 대한 미련은 멀리 사라졌다.

오래된 새벽시장임에도 내부는 깔끔한 주방을 잇대어 놓은 듯 말끔하고 청결해 보였다. 부담스러운 호객행위 대신 하얀행주로 나무 도마를 연신 닦아내는 상인들 중 대부분은 할머니들이었다. 우리네 할머니들의 얼굴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 밥상을 맛있게 비워내는 동안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눈빛까지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본격적인 아침 일상이 시작된다. 조금 이른 기상, 조금 빠른 아침 식사. 그래서 두 배로 길어진 아침시간을 만끽했다. 늘 분주하기만 했던 여느 여행지에서의 아침과는 확실히 달랐다.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동안에도 인근 하치노헤 해역에서 걷어 올린 바다의 맛은 끊임없이 좌판을 풍성히 채워가고 있었다. 새벽시장에서의 아침은, 역시나 늘 옳다.

건어물부터 간식까지
핫쇼쿠 센터

싱싱한 해산물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새벽시장도 좋지만 시간상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핫쇼쿠 센터를 추천한다. 핫쇼쿠 센터는 시장과 식당, 먹자골목까지 한 건물에 모두 입점해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특히 선물용으로 구입하기 좋은 각종 건어물과 아오모리산 사과를 이용해 만든 사탕과 과자 등의 간식류를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방문이 많은 쇼핑센터이기도 하다. 또한 생물을 직접 골라 그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한국의 회센터와 닮은 시스템의 식당들도 운영 중이기 때문에 더욱 반갑다. 물론 아오모리의 특산물인 가리비 요리도 맛볼 수 있다. 매주 수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운영하고 있으므로 새벽시장을 놓쳐 아쉽다면 방문해볼 만하다.

행운의 증거
가부시마 신사

번식기가 되면 야트막한 섬자락에 위치한 신사 주변을 온통 하얗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괭이갈매기가 모여드는 곳. 바닷가에 위치한 가부시마 신사다.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괭이갈매기의 번식지인 이곳은 섬의 정상에 오르면 행운의 부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사 주변에 도착하자 바닷바람이 꽤 거세게 불어왔다. 번식기가 되면 3만 마리의 괭이갈매기가 이곳을 하얗게 뒤덮는 곳. 신사가 있는 곳은 섬이라고 하기보단 오히려 곶에 가까운 곳으로 해안선을 끼고 아름다운 산책로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까지 피어난다고 하니 신사의 사계절이 모두 궁금해진다. 몇 해 전 해일로 신사의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조금씩 복구 중에 있다. 단번에 속도를 내지 않는 이유가 괭이갈매기의 서식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라니. 자연의 속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아오모리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 피해를 입은 신사의 한 편이 되려 의미 있게 다가왔다. 매년 봄이면 찾아오는 괭이갈매기가 낯설어하지 않을 만큼씩 만 다시 일어서고 있는 가부시마 신사. 그 배려가 속 깊다.

혼자라도 상관없어
사메카도 등대

가부시마 신사를 방문했다면 아시게사키 전망대와 사메카도 등대를 지나칠 수 없다. 하나의 그림이 더 큰 액자 속 그림의 일부가 되듯 가부시마 신사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시게사키 전망대에서 작은 풍경이 되고 다시 아시게사키 전망대는 사메카도 등대에서 더 작은 그림이 되었다. 한마디로 이 모든 풍경을 한눈에 담으려면 사메카도 등대에 오르면 되는 것이다. 조금은 외진 곳에 위치한 작은 등대.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던, 마음이 따스한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이 떠오르는 곳. 어두운 바다를 비춰내야 하기에 혼자라도 묵묵히 견뎌내는 세상의 수많은 등대처럼 사메카도 등대 또한 오롯이 바다를 향해 홀로 서 있다. 비록 작은 등대지만 하치노헤 인근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태평양 해역을 밝히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등대에 올라 방금 전에 갔던 가부시마 신사와 전망대를 바라보며 그 거리를 가늠해본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마치 아주 먼 곳처럼 느껴졌다. 괭이갈매기가 다시 찾아들고 유채꽃이 해안가를 노랗게 물들일 그 어떤 봄날, 다시 그 풍경 속으로 갈 수 있을까. 처음부터 혼자였던 등대는 말을 아꼈다.

완전한 모던
도와다시 현대미술관

도시가 하나의 모던한 미술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보았던 건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였다. 사람들은 작품과 작품 사이의 잔디에 누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잤고 커피를 마시며 템즈강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모모리의 도와다시 현대미술관 앞마당에서 다시금 작품사이를 뛰어노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만났다. 형형색색의 꽃으로 만든 거대한 ‘플라워 호스’ 앞에서 술래잡기가 한창이다. 아오모리 동쪽 끝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은 고즈넉한 마을 풍경과 상생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거대한 큐브를 연상시키는 하얀 외벽을 가진 미술관은 형이상학적인 구조 안에 훌륭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통유리로 된 미술관 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바라본 도시의 가로수길 또한 미술관만큼이나 아름답다. 네온사인과 화려한 간판들이 사라진 거리는 미술을 미술답게 지켜내기 위한 노력처럼 보였다. 도시의 절제된 아름다움, 그 속에 보물처럼 피어난 현대미술관은 완전한 모던함이야말로 완벽히 현대적인 것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로지르다
낭만 기차 여행

아오모리를 여행하는 방법 중 가장 낭만적인 방법은 역시 기차 여행을 하는 것이다. 복잡한 도심이 아니기 때문에 기차가 생각보다 자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기다림까지도 추억의 일부가 될 것만 같은 아오모리 기차역에서 조급할 필요는 전혀 없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수많은 구간 중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구간을 선택해 기차에 올랐다. 오래된 간이역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메역에 도착하자 상어라는 역 이름과 잘 어울리는 상어 모형이 먼저 반긴다. 리조트우미네코라는 이름의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살포시 햇살이 플랫폼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고요함에 푹 젖을 수 있었다. 아무런 소음도 없고 어떤 고성도 들리지 않는 간이역에서 휘어지는 레일을 눈으로 쫓으며 풍경을 가로질렀다. 40여 분 파란 바다를 향해 놓인 1인용 좌석에 앉아 욕심껏 바다풍경을 두 눈 가득 담았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것. 사전은 낭만을 이렇게 설명했지만 그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도 멀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40분간의 바닷길을 기차로 달리는 동안 낭만이란 단어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미로 같은 골목
요코초

호텔에 짐을 놓고 저녁을 먹고 나니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산책으로 이어졌다. 산책길에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한 골목길을 발견했다. 쇼와시대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골목은 요코초라고 했다. 소규모의 점포가 골목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요코초에는 소박한 요리와 술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여 하치노헤의 밤을 수줍게 밝히는 곳. 워낙 규모가 작은 점포들이기 때문에 5~7명 정도의 손님과 주인, 주방장이 좁은 곳에 가족처럼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 풍경이 마냥 정겹다. 주인과 마주보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혼술하기에 이만한 곳도 없어 보인다. 대부분 단골손님들이 많아 주인과 손님이라기 보단 친근한 사이로 보이는 풍경들이 따뜻하게 데운 사케처럼 기분 좋은 훈훈함을 전해준다. 가장 끌리는 요코초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인은 우리가 여행자임을 단번에 알아봤다. 노란 나트륨등을 닮은 실내의 아슴한 불빛 아래서 너의 나라와 나의 나라가 아닌 오늘 밤 우리의 아오모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 손을 놓쳐버린 채 헤매다 다시 그 품에 안긴 아이처럼 요코초에서의 밤은 신비하리만큼 편안하고 아늑했다. 점점이 퍼지는 이 기분은 분명, 행복이었다. 

... 다시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겨울엔 사과
사과는 아오모리

아오모리의 모든 상점에는 사과와 관련된 제품들이 많다. 촉촉한 사과 파이와 달콤한 사과 주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칩과 다양한 모양의 베이커리류. 그 모양과 향이 너무나도 상큼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과로 맛을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고 사과를 모티브로 만든 귀여운 기념품들도 눈에 띤다. 취향에 맞게 그 어떤 제품을 고른다고 해도 모두 아오모리의 향긋한 사과를 느껴볼 수 있어 누구나 하나쯤 꼭 사게 된다.